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종우 '칠수와 만수'

clint 2018. 3. 5. 09:22

 

 

기지촌 출신인 칠수와 수부리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만수는 고층빌딩에 매달린 곤도라 위에서 거대한 광고판을 그리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꿈 많은 청년. 그러나 매일 하루 종일 매달려 추위와 위험 속에서 그들이 그리는 광고는 유명 연예인의 나체 그림일 뿐이다.     

익살스러운 칠수와 우울하고 조용한 만수는 성격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성장과정의 공통점으로 서로 가깝다.

노동의 힘듦 속에서도 가정에 대한 책임과 그리움,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갈구, 미래의 꿈과 희망, 일확천금의 공상 등을 이야기하며 보내던 똑같은 일상의 어느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둘은 지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옥상의 철탑으로 올라간다. 철탑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다 만수의 실수로 페인트통이 떨어지면서 밑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며 둘은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들어간다.       

둘은 동반자살로 오인되고 경찰과 기자가 도착하면서 사태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으며 궁지에 몰린 둘은 결국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씨발! 뛰어내려 !!

 

 

 

 

 

 

줄거리
부모와 형제간의 정을 모르며 살아온 기지촌 용주골 출신의 '칠수'와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던 충청도 수부리 출신의 '만수'. 이 두 사람은 각기 불우한 환경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저 상경했고 현재 뉴서울 예술공사 도장공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이 일하는 곳은 곤도라를 타고 20층 빌딩벽에 맥주선전 광고인 반나체의 여배우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다. 어느날 작업을 마친 두 사람은 장난기 섞인 발상으로 20층 꼭대기에 올라가 소변을 본다. 그러던 중 실수로 페인트 깡통을 떨어뜨리게 되는데--- 사건은 뜻하지 않게 확대되어 전개된다. 그들이 투신자살하려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당황한 두 젊은이에게 '매스컴'과 '전문가'는 엉뚱한 질문을 퍼붓는 동안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투신해 버리게 된다.

 

 

 


작품설명
"말이 나면?" "말새끼" 무슨무슨 새끼라는 말에 힘을 주어 뱉아 놓은 것이다. 그것은 고약하게 구는 고객이 바로 '소새끼'거나 '말새끼'라는 뜻으로 토하는 간접표현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호스티스를 직업으로 가진 여성에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속이 좀 풀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쉬운 대로' 좀 풀린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술집의 고객이 될 수 있는 동료에게 그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약오르고 불쾌하여 참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라고 대답했다. 자기와 동석한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불쾌함을 참지 못해 결국 호스티스에게 꿀밤을 먹이더라고 했다. 칠수와 만수가 고층빌딩에서 맥주회사 간판 모델 아가씨의 유방을 그리며 시까스르는 이야기는 꼭 욕구불만을 '소새끼'나 '개새끼'타령으로 푸는 아가씨들의 푸념 같기도 하다. 특히 칠수의 입담이 재미있다. 남의 논의 농사라도 잘만 되었으면 고맙다고 생각하는 너그러운 농촌 아낙인 어머니의 아들답게 만수는 근검과 절약으로 '장래'를 차지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만수의 환상을 비웃는 칠수의 신랄한 말투가 관객을 웃긴다. 그 위악 뒤에 우애 비슷한 짙은 정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그런 그들이 '꼭대기'로 쫓겨 올라가 - 시원하게 소변을 갈기고 싶어서 올라갔다지만 - '전문가'와 '매스컴'과 공리주의로 얽혀진 사회구조에 떠밀림당해 투신해 버린다. 집단이나 조직의 압력에 의해 투신도 할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는 오늘의 모습이 그런대로 처연하게 비쳐진다. 실제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들이 실체를 파괴하고 못쓰게 만드는 일들은 많이 있다. 필요없이 증폭된 목소리, 활성기만 듣는 귀, 진정을 볼 줄 모르는 눈들이 충만해서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필요없이 증폭된 목소리, 확성기만 듣는 귀, 진정을 볼 줄 모르는 눈들이 충만해서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성에는 안차지만 간접 방법으로 증오를 껌처럼 씹는 사람들과, 간접살인이 벌어져도 죄의식마저도 들 필요없도록 무신경해진 사람들의 면모가 그려지는데도 '칠수'의 노는 짓이 재미있어 시종 웃기만 하게 되는 연극이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쯤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비정한 방관자임을 깨닫고 고소를 머금게 된다.

