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와 황세'는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릴 만큼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약 1500년 전 가야의 김해지역에서 전해오는 ‘출여의 낭자’와 ‘황세장군’의 사랑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각색한 작품이다.
가야시대를 배경으로 혼인을 약속했던 황세 장군이 왕의 사위가 되면서 사랑을 잃게 된 출여의 낭자가 죽고, 황세 장군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김해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 년 전, 당시 가락국의 왕은 9대왕인 숙왕(肅王)이었으며 그 당시의 일이다. 지금의 대성동인 북대사동(北大寺洞)에는 황정승이, 남대사동(南大寺洞)에는 출정승이 있었는데, 둘은 절친한 사이로서 서로가 사돈이 되기로 약조하였었다. 이후 황정승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세(洗)’로 하였으며, 출정승은 딸을 낳아 이름을 ‘여의(如意)’라 지었다. 하지만 돈이 많고 세력이 강했던 출정승은 막상 딸이 생기고 나니, 가난한 황정승에게 자신의 딸을 주기 아까워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오랜 신의가 있던 황정승과의 의리를 저버리기는 어려워 일부러 여의를 어릴 적부터 남장을 시켰다고 한다. 황정승과 출정승이 절친한 사이였기에 황세와 여의 또한 절친하게 지냈고, 같이 서당을 지내며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세는 왠지 여의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옷을 입고 있지만 여자 같다는 생각에 같이 서당 근처의 개라바위로 데려갔다. 황세는 이곳에서 서로 오줌을 멀리 누는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고 먼저 시원하게 오줌을 쏴 올렸다. 이에 당황한 여의는 재빨리 바위 뒤쪽으로 돌아가 궁리하였는데, 마침 그곳의 근처에 있던 삼대를 이용하여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개라바위엔 오줌자국이 남아있다고 한다. 황세는 오해를 풀고 다시 여의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어느 여름, 황세는 이번엔 멱을 감으러 거북내, 즉 지금의 해반천에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더 이상 자신이 여자임을 숨길 수 없던 여의는 숨겨왔던 사실을 황세에게 밝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여의는 학동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더 이상 서당에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일찍이 여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던 황세는 출정승댁 앞에서 배회하며 기다리게 된다. 이를 안 출부인은 출정승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결국 출정승은 둘의 교제를 허락한다. 황세와 여의는 기쁜 마음으로 개라바위의 북편에서 약혼을 하게 되며 결혼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당시 가야는 신라가 한없이 쳐들어오고, 이를 막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황세는 신라군을 막기 위해 출정하게 되고, 여러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를 숙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하늘장수라는 칭호를 내리고, 자신의 외동딸인 유민공주와 혼례를 치르도록 한다. 이에 황세장군은 약혼녀가 있다고 말하지만 되려 숙왕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숙왕은 가야의 명운이 위태하던 시절이었기에 뛰어난 장군인 황세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숙왕의 명령을 거절 할 수 없던 황세장군은 유민공주와 강제적으로 혼례를 올리게 되고 숙왕의 부마가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의낭자와의 약혼은 무효가 된다. 이를 안 출부인은 병을 얻게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여의낭자도 크게 상심하게 된다. 이미 황세장군에게 마음을 주었기에 다른 이에게 시집가길 거절하였고 홀로 지내다가 스물 네 살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황세장군도 마음에 없는 결혼생활을 하며지내다가, 여의낭자의 죽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결국 황세장군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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