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상열 ‘원효로 1가 19번지’

clint 2018. 3. 11. 14:51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고() 김상열(19411998)의 미발표 희곡이 무대에 오른다.

극단 김상열 연극사랑19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고인의 유작인 원효로 119번지를 공연한다. ‘원효로 119번지는 고인의 유품 중에서 뒤늦게 발견한 희곡으로 이번이 초연이다.

 

 

 

 

 

지난 1998년 타계한 김상열은 살아생전 극작가 겸 연출가로서 정통 창작극뿐만 아니라 뮤지컬, 마당놀이, 악극,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쳤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연극대신 늘 쉽고 재미나는 연극을 통해 연극의 대중화를 꾀했던 선구적 인물이다. 또한 연극은 억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이라는 소신을 가졌던 분이기도 하다.

<원효로119번지>는 한 작가의 영혼여행을 통해 우리의 아픈 과거 역사와 개인의 사를 일치시켜 보여줌으로써 끊을 수 없는 생명의 끈과 삶의 연결고리들을 무속의 형식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재미 베스트셀러 작가 양성진이 알지 못하는 주소(원효로119번지)와 이름으로 배달된 '제발 나의 영혼을 안식시켜 달라'는 내용의 편지에 이끌려, 고국 출판 기념회를 찾으면서 극은 시작된다결국 편지의 발신인을 찾는 일은 수포로 돌아가나 그 과정에서 한 작가(양성진)의 영혼여행을 통해 아픈 과거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만나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발가벗겨진 한 인간의 내면여행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어두운 현실의 암울함 속에서도 새롭고 맑은 삶의 향기를 맡게 해주는 청량제 구실을 해준다.

 

 

 

 

 

부디 이 공연이 "연극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한 관계들을 보고, 듣기 좋게 질서를 지우는 것입니다" (김상열 <광대와 시인> 중에서)

 

특히 초연 공연은 고인의 연극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작곡 김영동, 안무 정재만, 음향 김벌래, 의상 구히서, 무대 이태섭, 연출 주요철, 영상 장승세 등 분야별 거목들이 스태프로 참여하며 고인의 아내 한보경이 제작과 배우로 참여해 고인의 연극 정신을 이어갔다뿐만 아니라 최정우, 임홍식, 박정순, 하덕성 등 연극계 중견배우들이 탄탄한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첫날에는 제5'김상열연극상' 시상식과 김상열 희곡집9 <오로라를 위하여> 출판기념회가 열리며 공연장 로비에서는 고인의 연극무대 사진전도 열린다.  

 

 

 

 

 

   

 

작가의 글

작은 골목길 색 바랜 양철지붕과 게딱지같은 기외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골목길, 그리고 퇴색한 판자벽들이 쓸어질듯이 잇대어 있는 구불구불한 언덕배기 골목길에 성인이 된 내가 나타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골목과 가옥들은 그 옛날 그 모습이건만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다. 그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벌거숭이들은 모두 간 데가 없다. 난감함과 서글픔에 젖어 옛집들의 담장을 기웃거리지만 목메 그리던 옛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슴에 칼날 같은 서늘함이 감돌고 그래서 뜨거운 눈시울 속에 잠을 깬다. 그것은 언제나 반복되는 옛 시절에 대한 나의 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에게 골목길과 언덕이 사라져 버렸다. 도시와 마을이 구획 화 되고 평지 화 되면서 어린 시절의 신성한 공간, 꿈과 동화와 놀이가 있던 골목길과 언덕은 현대화의 불도저에 밀려 우리들 곁에서 떠나고 만 것이다. 공무원이셨던 부친을 따라 나는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았다. 그래서 나의 추억 속에는 여러 개의 골목길과 언덕이 고스란히 각인돼 있으며 때때로 현실 속에서 사라진 골목길과 언덕을 되새기면서 아련한 위안을 받곤 한다. 골목길과 언덕에는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골목길은 어린 동심들이 만나는 밀어의 공간이며 미로와 같은 그 골목길에서 개구쟁이들의 놀이와 규칙이 창안되었다. 판자벽과 굴뚝과 전신주는 우리들이 상상해낸 놀이의 의지물이며 상징물이었으니 판자벽은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말 타기 히는 의지 벽이었으며 토담집의 굴뚝은 해질녘에 은밀히 모이는 집합장소의 성스런 지주였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전선주는 두 패로 갈라져 전쟁놀이할 때의 각 패의 사령부 지휘소가 된다. 골목길은 어른들에겐 그저 일터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작은 통로로서의 의미만 있지만 우리들에겐 바로 생활의 터전이며 수많은 동심들이 어우러져 창안해내는 꿈의 공간인 것이다. 그곳에서는 엄격한 서열과 계급이 주어지고 막중한 각자의 임무가 부여된다. 확연한 명령계통 아래 일사불란하게 동심들이 움직였고 동심들이 만들어낸 법(규칙)에 의해서 놀이는 진행되었다. 숨바꼭질을 할 때는 절대 가옥 내부에

