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창일 '꽃며느리'

clint 2018. 3. 4. 19:35

 

 

1장
어느 중년부인이 4년 전에 집을 나간 딸 정애를 찾기 위해 방송을 통해 광고한다. 외딴 섬에서 살고 있는 엄니는 아들 셋을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보낸 것이 걱정이다. 어느 날 읍내 주막의 양금 네가 찾아와 색시 감을 소개시켜 준다며 엄니에게 돈이나 준비해 놓으라고 말한다. 엄니와 세 아들은 새색시를 맞을 준비로 분주해진다.
2장
새색시가 도착하자 아들들은 일은 안 하고 그녀를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니는 정애와 큰아들의 신방을 차릴 준비로 바쁜데 정애는 방에서 만화책만 본다. 아들들은 정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그녀가 가슴이 답답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3-4장
엄니는 정애가 가출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사정을 알게 된다. 정애는 밤에 도망을 가다가 둘째에게 잡혀 되돌아온다. 막내는 정애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큰형에게 들킨다.
5장
정애는 큰아들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둘째는 정애를 데리고 도시로 도망가려고 계획하는데 큰아들은 막내에게 그녀를 양금 네 아주머니 집에 데려다 주라고 시킨다. 정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둘째는 어두운 표정으로 사라진다.
6장
정애를 데려다 주러 간 막내는 열흘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둘째도 어디로 갔는지 연락이 없자 큰아들과 엄니는 걱정만 하고 있다. 그때 순경이 찾아와 정애의 행방을 찾기 위해 큰아들을 데리고 간다. 엄니는 텔레비전 광고에 나와 세 아들과 며느리를 찾아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한다.

 

 

 


작품설명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을 법한 정, 그 흔해야만 할 인지상정이 귀한 존재로 자리하게 된 지금 우리는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가 우리 가까운 곳에 일어나고 있어도 무관심 속에 흘려보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를 다만 사회적 상황만을 보고 간접 체험을 할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꽃 며느리>는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두고 시작한 작품이다. 아픈 현실, 쓰라린 추억들을 내면에 감춰 두고, 지루한 나날 오로지 그물질만 하며 세월을 보내는 외딴 섬 세 형제들은 메마르고 각박한 시대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거의 무지에 가까운, 노모를 모신 세 형제의 순박한 마음에 차가운 돌멩이를 던짐으로써 이들이 겪어야 하는 갈등과 괴로움은 우리들에게 가장 서정적인 비극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서는 현대 사회인들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순수성을 일깨우고 자신의 현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심도 깊고 예술성 짙은 작품이다. 결혼을 하지 못해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섬사람들의 절박함은 더해만 간다. 이들의 소망은 좋은 색시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작가는 항상 이 같은 모티브를 작품<꽃며느리>에서 뿐만 아니라<안개섬>에서도 선호하고 있다. 이 공연은 농어촌 결혼 못한 노총각 문제를 인신 매매의 세태와 결부지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고발의 모티브는 직격탄식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비정상적 상황의 배면에 깔려있다. 직설적 고발 대신에 도망간 며느리와 그녀를 찾아 나선 세 아들들을 애타게 그리는 노모의 아픔이 관객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듯 스며 들어 온다.

 

 

 

* 김창일

'극작가 김창일'이라 말하면 스스로 겸손하고 송구스러움을 주체 못했던 그, 동시에 남도사람의 넉넉한 인정과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그를 80년대 목포 연극중흥의 주역이요 90년대 연극 전성기를 주도한 주인공이라 말한다면 지나친 과찬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 김창일은 65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들어감으로써 본격적인 연극수업에 몰두한다. 군제대 후 71년도에 국립극장에서<한 여름밤의 꿈>을 김병조, 안인숙, 박영문 등과 주역을 맡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대형 공연무대를 뛰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30여편을 서울 공연무대에서 임동진, 한인수, 현석 등과도 함께 활약한 바 있다. 김창일의 연극인생은 부친의 별세와 더불어 급전된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장남인 김창일은 가정 형편 때문에 불가불 고향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좌절된 꿈을 삭이며 생업을 찾아 뛰어 다닐 때 예술적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대학 교수들이 연극반 지도를 부탁, 연출론을 강의하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목포 연극을 외롭게 지키고 있던 김길호가 연극작업을 권유하게 되었고 이로써 그는 서울에서 못다푼 한을 고향 목포에서 풀 수 있게 되었다. 목포 예술제 전야제 일환인<늙은 삐에로의 수첩>공연에서 그는 연극 배우로서 진가를 인정받았지만 김길호의 상경으로 연출자의 몫까지 감당해야 했다. 연극작업을 통해 생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그는 주변으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받기 시작한다. 직장 상사인 숙부 및 아내가 그의 연극작업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가족 몰래 연극작업에 임해야 했다. <늙은 삐에로의 수첩>공연 현장에서 숙부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의 연극 작업을 찬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연을 계기로 김창일은 숙부의 허락을 얻어 내는데 성공하였지만 아내의 반대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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