한국희곡

신명순 '가실이'

clint 2018. 4. 1. 07:06

 

 

 

가실이’는 ‘三國史記(삼국사기)’ 권48열전8에 나오는 ‘설씨녀’편을 申明淳(신명순)이 극화한 서정시극. 작가가 믿음과 사랑, 그리고 따스한 인간미에 역점을 두어 재조명한 것을 상징적 수법으로 무대화한 창작무대다


설씨녀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사는 가난한 농부였다. 나라의 수자리(변방을 지키는 병역의 노역)에 징발된 설씨 노인은 어린 딸을 데려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빠졌다. 그는 집을 찾아온 청년 가실에게, 어릴 적 병으로 죽은 어미와 전장에 나가 죽은 오라비들 이야기를 하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설씨녀를 아내로 삼고 가산을 맡아달라고 완곡하게 당부한다. 다음날 수자리 행렬이 떠날 때 가실은 설씨 노인에게 자기가 대신 수자리를 가겠다고 자청한다. 떠나는 가실에게 설씨녀는 감사의 말과 혼약에 대한 정절을 다짐하였다.

수자리를 떠난 가실은 고구려와의 끝없는 싸움으로 3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새로 오는 군사들로부터 노인의 건강이 여전하고, 그 딸이 아직 시집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전해듣기는 하나, 어쩔 도리가 없는 가실은 3년째 되는 어느 날, 고구려 군사와의 싸움에서 그만 포로가 되고 만다. 포로가 된 가실은 고구려 땅에서 종으로 팔려 어떤 늙은 농부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처음에는 갖은 모욕과 욕설을 듣던 가실이 신라 사람이라 논농사도 잘 짓고 해서 동네 사람 모두가 가실을 청해 농사짓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매년 가을이 되면 가실은 주인에게 놓아주기를 청했으나, 주인은 완력만이 아니라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그를 본국에 돌아가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핑계삼아 자신의 사위로 삼으려는 뜻을 갖게 된다. 하지만, 변함없는 가실의 마음에 탄복한 주인은 드디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이튿날 가실은 주인 내외와 딸에게 하직 인사를 고하고 그곳을 떠났다. 주인 내외는 설씨녀가 혼인했으면 다시 돌아오라고 당부하면서 그를 떠나보낸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우리 나라로 나는 돌아간다.” 고 외치면서 지팡이를 드던지면서 동으로, 동으로 고국을 향해 걸었다.』

 
설녀와 가실이의 설화는 한국적인 믿음의 본보기가 됨직한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믿음은 연극에서도 현대적인 조명으로 한 번쯤 도전해 봄직한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신명순은 낡은 주제를 더욱 더 고루한 틀 속에 가두어 놓았다. 우선 한국 신화의 한 동기가 될 수 있는 용마(龍馬) 사상이라든지 길거리에 널려 있는 토정비결에 나타나는 귀인 사상 따위의 받아들임에 도무지 설득력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작가의 설익은 착상일 뿐이었지 작품 구성의 면에서 볼 때는 살아 움직이지 못했다. 또 이 어줍고 터무니없이 야심적인 착상은<가실이>자체의 주제를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버렸다.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용마와 귀인의 분위기가 우리의 상상력 속으로 스며들었다면 그런대로 우리는 가실이 설화를 즐길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동기만 있었을 뿐이지 작가가 전개 시켜야 할 주제의식이나 시적인 상상력은 없었다. 이렇게 볼 때에 이 나라 역사극의 커다란 병폐 - 역사극의 경우만은 아니겠지만-는 이야기만 연결해 가는 가난한 기본 노선 하나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드라마의 기교는 낡은 의식만큼도 살아 있지 못한 것이다.

 

 

작가 신명순

1962년 국립극장 장막 희곡 모집에<은아의 환상>(동인극장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공연, 1962.10.30-31)이 입선됨으로써 정식적인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이순신>(국립극장 공연, 1962.1.1-7),<전하>(동인극장 공연, 1962.5.13-16),<신생공화국>(실험극장 공연, 1965. 6.12, 19 양일간),<상아(霜娥)의 집>(실험극장 공연, 1968.11.1-5),<도시의 벽>(제작극회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공연, 1969.12.17-22),<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1970년대),<가실이>(극단 민예 공연, 1978.3.1-7),<왕자>(연우무대 공연, 1980.9.25-10.1) 등의 작품을 발표한다.<은아의 환상>은 정신병자와 결혼하여 가정의 비극을 초래한 전직 교수 재명의 어두운 내면 심리를 추적했고,<상아의 집>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엘렉트라>의 제재를 빌어 한국 가정의 비극적 상황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도시의 벽>은 늙은 교수와 젊은 건축가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사라져 가는 옛것과 도래하는 새 것 사이의 투쟁을 묘사한 작품이다.<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은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군사 문화의 폐해, 물신주의가 팽배한 70년대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전하>와<증인>은 역사 속에서의 선택과 진리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감상주의적 유형의 작품 이면에는 당시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와의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압적 국가기구의 감시는 작가로 하여금 대사회적인 작품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신명순은 자기 검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극단 민예에서<가실이>를 무대에 올릴 때 신명순은 이렇게 그 당시의 답답함을 토로한다.
극단 ‘민예(民藝)’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의 인연이 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민예(民藝)’와의 인연은 묘한 데가 있다. 사년전(四年前) 나는 내용이 약간 아리숭하다는 이유로 공연히 유보되어 온<우보시(市)의 어느 해 겨울>을 놓고 잔뜩 우울해 있었다. 그때 선뜻 손을 내민 것이 허규형(許圭兄)이었고, 허규씨(許圭氏)는 여러 사람들의 우정(友情)어린 염려에도 불구하고<우보시(市)……>를 무대에 올리는 어려움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 후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는 단 한 편의 작품도 발표를 하지 못했다. 작품(作品)을 하기는커녕 관극(觀劇)을 하는 일에조차 나는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굳이 이 자리에서 그 까닭을 밝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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