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허무 깃든 일상의 권태로움 -<피고지고 피고지고>국립극장 창작극 개발 프로그램으로 지난해에 선보였던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재공연(1994. 8.26-9.7일, 국립극장 소극장)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가 그냥 놓쳐 버렸던 부분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그 첫째가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적 패러디화(化)와 그 검증의 가능성이다. 주지하다시피<고도…>는 오지 않는 신의, 희망과 평화의, 혹은 꿈과 이상의 대명사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세월을 보낸다. 그가 온다는 메시지의 발신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다리는 데 익숙해지고 그 익숙해짐에서 인생의 참모습을 연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기다리는 과정에 인간이라는 이 놀이의 존재는 온갖 재롱을 부리며 삶의 권태로움을 잊고자 한다. 별 의미 없는 신발 신기라거나 먹기 행위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큰 사건처럼 보이는 포조와 그이 주인 사이의 반전극 등도 결국은 의미없는 일상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전개를 반드시<고도를 기다리며>와 대비시킬 수는 없지만 그것이<고도…>의 한국적 패러디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도 기다리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며, 기다리는 과정에서의 권태로움을 삭여주는 별 의미없는 사건, 즉 요정마담 난타의 출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기다림의 주제로 신현숙 교수도 이 작품과<고도…>를 초연에서 이미 비교했다).<고도…>가 지닌 추상성과 양식성에 비해<피고지고…>의 경우는 패러디인 만큼 현실에 대한 세속성, 혹은 통속성이 강하다. 양식에 있어서의 1, 2부는 반복의 효과로서 현대의 권태로움을 상징하는 양식으로 활용되기보다 서사성의 연계기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고도…>에서는 기다려지는 그 대상이 신이거나 희망이거나 꿈, 혹은 압제에서의 해방 등 구체적인 각종 관념과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피고지고…>에서는 도굴범들을 무대에 묶어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혜초 여사의 조종과 발굴될지도 모르는 보물에 대한 기대가 등장인물들을 부리는 술수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드라마의 특징인 말의 홍수가 거론될 수 있다.<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제목 자체가 일종의 반복언어의 효과를 계산했고, 그것은 지루한 과정의 한 측면을 부각한 것이다. 그 삶의 과정에 대한 희곡문학의 접근은 어눌한 언어이거나 요설의 언어일 수밖에 없게 된다. 삶의 진리는 침묵이거나 다변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대 드라마가 보여주는 경향이다. 베케트나 이오네스코가 그려낸 추상적 부조리극에서는 특히 어눌과 요설이 두드러진다. <피고지고…>에서도 세속화된 언어의 요설을 눈여겨볼 일이다.<신 왕오천축국전>에서 왕오, 천축, 국전은 할 일 없는 세 늙은이의 이름으로 부여된다. 고유한 이름에도 의미부여는 없다. 따라서 등장하지 않는 혜초 여사나 욕정적인 마담 난타에게도 명명(命名)의 의미, 즉 언어의 논리적 명쾌성에 대한 작가의 신뢰는 부여되지 않는다. 혜초 여사와 마담 난타도 관념상으로 하나일 수 있다. 아니면 분리된 관념상의 존재개념일 수도 있다. 혜초 여사는 관념세계이며 마담 난타는 현실의 육화일 수도 있다. 언어는 아무것도 구체적인 것을 창조하지 못한다. 도굴꾼인 세 늙은이가 기대하는, 발굴 골동품에 대한 꿈과 희망에 얽히는 그들의 과거와 그 삶을 반영하는 말의 향연은 허망하고 겉돌고 내용이 없는 요설일 뿐이며, 하루 하루를 사는 데 편리한 기능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속화된 삶을 세속화된 언어로 드러내는 이 패러디의 작품에는 다분히 익살과 골계의 고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조가 짙다.<고도…>와 다른 점은 이 페이소스의 음영에서 오는 것이며 거기에 작가 이만희의 동양적 전통의 교양이 연극<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서사성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만희의 요설의 언어를 연출의 강영걸은 이문수, 김재건, 오영수, 손봉숙의 행위로 ‘수다’화한다. 이문수, 오영수는 그들의 개성을 그냥 갖고 있으나 김재건과 손봉숙은 그들의 개성을 역중 인물 안에 철저히 감출 정도로 변신하였다.

