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색/ 현태영의 글
섬이 문학적 소재가 되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상징성에 있다. 육지와 떨어져 형성된 독립된 세계인 섬은 여러 작품에서 우리 삶의 이상향으로서, 도피처 또는 구원처로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단절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은 작품전체에 항상 깔려있는 기본적인 정서이다. 인간이 가지는 절대적인 고독은 어쩔 수 없이 절망감과 고통을 수반하게 되고 문학작품에서 보편적인 해결책으로 많이 제시되는 소재가 섬이 된다.
하지만 한수산씨의 원작 『회선』에서의 섬인 「아라도」는 그 상징성을 조금씩은 달리한다. 장씨는 「아라도」가는 배를 탔지만 가는 도중 죽음을 해결책으로 삼고 있고, 김씨에게서의 「아라도」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상의 한 단면으로서 일 뿐이다. 최씨는 알콜중독으로 좌천되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가기 싫은 장소이고, 송태호에게는 밀항의 한 기회로서의 섬일 뿐이며, 윤자에게는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변화로서의 「아라도」로 나타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몇몇 군상들이 안개 자욱한 밤배를 타고 「아라도」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삶의 한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하고자 하는 섬인 「아라도」는 보통의 문학작품에 잘 나타나는 이상향으로서, 구원으로서의 「아라도」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아주 근접해 있는 섬일 뿐이다. 이상향으로서의 「아라도」는 그들이 가는 도중 장씨의 대사속에서 잠깐 나타날 뿐이며 곧이어 그가 자신이 말한 「아라도」가 거짓이었다고 밝힘으로써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준호의 입을 통하여 이상향의 「아라도」는 섬에의 도착이 아니라 섬으로 가는 선실에서의 하룻밤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그것이 「아라도」라고 하고, 우리 삶의 모습이며 사랑이라고 밝힌다.
연극과 문학은 공연과 희곡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문학적’이라는 말이 사변적이며 학자연하는 것이라는 말로 취급되면서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배척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연극이나 문학으로서의 희곡이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우리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볼 때 언제까지나 우리 연극인들이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조금은 사변적인 문학을 연극이라는 재미로 포장하여 관객들과 함께 공유한다면 이 또한 괜찮치 않을까?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인간의 숙명적인 절대고독을 재미와 웃음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수산
한수산은 그의 최근작 『회선(回船)』에서 다시 한번 비슷한 주제를 시험하고 있다. 『회선(回船)』에 대해서는 필자 자신이 사신의 형태로 그 감상을 적었던 경우가 있기에 일부를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한형, 형의 소설 『회선(回船)』을 읽었습니다. 최근 장편소설 『유민(流民)』이 간행된 것을 보고, 형이 제주도에 이사하여 몇 년 동안을 소문없이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회선(回船)』을 읽으면서 육지를 벗어나 섬에 자신의 몸을 가두어버린 형의 용단이 어떤 의미를 지미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바다라는 열려 있는 세계를 원했고, 그것이<자유였고 침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다가 <하나의 한계>로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이제 하나의 고립 그리고 단절>로서 바다가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간단히 육지에서의 바다와 섬에서의 바다가 주는 느낌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굳이 이런 느낌이 바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다를 생각하던 육지와 바다를 건너다 보는 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고집하고 싶습니다. 바다가<자유>였던 때의 육지는 닫혀진 공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자유>였던 바다가<하나의 한계>로 다가오고 있다면, 형은 다시 어디에서 그<자유>와<침묵>을 구할 것입니까?
소설 『회선(回船)』은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이 부딪치고 있는 생각의 벽을 더듬어 보기 위해 이 작품을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화자인<나>라는 인물이 방학을 이용하여 별다른 목적없이 떠나는 여행길이 스토리의 내면적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나>의 정서적 불균형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아라도>라는 섬을 향해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싣게 된<나>와 선실의 승객들이 어색하게 부딪치는 만남에서부터 이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두 한 시대의 작은 풍속도가 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형은 어두운 바다를 요동치며 떠가는 여객선의 선실 안에 인간의 삶의 현장을 한 장면씩 그대로 옮겨 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회선(回船)』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육지에서의 생활에 지쳐버렸거나 실패한 사람들뿐입니다. 더 이상 육지의 생활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을 떨쳐버리고자 합니다.<아라도>라는 섬이 그들이 도달해야 하는 마지막 희망처럼 보입니다. 술 때문에 육지에서 섬으로 근무지를 쫓겨가는 최선생, 근대화 바람에 밀려 농사터를 잃어버리고 공사판의 막일꾼으로 전전하다가, 관광지개발로 새로운 공사판이 터졌다느<아라도>를 찾는 김씨, 관광기생을 거느리고 술장사를 하다가 망해버렸지만,<아라도>에 가서 다시 술집을 차려 돈을 모으겠다고 벼르는 송씨, 떠돌이로 정처없이 술집을 굴러다니다가 배를 탄 윤자라는 아가씨, 개발붐을 타고 강변의 배추밭을 팔아 돈을 챙겨 은행에 넣어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다가 자기 삶의 무기력에서 뛰쳐나와<아라도>를 찾게 된 정사장--. 이들 모두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상실한 인간들이기에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다시 채워줄 수 있는 마지막 꿈을<아라도>에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섬에 도달하기 전에 배는 다시 항구로 돌아오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 『회선(回船)』의 의미가 비로소 여기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단순한 뱃머리의 선회를 의미한다기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일상의 현실에 등을 돌릴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아라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이들 모두의 침묵과 실패와 꿈이 뒤엉켜 가슴에 와 박힌 환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형, 이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간들은 끝없이<아라도>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아라도>에 귀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일상의 생활 속에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그것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는지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소설이란 어차피 삶의 환시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구태여 그 해답을 형에게서 구하고자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직도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소설 속의<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안개>입니다. 삶의 철저한 인식과 그 새로운 지향을 방해하고 있는 장막처럼 안개는 뱃머리를 돌리게 하였습니다.<아라도>를 찾는 것보다 육지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황이 문제이듯이, 뱃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이 만드는 안개가 또한 문제입니다. 안개 속의 항로가 제거될 때 섬도 육지도 결국은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점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감각의 작가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한형이 이제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방법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이 값지게 느껴집니다. 형의 시계(視界)가 확 트이는 날, 우리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모두의 꿈인 <아라도>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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