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소영 '다섯 가지 동일한 시선'

clint 2018. 3. 4. 19:52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

 

 

 

 

한 인물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려보았다.
1장 기(起) 기억의 형성
나는 아파트 현관에서 경비원의 제지를 받는다, 거긴 10년도 넘게 살아온 곳인데 말이다. 실은 경비원은 삼 십 년 후의 '나'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자신을 알아보는지 확인한 것. 물론 미래는 아직 내 기억 속에 없다.
2장 승(承) 승강기 고장
느닷없이 복잡했던 출입절차 후, 엘리베이터 앞에 서지만 고장, 계단을 오르는 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암시한 듯. 누가 그랬다, 인생은 계단 밟듯 차근차근 오르는 거라고... 단,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을 때만.
3장 전(轉)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하루
스물 여덟의 '나'는 옥상에 올라온다, 열쇠도 없고 머리도 복잡해서... 곧 졸업이기에.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등장한 서른 여덟의 '나'. 개발 중인 타임머신 시제품을 성능 점검하러, 하는 수 없이 목숨 걸고 온 것, 자신이 결국 모르모트일 뿐이란 자조. 미래의 나는, 앞으로 '10년간의 주식시장동향' 파일뭉치를 건네고 돌아간다. 보물지도나 다름없는 파일뭉치를 펴보는데, 다가오는 마흔 여덟의 '나'. 재 방문의 목적은, 헛된 욕심 때문에 도리어 인생을 망쳤다며 파일을 돌려달란 것. 모처럼의 횡재를 놓치기 싫은 나와 옥신각신, 결국 나와 나의 난투극... 과연 나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일까. 이 싸움을 한심하게 지켜보는 한 소년... 그는 열 여덟의 나. 웬 아저씨가 와서 미래의 자신이라기에 사실이라면 타임머신을 한 번만 태워달라고 해서 왔는데, 자신끼리 싸우는 암담한 미래만 있다고. 결국 문제의 파일뭉치를 그대로 갖느냐 마느냐는 다수결로 정하기로.
현재의 나와 십대의 나는 횡재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쪽으로 손들어 결국 그대로 두기로. 헛된 욕심만 아니었으면, 적어도 평범한 행복은 가능했을 거라는 마흔 여덟의 나는 결정을 무시하고 파일뭉치를 태우려 한다. 놀란 현재의 내가 불붙은 파일뭉치를 빼앗아 던지면. 붉은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아하게 공중을 선회하는 파랑새. 세 명의 '나'의 눈에는 불붙은 파일이 파랑새로 보인 거다. 풍요로움이 보장된 안락한 미래 말이다. 난간에 걸터앉았던 십대의 나는 파일뭉치를 잡으려다 그만 추락하고.
4장 결(結) 결.자.해.지.
한밤중. 옥상에서 잠이 든 나는, 흔들어 깨우는 경비원의 호통에 잠을 깬다. 덕분에 현재의 '나'는 모든 일을 악몽쯤으로 믿고 돌아간다. 한편 추락한 '십대의 나'는 목숨을 구했단다. 위험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건, 인위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왜곡된 경우 이를 통제하는 '시간관리국'의 활약인 줄 알았지만... 아니다!. 그건 불법 주차한 솜틀집 트럭 위로 추락한 덕분... 모두를 구한 건, 실은 운명이란 얘기다. 참고로 타임머신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면, 시간여행을 한다는 건 마치 통일 전 일반서민들이 서울에서 평양 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된단다. 덕분에 모두는, 원점으로 돌아간 평범해진 각자의 현재로 향하고. 모두 떠난 옥상 위엔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빛 아래를 선회하는 파랑새에서 엔딩.

 

 

 

 

<심사평 : 윤호진>

어느 날 28살 짜리 현재의 '나'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만나면서 겪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누구나 내면에서 스스로 겪을 법한 갈등과 선택의 상황들을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빌어 재미있게 풀어냈다. 신선한 아이디어 외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극적인 코드가 다분히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무대에 형상화시켰을 때 배우나 관객 모두 즐길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동했다. 상식이겠지만, 희곡 집필에 대전제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와 차별되는 어떤 연극적 특징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낙점을 주저하게 만든 작품은 송유억 씨의 '가족사진'이었다. 매끄럽고 차분한 전개 속에 여운을 남기는 미덕이 있었으나 평이한 줄거리가 싱싱한 맛을 반감시켰다. 북 잠수함 침투 사건을 다룬 '고래', 병동에 기거하는 노인들의 회한을 담은 '너는 피고지고 나는 살고죽고' 등도 역시 신선함이 떨어지는 작품들이다. 그 밖의 여러 응모작에서 작법의 기본 기는 보이나 극적 진행의 단순함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0여편의 응모작들은 거개가 약간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나 극적 설득력이 부족해 덧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거나,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스토리가 조합된 미완의 작품들이었다.
이번 당선작은 흡족한 작품은 아니었다. 전후 구조상의 문제로 무대에 형상화했을 때 관객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무대에 올리게되면 다시 한 번 신중히 검토해서 작품의 장점을 더 잘 살려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춘문예의 화두는 여전히 '새로움과 신선함'이다. 응모작을 읽으면서 많은 예비 작가들의 속내를 읽으며 즐겁기는 했으나 중년의 연극인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극장에서 많은 공연을 체험하면서 희곡만이 가진 특성을 찾아내는데 정진해주었길 바란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희곡 역시 쓰는 이의 그릇 만큼만 반영할 수 있다.

 

 

전소영

△1969년 서울 출생 △1993년 성심여대 회계학과 졸업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 극영화시나리오 공모 우수작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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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그건, 어느 유명한 작가가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다만 그 문장을 노란색 포스트 잍에 그대로 옮겨 적은 후, 모니터 위 한가운데에 붙여놓았을 뿐이다. 학창 시절, 액자에 끼워져 교실 정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그것도 항상을 걸려있었건만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급훈 정도로만 여겼었다, 처음엔.
창문을 요만큼만 열어놓아도 바람에 마구 날리는 포스트 잍이 못 미더워서 투명 테이프로 덧붙여 양쪽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옆의 투명테이프를 손톱으로 긁다가 만 흔적이 있다, 너무 부담스러워 떼어버리려고 하다가 그만둔 것이 수 차례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실행에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한 방학 생활계획표를 동그란 원 안에 빼곡하게 그려 넣은 다음, 내가 그린 원 안의 계획들에 스스로 질려 버린 그 느낌이었다. 글을 쓸 때마다 이 문장과 마주해야한다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그만큼이나 버겁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희망하고, 항상 절망하기에. 게다가 매일매일 쓰지 못한다. 그래서다. 허나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선뜻 '답은 이거다'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 있을 때까지는 글을 써야겠다는 동문서답 뿐. 모르긴 해도 당사자인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도 설마 처음부터 그렇듯 도인처럼 글을 썼겠는가하고, 스스로를 추슬러 가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당선소감이 아니라, 각서나 반성문이라도 쓰는가 싶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또 감사드리며. 힘겹게 지켜봐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 뿐 이다.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아버지께 많이 죄송할 따름...그리고 멀리 가있는 친구에게도. 언제 마지막으로 교회에 갔었는지도 아득한 '교인'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글쓰겠다는 나를 많이 걱정하셨던, 실은 그래서 더욱 기뻐하실, 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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