숨어서는 안 되고 자치기를 할 때는 새끼 자가 담장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가면 파울이었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할 때 누가 몰수를 하든 일정한 퍼센트의 이득을 공동의 자산으로 헌납을 해야 되며 맞짱을 붙을 때는 누구든 먼저 코피를 흘리면 패배로 판정이 되었다. 달밤이면 후미진 정미소 귀퉁이에서 우리들의 밀어와 정보가 교환되었다. 시댁에서 소박맞고 쫓겨 온 아무개 누이의 얘기며, 3반 담임과 4반 담임이 방과 후 숙직실에서 연애를 했다던가, 아무개 누이동생이 옆 동네 보스로부터 구구절절한 연애편지를 받았다던가, 혹은 아무개의 형님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형사들의 추적을 받고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동심들은 때로는 분개하고 때로는 연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언덕길은 마치 무대에서의 배우들의 등 · 퇴장 출구같이 우리들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신비한 경계선이 되기도 하였다. 언제나 창백한 안색으로 폐병에 시달리던 처녀가 어느 날 조용히 눈을 감자 작은 꽃상여에 실려 그 언덕길에 서글픈 요령소리를 남긴 채 언덕길을 넘어 갔으며 전쟁이 터지자 몇 달째 소식이 없던 외삼촌이 팔뚝에 붉은 띠를 두르고 권총을 찬 모습으로 죽창을 든 사람들과 함께 그 언덕을 넘어 돌아왔다. 어느 해 말없이 외지에 나갔던 젊은이가 큰 부자가 되어 중절모에 가죽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집을 찾아오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범죄를 저질러 뒷방에 숨어 있던 아무개의 형이 형사들의 포승줄에 묶여 동네의 언덕을 힘없이 넘어가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골목의 흙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던 그 노모의 통곡소리가 우리들의 골목 안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고 드디어 홧병에 걸린 그 노모는 어느 날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그 언덕을 넘어간 뒤 영영 그 언덕을 다시 넘어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언덕은 불행과 행복의 경계선이었으며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에겐 그 언덕 너머의 세계가 때로는 희망이었으며 때로는 절망과 고통의 세계였으며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공포의 늪이기도 하였다. 골목에는 골목 고유의 냄새와 소리가 있었다. 썩은 판자에서 장마철이면 곰팡이 냄새가 온 동네 가득히 퍼져 나갔으며 자정이 넘도록 다듬이질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골목길에는 한숨과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가출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는 밤이면 시멘트 쓰레기통 위에 앉아 아버지가 떠났던 그 언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부모에게 매 맞는 아이들은 으레 적산가옥의 돌층계에 앉아 지푸라기를 입속에 씹으며 홀로 눈물을 지었다. 그래서 골목길은 동심들에겐 한풀이의 성스런 제단이었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고통의 공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골목길은 우리들에게 요새이며 동굴이었다. 우리들은 돌 하나 풀 한 포기 담장 위의 가시철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였으니 마귀의 문, 여우꼬리, 미친년의 치마, 도깨비 뿔 같은 우리들의 약속된 언어를 붙임으로써 우리들의 동화와 꿈의 세계를 완성시켜갔다. 골목길에선 언제나 우리는 자유스러웠다. 어둡고 비좁은 방과 부모들의 잔소리 그리고 지겨운 가난과 배고픔으로부터 탈출하여 우리들의 작은 공간에서 우리들은 티 없이 맑은 동심으로 서로를 위로하였고 수많은 가위바위보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의 외침 속에서 우리들의 작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비 오는 날 우리들은 모두가 추녀 밑에 앉아 무심히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적막과 고독을 익혔으며, 함박눈 쏟아지는 겨울철엔 골목길에서 눈덩이를 굴려 거대한 눈사람을 만들어 하얀 축제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증오와 살육을 보았다. 앞집과 옆집이 사상으로 갈리고 그래서 서로가 이웃하고 살았던 순진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에게 미움을 주어 무고한 시체들이 그 골목길에 가득히 널리게 되고 그래서 여린 동심들은 두려움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장총에 태극기를 펄럭이며 언덕을 넘어오던 국군병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생사를 알 수 없던 아버지께서 저들의 고문에 의해 온몸에 피멍이 들어 절룩이며 그 언덕을 넘어오던 모습은 지금도 그 골목의 추억과 함께 생생하다.

이제 우리는 골목과 언덕을 잃었다. 설사 골목과 언덕이 남았다고 하여도 골목과 언덕의 정서는 사라졌다... 45년 전 내가 유년기를 보냈던 원효로의 옛 언덕을 넘어 그 골목길에 다시 서 본다. 모두가 굳게 닫혀진 문 그리고 시멘트 건물들은 모두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딱지치기하고 자치기하던 아이들은 유수한 세월 속에 모두가 어른이 되어 그 언덕을 넘어 어딘가 냉혹한 현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이제 꿈속에서나 그 옛날의 골목과 그 어린 동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골목의 냄새와 소리를 그리워하는 나 역시 마지막 골목의 세대로서 그 언덕을 넘어 머지않아 사라지리라.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진월 '불꽃의 여자 나혜석'  (1) 2018.03.11
유진월 '그녀에 관한 보고서'  (1) 2018.03.11
박현숙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  (1) 2018.03.10
김세근 '취선록'  (1) 2018.03.10
유진월 '연인'  (1) 201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