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도박이다. 우린 매 순간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될 때가 너무도 많다. 동업을 해, 말어? 했다가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 말어? 한번 선택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따라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사느냐의 문제와 직결 되는 것이다.
나용두는 52년생 용띠다. 꼼꼼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만화가다. 지견숙은 58년 개띠다. 덜렁대고 당찬 잡지사 기자다. 지견숙은 나용두를 취재하기 위해 그의 작업실을 찾는다. 그곳에서 야구중계를 TV로 보다가 둘은, 어떤 선수의 출신교를 놓고 「자기가 맞다」고 서로 다투게 된다. 이 싸움이 극에 달하여 결국 둘은 내기를 걸게 된다. 지는 사람은 이기는 사람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된다는 벌칙이다. 이 내기에서 이긴 나용두는 지견숙에게 청혼을 하게되고 둘은 결혼한다. 결혼 생활은 서로의 문화적 차이로 곧잘 위기에 처한다. 둘은 의견대립을 보일 때마다「내기」를 하여 승자에게 선택의 권한을 준다.그것은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가장 공평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얼음위에 오래 서있기 시합 이라든가, 혹은 63빌딩 한달 전기세를 맞추는 사람에게 아파트 딱지를 사느냐, 안 사느냐의 선택권을 주는 것. 별난 부부의 사랑 얘기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쁜 사람들의 이쁜 얘기다. 코미디와 감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고급 폭소극이다

『용띠 위에 개띠』는 혀에 착착 감기며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감칠맛 나는 말재주꾼 이만희씨의 첫번째 희극작품이다. 더욱이 그의 작품에서는 기막힌 타이밍에 던져진 지극히 함축적인 한 마디로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말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과 인간, 가치를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과 만날 수 있다. 웃음 속에서 작가 이만희의 인생관, 세계관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아직도 사유하는 사람」「깊은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 불리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불꺼진 무대 앞을 쉬이 떠날 수 없는 것도, 묘한 여운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가슴 따사로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것도, 작가와 작품 때문 이리라

세태풍자적인 내기놀음 인생 -<용띠 위에 개띠>극작가가 연출을 담당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극작가가 연출가로 변신하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역으로 말해 연출가가 작가로 나서서 명성을 얻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극작가로서, 연출가로서의 고유 영역이 지나치게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연기자나 기타 연극계 관련 인사의 다른 영역 진출은 연극계 스스로 자제하거나 배타시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한 이 시대에 과연 그런 한계와 제한과 역할 분담이 그대로 금과옥조처럼 신봉되어야 하는가.
이만희가 연출가로 데뷔하면서 그의 말대로라면 절대 연출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하는 친구들 사이로 ‘교통정리’하는 정도의 개입이라고 계면쩍어한다는 것도 영역 침해의 터부를 범하지 않겠다는 겸손일 수 있다. 어쨌거나 강영걸 연출과 콤비를 이루어 왔던 극작가 이만희가 강영걸 없는 독립 개체로 작가 겸 연출가로 데뷔하는 작품이<용띠 위에 개띠>(1997. 9.1-10.15일, 대학로 극장)이다.

희곡작품 자체보다 이만희다운 연출 솜씨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 공연의 전체 인상은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재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 이만희의 연출 솜씨가 강영걸 연출만하다는 결론이 된다. 그만큼 무대 진행이 스피디하고 연기자들의 호흡 또한 잘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연출의 개입이 필요 없을 만큼 무대에 익숙한 연기자들이 저희끼리 앉아서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연기자들 사이의 호흡을 골라주고 무대진행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정리하는 것이 연출의 기능이라면, 연출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는<용띠/개띠>의 이만희 연출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연출가 변신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연출가다운 개성이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그는 신혼 장면 다음 장난스럽고 시적인 원숭이 장난감 하나를 어두운 무대 일각에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묶어 두었고, 그것이 소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를 비누거품처럼 터뜨림으로써 연출이 있음을 암시한다.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어둠을 받치고 있는 원숭이 인형의 움직이는 꼬리에 이만희 연출의 모든 것이 집약된다.
남성 우월주의자인 용띠(52년생)의 만화가 나용수(최성우/이도경)와 남녀평등주의자, 시쳇말로 하면 페미니스트인 개띠(58년생) 잡지사 여기자 지견숙(권재희/김명희)은 첫 만남에서 내기의 승자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결혼이 성립된다. 이 별난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신혼여행, 출산, 결별, 싸움 등 고비를 이루는 서사적 연결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데, 그것도 경상도 억양 때문에 억셈 속의 정서로 다가온다. 어차피 결혼이 내기로 맺어졌으므로 삶의 고비도 내기로 풀어야 한다. 그렇다며 타고난 탄생도 내기여야 하고 죽음 또한 내기로 선택권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그렇게 논리정연한 결말을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암으로 임종을 기다린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도입부는 내기와 상관없다. 고비마다의 내기가 코믹 터치일 뿐이다. 죽음이 내기놀음의 주제에서 벗어난다는 항의성 비탄은 가벼운 코미디를 심각한 주제로 돌려 놓으려는 묵은 발상법에서 온다. 오늘날의 세태가 그렇게 가볍고 감각적이고 표피적으로 흘러가는데 내기가 크게 한 몫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 이만희가 그렇게 용띠 남자를 잡는 개띠 여자를 내세워 우리의 세태를 속상하지 않을 만큼 꼬집어 놓고 경상도 남녀의 사투리 속에 경상도 무뚝뚝이의 따뜻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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