갈 때까지 간 패잔병들의 마지막 한탕, 프로젝트명 ‘신 왕오천축국전’
작품의 주인공들의 이름은 신라 때의 고승 혜초가 727년에 4년 동안 천축(인도)을 기행한 후 쓴 「왕오천축국전」에서 따왔다.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신라 때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절터 얘기를 들으면서 이들은 인생의 마지막 베팅을 절터(돈황사)의 도굴에 건다. 이들의 도굴을 뒤에서 조종하는 여자는 신혜초, 나이순으로 신왕오(이문수 역), 신천축(김재건 역), 신국전(오영수 역)이라고 창씨개명까지 한 이들은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이라 사업명을 정하고, 돈황산 아래 돈황굴을 파며 오로지 보물을 발견하겠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한달 한달 하며 참던 것이 어느새 3년. 보물은 과연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아니 보물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난 누굴 기다리는 게 제일 싫어. 밀수 할 때도 매일 접선 접선 접선! 기다리는 게 일이었지. 저쪽 놈을 기다리노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라. 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이 자식이 배신한 건 아닐까, 짜부가 낌새챈 건 아닐까…. 의심의 연속이지. 극도로 불안해지고 도망치고 싶고 나중엔 내가 먼저 배신해버리고 싶어진다고.”(왕오)
3년 동안의 도굴생활로 사람들과 하다못해 택시나 버스까지 아니 서울역 화장실 찌린내까지 그리워하는 왕오, 천축, 국전. 보이지 않는 보물에 대한 이들의 기다림은 미련이 있는 한 욕망이 있는 한 결코 버릴 수 없는, 아니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마는 또 하나의 ‘고도’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인간 욕망의 질기고 질긴 미련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또한 현대사회 속에서 지표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 진리, 대저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대저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아니던가. 백일홍이 피었다 진다한들 어찌 세월을 탓할 쏘며 이 몸 죽어 무소귀면 산천 또한 더불어 황천행이 아니던가. 인간이 신선의 경지에 달하면 어찌 재물이 재물인쏜가, 어찌 권력이 권력일쏜가, 죄는 욕망을 좇음이요, 욕망은 무지를 좇음이니 욕망의 개꿈 속에 머물다간 세월들이 못내 아쉽도다.”(천축)
“… 그런데도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고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야. 지구는 별 축에도 못 껴. 더부살이하며 떠도는 항성에 불과해. 인간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똑같은 거야. 그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는 거야. 이 쪽 저 쪽 옮겨 다니면서…. 어디 쯤 엔가 우리가 살만한 별들이 또 있겠지, 안 그래? 이렇게 큰 우주 속에서 그런 별 하나쯤 없을 라고? 헤헤헤….” (천축)
드러내놓고 주제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재미와 철학이 조화되어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인생의 패잔병인 노인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욕망과 꿈의 덧없음을 직설적인 언어에 은유적인 효과로 풀어낸다.

