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유진월 '불꽃의 여자 나혜석'

clint 2018. 3. 11. 17:47

 

 

줄거리
시대는 1920여년 쯤. 조선의 그것도 여자의 신분으로 동경에서 미술을 전공한 최초의 여자 나혜석. 혜석은 그림도 그리면서 간간히 글도 썼으며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해 강연도 했었다. 그녀는 동경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때에 우영을 만나 사귀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시대에 맞지 않게 당돌했고 진취적이었다. 우영과 결혼을 하면서 세 가지 약속을 다짐했다. 하나는 영원히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할 것과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과 우영의 어머니와 우영의 전처에서 난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혜석은 임신을 하게 됐고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아 그림을 그리는데 물감 냄새 때문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과 너무나 다른 자신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아이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 우영과 싸우게 된다. 세 명의 아이와 함께 그림은 뒷전이고 외교관 남편 부인으로서 각종 연회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우영은 혜석에게 미술전람회 관한 기사가 났다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지만 혜석은 그 기사를 볼 여유가 나지 않았다. 혜석이 기뻐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달려왔지만 우영의 생각과는 달랐다. 혜석은 결혼하기 전부터 여성에 대한 억압과 남존여비사상에 맞서 싸워 늘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여자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영은 혜석에게 파리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파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혜석은 최린이란 운동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최초의 여성화가로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나혜석은 김우영과의 결혼으로 임신과 출산, 외교관의 아내로서의 내조로 갈등을 겪는다. 새로운 세계로 나갈 기회로 남편과 구미유학을 떠나게 된 나혜석은 당대 민족의 지도자라 불리우는 최린과 만나게 된다. 최린과의 연애사건에 휘말려 결혼 생활에 파경을 맞게된 나혜석은 매정하게 돌아선 최린에 대한 손해보상청구소송 때문에 조선땅에서 완전히 매장된다. 재기를 위한 전시회도 실패하고, 나혜석은 행려병자의 모습으로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 인물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릴 때는 우선 그 대상이 되는 삶의 주체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긴장감을 전제로 할 것이다. 이 때는 '그는 ○○하게 살았다'라고 하는 상식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가 중심이 될 것이고, 게다가 무언가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라도 내부에 숨겨져 있으면 더 제격이리라. 아니면 역사적 위인, 또는 유명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른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사실 그 이면은 이러이러하였다라고 하는 감추어진 역사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것(작가들은 흔히 이를 재해석이라고 한다) 역시 흥미있는 작업이리라. 최근에 공연하여 이래저래 화제를 모은 오태석의<잃어버린 강>이 그러하고, 이상이나 윤심덕의 삶 역시 위의 한 두 가지 이유로 최근까지 무대 위에 오른 경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혜석은 어떠한가. 그는 어떠한 인물이던가. 위의 어떤 이유로 무대 위에 오를 만하였던가. 유진월 작, 채윤일 연출로 극단 산울림 94회 정기공연으로 막이 열리고 있는<불꽃의 여자, 나혜석>은 과연 공연될 만한 삶을 지닌 인물인 것인가. 작가는 그렇다고 한다. 그 이유로 그는 '불꽃'을 말한다. 페미니즘의 불꽃을.
그러나 나혜석이 등에 업고 있는 것은 '불꽃'이라는 후광이기보다는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거운 짐. 최초의 여류화가, 최초의 정조유린에 관한 위자료 청구소송 등등 그는 이 최초라는 명예와 부담을 함께 안고 시대의 인습과 맞서 싸웠지만 당연하게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한 어머니로서의 모성의 한을 안은 채 쓸쓸히 인생이라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만다. 아스라이 꺼져가는 불꽃조차 없이.

 

 

 

 

 

작품은 나혜석을 자아실현과 전통적 현모양처상의 구현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선구적인 고독한 여인보다는 가정 파탄의 책임을 지고 남성 위주 사회에서 희생당하는 한 가련한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아쉽게도 원작의 의도를 작가 스스로 파괴하고 만 셈이 된 것이다. 지금도 있을 수 있는, 한 가정 안의 여인의 비극이 1920년대를 배경으로 되돌려 보여진다고 해서 여성억압의 연속성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인가. 작품은 봉건제와 일제의 억압이 함께 작용하는 식민지의 현실 하에서 한 선구적인 여인의 선택이 역사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충실했을 때 타오르는 시대고의 아픔이 비로소 '불꽃'으로 어둠을 밝힐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작의 애초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 연출은 오히려 무대를 매우 단순화, 상징화시키고 있다. 무대의 전후를 육중해 보이는 미닫이문으로 가르고 나혜석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무대 뒤에 위치시킨 것은 봉건제의 억압의 무게를 적절히 가시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봉건제적 현실을 나혜석 스스로 말하고 있는 장면에서 나혜석을 무대 앞의 의자 위에 앉게 한 것 역시 무대 위의 사건을 객관화시켜 보여주기에 적절하였다.
작품 속의 나혜석의 삶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하고 화가로서의 삶을 보내는 안정기, 가사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던 중 최린을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가정파탄에 이르게 되는 격동기,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파멸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나혜석을 보여주기에는 배우 박호영은 다소 힘이 부쳤다. 물론 짧은 공연시간 중에 한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 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위의 삶의 변화 속에서 감당하는 나혜석의 성격의 변화가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하였다. 오히려 남편 김우영 역의 안석환이 나혜석이라는 한 신여성을 감당해야 하는 남성적 고뇌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주객전도의 양상이 되고 만 형국이다. 그런 까닭에 말년의 나혜석은 빼앗긴 자식에 대한 그리움의 한을 지고 사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으로만 남고 말았다.
작품 속에는 1920-30년대의 조선이라는 현실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현실이 특정한 시대와는 상관없는 역사적 현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혜석에게 '최초'라는 역사적 짐을 지워 놓은 만큼 봉건제와 피식민지의 현실이라는 시대적 고통이 어떻게 나혜석의 삶의 선택에 작용하는지는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될 만한 과제였다. 이 부분에서 작가와 연출은 공통적으로 무대와 관객간의 거리를 적절히 조정하면서 시대적 고뇌와 페미니즘의 주제를 함께 객관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극중의 나혜석의 의지가 연출에 의해 적절히 절제된 만큼 나혜석의 고통의 표현은 오히려 더욱 내면화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미에서 이 공연은 좋은 연구 대상이다. 희곡과 연출의 조화라는 연극 만들기의 상식적 명제가 한 선구적 페미니스트의 무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공통분모를 찾아가고 있는지, 페미니즘이라는 자칫 구호만으로 전락하기 쉬운 이념적 주제가 어떻게 무대 위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보기 드문 좋은 연구 대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