 

 

 

 

 

여배우의 풍만한 젖가슴, 그것의 대형 광고간판 그리기 작업, 이런 해괴망칙한 자본주의 광고전략을 위해 칠수와 만수라는 두 페인트공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15층 고층빌딩에 매달려 추락 위험을 무릎쓰고 페인트칠을 해야한다. 대형 젖가슴 광고그림과 왜소하게 전락한 인간 실루엣, 유방을 매혹적으로 그려야만 상품이 잘 팔린다고 외치는 사장 ..., 순천시립극단의<칠수와 만수>(오종우 작, 김종호 연출) 공연은 부조리와 불합리를 향해 달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칠수와 만수의 페인트 작업, 무대전면의 허공을 향해 두 배우, 부지런히 손놀림을 해댄다. 대형 롤러붓을 들고 페이트칠 동작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만수 역의 정태선, 청바지 차림, 거꾸로 쓴 모자, 거친 말투로 일관하는 칠수 역의 서수현, 막가는 삶, 즉흥적 사고, 낙천주의 기질, 기지촌 출신의 유랑아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무대 중앙엔 이들의 페인트 작업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이들의 회상씬이 무대 좌우에서 핀조명을 통해 펼쳐진다. 농약과 빚만 남은 시골 농촌, 아들을 서울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만수 모친 ... "후여, 저 놈의 새들 봐라. 후여, 후여 !", 남의 논에 앉아있는 새들을 향해, 심지어 앉아있지도 않은 새들을 향해 어머니(이은화 분)는 소릴 지른다. 그녀의 언어는 새들을 향한 외침이기 보다는 절망을 삭이지 못해 외치는 절규이자 마지막 몸부림이다. 누이의 임신중절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한숨쉬는 만수, 기지촌의 가족들로부터 욕설, 험담, 구타, 냉소만을 배워야했던 칠수, 소외를 달래기 위해 허풍을 떨어보지만 그 어디에서고 진정한 메아리를 찾아볼 수 없다. 빌딩 옥상에서의 방뇨 행위, 이제 그들은 이런 유아적이고 말초적인 배설행위를 통해 답답함을 덜어보고자 한다. 손가락으로 남근을 만들어 오줌을 깔기는 장면, 유치원생들이 즐기는 노랫가락, 유아다운 이죽거림과 빈정거림의 언어가 쏟아지면서 관객은 폭소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기분좋게 방뇨하는 도중 그만 몇개의 깡통이 옥상으로 부터 떨어지게 되고 자동차들 간의 다중충돌, 시내는 온통 교통 혼란과 어이없는 자살방지소동이 일어난다. 고층옥상빌딩과 지상과의 원만치 못한 의사소통, 이로 인해 자살소동으로 착각한 행정당국, 칠수와 만수의 행각은 전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다. 회유하려는 당국자(김영곤 분), "아, 침착하세요, 필요한게 뭡니까 ?"..., 칠수왈: "필요한 것 ?" "돈이요 ! 돈 !" 거의 우화에 가까운 해프닝이 벌어진다. 당국에선 마취총으로 이들을 사로잡으려 하고 ... 총으로 사살된다고 착각한 칠수와 만수, 죽느니 차라리 그물망으로 뛰어 내리는게 더 낫다고 여기는 그들, 고층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절박한 행동으로 이 연극은 끝을 맺는다. 
비정상의 사회를 향한 이들의 야유와 냉소어린 욕설,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음치성 노래, 지리할 정도로 반복되는 흥얼거림, 소외와 무료, 절망을 삭이고자하는 페인트공의 애환이 농도있게 무대화되어 있다. 인간의 생명보다는 특종 취재에 열을 올리는 방송사들의 해프닝, 희화성 이미지, 페이소스의 미학이 완벽하게 살아났는지의 여부, 이 공연에 남겨진 숙제이다. 현대 자본주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일깨울 수 있는 대형 젖가슴 형상, 그 풍만함, 매혹성, 이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의 강구 작업, 다시 말해 배우들의 육체기호와 시각적 무대기호와의 비유적 만남 처방이 강구되었더라면 진지한 사유를 유도할 교훈적 요소 역시 오랜 반향을 얻어냈을 것이다. 여과없이 터져나오는 뒷골목의 저속 언어, 이를 자연스레 소화해낸 칠수 역의 서수현, 응어리진 농촌 총각의 한과 아픔을 다소 어눌한듯 하면서도 구수한 음색으로 소화해낸 정태선, 이들의 콤비 플레이는 진실과 허구, 응어리와 냉소 이미지 간의 대조 묘미를 무리없이 창출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아픔과 소외, 그 극단의 절망, 이런 외침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참 메아리를 들을 수 없다. 막대한 자본의 힘에 주눅든 회사원들, 돈이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유아적 사고, 대형 유방광고간판 만이 돈을 벌 수 있게한다는 희한한 사고, 이를 위해 오늘도 고층빌딩에 매달려 있을 제 2의 칠수와 만수, 그들의 푸념, 외침, 절규는 계속될 것이다. 돈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회 상황, 절망의 극단으로 내몰린 몰가치한 사회 상황, 이런 비정상적 사회 상황을 마주하고서도 불감증에 걸린 듯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공연장 문을 여는 관객들, 그들이 자기 자신일 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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