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근형 '백무동에서'

clint 2018. 3. 6. 20:40

 

 

 

 

친환경마을 함양. 십수년전 사라진 천연기념물 쌍동부리 버들제비가 마을의 상징 상림숲에 나타나 알을 까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에는 계속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8대째 함양에서 살면서 소작 일을 하던 구순의 할아버지가 이웃 남원 운봉마을 팔순의 할머니를 임신시켜 영호남의 화합을 몸소 실천한 일이라던가 육이오 때 실종 된 맹호부대 국방군 대위의 계급장이 군청 화장실 보수 공사 때 정화조 밑에서 어흥 하며 소리 내고 허공을 향해 20미터 튀어 올라 군청의 상징마크를 덮었다던가 최치원이 다스렸던 평안의 마을 함양이 다시 진 면목을 발휘해서 마을 사람 모두가 기분이 좋았다. 많은 외지인의 방문 탓인지 시장경제 관광 수입도 오르고 쌍둥부리 버들제비의 부활로 생태도시 함양군의 지명도도 오르고 더욱이 지리산 계곡 바캉스를 다녀 온 여고생들의 높은 출산율로 도내 유일의 인구증가 유망 군으로 지목되어 시 승격 심사를 눈앞에 두고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 이에 제일 신난 건 역시 공무원들이다. 그러던 마을에 겹경사가 터진다. 산부인과에는 마을의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장사진을 이룬다. 당황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노인, 아줌마, 아가씨, 노처녀, 불임여성, 학생들, 어린애들 할 것 없이 모두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이곳 마을의 상황은 전국 모든 뉴스의 1면을 장식하며 전국 각지의 불임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마을의 흥분이 고조되던 어느 날 천연기념물 쌍둥부리 버들제비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함양의 자랑거리인 상림 숲이 불에 타기 시작한다. 그들의 생태도시 이미지는 추락하고 함양의 시 승격 또한 타격을 입는다. 인심은 흉흉해지고 공무원들과 모든 시민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마침 범인이 계곡에 은신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장정들은 백무동으로 향한다. 돌아오지 않는 장정들, 그리고 서서히 말라가는 계곡.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 속 산부인과는 만삭이 된 마을 여성들로 가득 차기 시작 한다. 한 날 한시에 함께 임신을 해 한 날 한시에 함께 출산을 하게 되는데...

 

 

 

 

 

 

박근형은 이미 '청춘예찬', '대대손손', '물속에서 숨 쉬는 자 하나도 없다', '삽 아니면 도끼', '삼총사', '선착장에서',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들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내보여 왔는데 이번 초연무대로 관객과 만나는 [백무동에서]라는 작품은 그가 수년전부터 기획하여 나름대로 준비해왔던 작품이다그의 작품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일상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낸 바 있는데 이번 [백무동에서]는 전작들과 비교해봤을 때 관객을 흥분시킬만한 신선함은 보이지 않는다. [백무동에서]는 경상남도 함양 백무동이라는 지역 안의 어느 산부인과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이야기 전개는 크게 세 무리의 인물들 간 대화로 진행 되는데 유림을 상징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어르신의 아들인 산부인과 원장과 아내. 간호사, 그리고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손자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로 극 구성이 이루어진다. 극 속 내용에 특별함은 없다. 극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사고나 사건도 없으며 인물 간의 대립이나 갈등도 없다. 그저 대화를 나눌 뿐이다. 박근형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심심하다 못해 밋밋하다고나 할까. 특별함이 아예 없지는 않다. [백무동에서]는 남자가 임신을 하니까. 하지만 그 임신도 남자가 왜 임신을 하는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그 사유가 명확해 보이진 않는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으니까 그런 설정을 가져갔겠지만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

 

 

 

 

 

이 작품은 80분이 채 안 되는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다. 80분 안에 드라마는 없고 인물 간 대화만 보여준다. 박근형이라는 이름만을 믿고 연극을 보러왔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극의 절반이 넘어설 때 까지도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뭘 말하려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은 지루해 할 틈이 없다. 박근형의 힘에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형이 가지고 있는 힘은 관객들이 그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기대치가 높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 신뢰와 기대치에 의해 그를 믿고 따라가면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스스로 자가발전, 긴장감을 생산해 낸다. 자기 최면에 걸렸다면 좀 심한 표현일까. 그런 점에서 박근형은 행복할 듯도 싶고 반대로 고통스러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백무동에서]는 인물 간 다양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았음직한 그저 그런 내용들이다. 하지만 한 꺼풀 깊이 들어가 보면, 작가가 세상에 내뱉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9.11 테러 사건이나 버지니아 총기 사건 등을 거론하며 현상에 대한 생각들과 드라마 대조영이나 태왕사신기등을 거론하며 역사 왜곡에 대한 관점까지, 작가는 그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우들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낸다. 정치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면 너무 깊이 들여다 본 건 아닐 런지.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은 작가의 특권이기도 하면서 반대로 의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얼마나 세련되게 잘 녹여내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백무동에서]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인 듯 싶다.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그게 도대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무대는 단촐 하다. 세트 없이 침대 세 개와 의료기만 있다. 조명도 단순하다. 이번 작품뿐만이 아닌 박근형의 작품은 대체로 그렇다. 어찌 보면 성의 없어 보이는 무대의 이 미장센이 배우들에겐 때로 더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관객이 배우에게 훨씬 더 많은 집중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트에 치여 조명에 치여 배우가 반감되는 잘못된 연출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박근형식 연출은 배우들이 무척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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