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손영민 '인간 박정희'

clint 2018. 3. 18. 10:23

 

故 박정희 대통령 선거 20주기 추모공연

다운기획·구미시 문화예술회관 10주년 공연대본
 
1부 : 어린 박정희가 동네 아이들과 학교에 가는 장면.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둡다.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늑대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겁에 질린 동네 아이들은 도망을 가지만 박정희는 늑대를 물리치고 길을 가려한다.
어린 박정희의 힘으로는 역부족, 서서히 두려움을 느끼면서 주저앉는다. 혁명군이 다리로 진입, 다리 너머엔 헌병대가 혁명군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혁명군의 일부는 다리를 건너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어릴 적 늑대 때문에 가던 길을 가지 못한 것을 상기하며 혁명군을 이끌고 다리를 건넌다. 격전 끝에 헌병대의 저지선을 뚫고 육본으로 진입, 한편으로는 방송국을 점령하여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그는 혁명의 완전한 성공을 위해 이한림 1군 사령관, 참모총장 장도영을 제거하고 미국의 승인을 얻는데 성공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 학비가 없어 학교에 진학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정희는 형 박상희의 도움으로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한다. 독립운동을 하던 형의 기대와는 달리 군인이 되겠다는 일념아래 교사 생활 2년만에 만주 교관학교로 떠난다. 가난한 조국을 구하고자 혁명을 일으켰던 박정희는 군정기간에 한계를 느끼고 결국 군복을 벗고 대통령 출마를 결심한다. 일본이 패망하자 박정희는 만주에서 돌아온다. 형 박상희는 자신의 기대를 져버린 동생을 외면하고 인민공화국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방황하던 박정희는 다시 군에 입대한다. 그 무렵 대구폭동이 일어나고 박상희는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는 남로당 계보를 순순히 털어놓고 풀려 나게된다. 그후 그의 전력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지만 6.25를 겪으면서 사상논쟁에 피해자였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박정희를 지지하게 되고 민선 대통령 박정희가 탄생하게 된다.
 
2부
: 막이 오르면 늙은 박정희가 외로이 앉아있다. 오로지 민족중흥, 자주국방의 일념만이 머리속에 가득차있는 그 지만 외로움에 있어서는 그도 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그의 딸 근혜가 와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어머니를 회상한다.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와 육영수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패전국인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근면한 우리민족도 분명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있던 대한의 건아들과 딸들의 환영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민족이기에 이국 땅에서 떠도는 이런 일이 없게끔 부강한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의 일정은 삽교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가 꿈꾸던 자주국방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꿈속에서 육영수 여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신념에 찬 그는 헬기를 타고 천천히 사라진다. 이어 10.26을 상징하는 총성과 격렬한 춤이 이어지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박정희는 애도하는 조문객과 의장대의 행렬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면서..
 
 

 


근래에 와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가장 임무를 잘 수행한 대통령에 지목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역대 임금 및 대통령 중 박정희가 세종대왕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전후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그의 리더쉽이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포장화된 우리의 세기말적 낙관론이 I.M.F 구제금융으로 형상화된 금융위기에 장미빛 미래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그 진원지가 박정희 정권이라는 것을 지목한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국방에 이르기까지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러하듯 박정희 시대는 이미 평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왜 평가하는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이 그저 쉽게 평가되고 있다. 그나마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논의하고자 하는 연구자들 마저도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오는 한쪽의 입장에 서도록 하는 압력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란 인물이 쉽게 평가될 수 있을까? 박정희는 평가에 앞서서 역사이다. 거기에는 한국이 매우 급박하게 걸어온 격동의 역사가 베어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복잡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적 담론은 이번 연극에서의 큰 걸림돌이 되었다. 아직 역사화 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을 규정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역사는 개별적 사실을, 극은 보편적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명제하에 나는 시대에 대한 담론은 역사학자들에게 또는 그와 관련된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박정희란 인물이 가졌던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내기로 했다. 혹자는 그의 삶이 드라마틱 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역동적인 시대에 남겨진 고독한 인간의 모습의 박정희를 보았다. 그래서 작업의 우선 순위를 그의 치적과 업적을 나열하기 보다는 치열한 역사속에 함몰되어 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결단과 고뇌를 부각시켰다. 박정희 그 자신도 시대속에서 나약할 수 있는 인간이였지만, 그의 결단이 그를 위대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젊어서 혼탁했던 시대에 스스로를 역사의 길 위에 있고자 했고 혁명 이후에는 시대를 개척하고 이끌어가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업적들이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서 다시 회자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청빈과 절약정신은 I.M.F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분명 아직도 박정희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현대사를 개괄하는 동시에 박정희의 삶을 조명하면서 노,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이들에게는 역사의 교훈을 보여주는 연극이 될 것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근호 '닭에 대한 논리'  (1) 2018.03.18
유화량 '직녀에게'(원제 : 노래)  (1) 2018.03.18
신찬식 '여의와 황세'  (1) 2018.03.18
한수산 '회선'  (1) 2018.03.18
김현묵 '오동추야'  (1) 201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