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1장
수녀가 신부에게 창녀인 홍 막달리나라는 사람이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부는 그녀가 창녀이고 헌금을 조금 가지고 올 것이라는 이유로 돌려 보내라고 한다. 수녀는 오늘 창녀촌 일대 판자촌 지역의 철거를 반대하는 모임의 임원들이 데모를 하는데 도움을 구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 올 것이라 한다. 신부는 이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한다. 수녀가 이들을 옹호하며 만날 것을 종용하지만 신부는 끝내 거부하고 적당히 둘러대서 돌려 보내라고 한다.
2장
무대 한가운데 거지와 문둥이가 추위에 떨며 앉아 있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뺏거나 구걸을 하여 살아간다. 이들 앞으로 수녀가 지나간다. 이때 거지가 수녀의 발을 걸고 마치 자신의 발을 수녀가 밟은 듯 행동하며 돈을 요구한다. 그러나 문둥이는 수녀의 착한 행실을 아는 까닭에 그녀를 그냥 보내 주자고 한다. 수녀가 가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성호를 긋는다. 이때 문둥이도 성호를 긋는데 이로 인해 거지의 비난을 받는다. 거지는 예수쟁이를 싫어한다. 다음에 신부가 지나가는데 신부는 이들을 홀대한다. 다음에 지나가는 사장 역시 이들을 홀대하면서 그들 주위에 있던 예수상에 자신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기원을 마치고 그는 이들에게 창녀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문둥이는 이를 거부하지만 거지는 소개해 주고 돈을 받자고 한다. 이들이 싸우는 중 두목이 나타난다. 사장은 도망가고 두목은 그들을 위협하여 세금을 요구한다. 이때 거지가 사장이 달아난 것을 귀띔하자 두목은 사장을 미행한다. 두목이 사라지자 창녀가 등장해 술과 밥을 주겠다고 문둥이를 데리고 가자 거지도 따라간다.

3장
문둥이가 술에 취해 등장, 예수상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때 콘크리트 예수상이 눈물을 흘린다. 예수는 문둥이에게 예수장이들이 자신을 콘크리트 안에 가두어 두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둥이에게 자신의 금관을 가지고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라 한다. 그리고 콘크리트를 깨달라고 한다. 문둥이가 망설이는 사이 수녀와 창녀가 등장하여 이 광경을 보고 예수상에 기도를 한다. 이어 사장, 신부, 두목이 등장하여 금관을 빼앗아 예수상에 올려 놓자 예수상은 싸늘히 굳는다.
4장
사장, 신부, 두목, 대학생, 문둥이가 등장해 각자 자기의 입장을 설명한다. 사장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며 헌금을 많이 내겠으니 성당의 공사를 많이 맡게 해 달라고 한다. 두목은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자신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문둥이가 왜 약한 자에게만 세금을 거두는지 반문한다. 신부에게 문둥이가 춥고 배고픔을 호소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선과 질서만을 부르짖는다. 대학생은 사회가 부패했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책임을 사회에 전가한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난 문둥이는 울부짖는다.

1970년, 당시 암울한 세상을 신랄하게 비꼰 ‘오적(五賊)’으로 수배생활을 하게 된 김지하가 이듬해인 1971년 도피 중 쓴 희곡의 제목이 그 유명한 ‘금관의 예수’다. 우리가 알고 있듯 예수는 금관을 쓴 적이 없다. 그는 로마와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에 의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 위에 못 박혔다. 하지만 김지하가 본 한국 교회의 예수는 달랐다. 그는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층이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기 배불릴 생각에 급급한 나머지 예수의 머리에 황금면류관을 씌웠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를 위해 제 몸 던진 예수와 달리 교회의 크기가 곧 믿음의 크기가 되어 버린 한국 교회, 그리고 어려움에 고통 받는 서민들의 입장이 아닌,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편에 선 한국 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이 바로 ‘금관의 예수’였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 작품이 오래오래 기억되고 회자되는 많은 이유는,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민기가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 ‘금관의 예수’가 기여한 바도 크다. 작품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시를 발췌해 곡을 붙인 ‘금관의 예수’는 시대를 꿰뚫는 탁월한 가사와 그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한 김민기의 작곡 능력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다른 김민기의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방송에선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이른바 ‘방송금지곡’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유명해진 곡이 바로 ‘금관의 예수’였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차디찬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몇 년이 지나 청년문화의 또 다른 아이콘, 양희은이 부른 이 노래는 제목이 바뀌고 가사의 일부분도 바뀐 채 앨범에 수록됐다. 원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가 되었어야 할 노래가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가 되었고, 가사 중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가 ‘어두운 북녘 땅에 한 줄기 빛이 내리고’로 바뀌었다. 후렴 부분이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 그들과 함께 하소서’로 바뀐 건 물론이다. 하지만 바뀐 제목과 가사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니 북녘 땅은 차치하고 이 땅의 현실도 워낙 암울하고 참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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