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의 등받이가 안보일 정도로 바닥과 벽까지 꽉 찬 극장의 열기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하는 배우들의 열정이 뒤엉켰던 정말로 감동적인 드라마! 과부 4인과 유일한 남정네 부동산 아저씨가 엮어가는 정말로 포복절도하는 가운데, 진한 슬픔이 담겨 있는 극이었다. 극에 달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하나의 점에 마주치는 것일까? 공연 내내,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순간 순간이 나의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했다.

정말로 희한한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낸, 아버지와 남편은 모두 죽고, 치매환자인 친정어머니와 괴팍한 철부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너무나 착한 옥순, 그들 주위에 감초처럼 맴도는 푼수이지만 정이 넘치는 아낙과 읍내 부동산 아저씨가 나타나서, 숙명적인 그들의 인연의 끈이 끊어지게 하는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다. 약간 독특한 주제이긴 하지만, 그 관계설정만 빼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니 지금까지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캐릭터 속에 담겨 있는 내면에는 또다른 복잡한 소우주가 들어 있는 듯, 그들이 겉과 속을 뒤집듯이 끄집어내는 내면세계가 서로 상충하고 일치하기도 하는데, 그 어우러짐의 미학이 벽면을 비추는 일그러진 푸른 소나무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가슴이 저미는 듯한 슬픔의 잎을 떨구고 있었다. 나로 하여금 이러한 복잡한 느낌에 휘말리게 한 것은, '연기의 힘'이었다.

단순하고도 조촐한 무대를 모두 상쇄시킬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는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 뛰어났고, 자연스러웠으며,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순간순간의 아쉬움들이 있긴 했지만, 연극이 아닌 실제의 삶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었다. 삶의 소소한 기쁨과 슬픔을 아주 능청스럽고 응집된 표정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연기에 아주 감탄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티격태격할 때는 정말로 웃음이 나왔고, 그 웃음이 나를 너무 벅차게 하고, 결국 그 처연함에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국의 전통적 인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네들의 인고의 미, 흐르는 강물에도 의미가 있음조차 묻지 않고 운명에 순종하는 모습, 크진 않지만 일상 속의 조촐한 행복에 만족하는 그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의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아의 발현, 하지만 결국 나의 아픔과 상대방의 아픔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숭고한 미 등이, 그들의 표정에서, 몸짓에서, 울부짖음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늘 그 자리에 푸른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변하지 않는 소나무! 계절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모습, 그것이 바로 인간이 정말로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고통도 슬픔도 없는 삶,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 소나무를 향해 말을 걸고, 돌파구가 안 보이는 힘겨운 삶을 호소하는 순간, 이미 그 모든 힘겨움은 그 푸른 빛 속에 흡수되고...

옥순의 고뇌의 호소의 눈물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휴식의 공간으로 인도하게 된다. 한 남자의 끈으로 연결되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그들은, 거의 동시에 같은 꽃분홍 한복을 입고 또 같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 끈의 끝을 붙잡고 있는 옥순의 삶은 어쩌면 또다른 숙명의 고리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며... 이 극의 제목처럼 영원히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 우리 인간은 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단지, 그 아래에서 영원히 삶의 끈을 놓치 못한 채,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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