세 노인은 왜 도굴을 할까? 오늘도 … 글 : 구히서 (연극평론가)
좋은 공연에 대한 기억은 참 소중하다. 국립극단이 50년 역사속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을 골라내 새 무대로 다시 만드는 작업은 그러므로 의미가 크다.<피고지고 피고지고>는 1993년 초연돼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영진작 김상열 연출의<맹진사댁 경사>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창작무대로 선정돼 그동안 4차례의 국내무대와 미국뉴욕공연을 갖는 등 총 5차례의 공연을 가져왔다. 창작극의 대부분이 초연으로 사장돼 버리거나 어쩌다 재공연이 있더라도 많지 않았던 우리무대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이작품은 그동안 자주 그리고 가깝게 관객과 만나온 이례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의 50년사 대표 레퍼터리로 선정된 작품들 중에서 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세 명의 나이든 남자와 한명의 젊은 여자다. 우선 국립극단의 레퍼터리 중에서 가장 소규모 출연진으로 만들어진 무대다. 무슨 거창한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문제작 같은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국립극단의 주요 레퍼터리로 선정된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몇 가지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처음<피고지고 피고지고>의 무대를 대했을 때 이 작품의 작가 이만희와 연출가 강영걸의 만남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었다. 이 두 사람은 그때 이미 극단민예의<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로 서울연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등 각종상을 받았고 대학로 극장에서<불좀 꺼주세요>의 공동제작에 참여해 연극계의 새로운 공연관행을 만들어 내는등 우리무대에 확실하고 차근차근한 족적을 그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사람은 ‘말’을 아는 작가, 한사람은 작품읽기의 깊이와 무대구축의 장인으로 평가를 받고있는 연출가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국립극단의 중견 연기진들의 단단한 연기앙상블과 조화를 이루면서 득의 무대로 태어났고 이무대의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오래 좋은 무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공연무대를 마주대했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은 말의 재미였다. 이 작품에는 왕오, 천축, 국전이라는 이름의 세 노인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을 붙여서 불러보면 그대로 혜초의<왕오천축국전>이 된다. 여기에 이 세 노인을 고용한 여자의 이름은 난타다. 견강부회로 보자면 그 이름 역시 백제에 불교를 전한 승려 마라난타쯤에서 왔다고 할까? 세 노인은 젊은 시절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 온갖 잡동사니 범죄속을 드나들며 살아온 평탄치 않은 삶의 주인공들이고 이들의 고용주인 혜초여사는 과거와 직업이 아리송한 여자다. 세노인 하고 있는 일은 몇 년째 땅굴을 파면서 옛 절터에 뭍혀 있다는 전설의 보물을 찾는 것이다. 무대위에 사건은 없다. 땅을 파고 흙을 처리하고 그 흙으로 화초를 기르고 가끔씩 찾아오는 혜초여사를 바라보며 농담도 해보고 그런다. 무슨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극이 진행되면서 뭔가 변화하는 상황도 없다. 이들은 계속 땅굴을 판다. 보물을 발견한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 희망마저 희미해진다. 이들의 행위를 좀 거창하게 설명하자면 마치 그리스신화의 시지프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연극으로 치면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가 부럽지 않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무대가 그만큼의 의미와 크기로 관객에게 슬금슬금 다가와서 큼직하게 마주서서 의연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이고 능력이다. 이 무대의 이런 힘은 작가가 만들어낸 말들, 그 말들에 리듬과 의미를 찾아서 차근차근 구축해낸 연출의 손길, 그 말과 그 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서둘지 않고 풀어낸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등이 모여서 이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작품의 초연무대 프로그램에 글을 쓰면서 작가 이만희의 말에 대해 나름대로 뭔가 설명을 해보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디에나 ‘말’이 있다. ‘말’같은 ‘말’, ‘말’다운 ‘말’이 있다. 그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사실감이 있다. 그것은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현실적인 느낌과는 다른 진실함이다. 그것은 그가 끌어낸 그의 주인공들이 겪는 그들의 생활이며 그 생활속의 진실이다. ’ 이글에는 작가 이만희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말에 대한 감격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말들은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가락이 있고 신명이 있고 자금자금 삶의 진리가 스며 나오고 큼직큼직하게 삶의 의미를 그려낸다. 연출가 강영걸은 이만희의 이런 ‘말’들을 살려내는데 신이난 듯, 신명나게 풀어낸다. 그 말들이 지닌 가락을 찾아내고 장단을 추려내고 신명을 입혀서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덩치 큰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무대에서 장인정신이 투철한 연출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언어의 분석과 표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저한 자세와 기술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그는 작가의 말을 알고 그 말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연출가다.<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 공호석을 필두로 한 민예배우들의 최선의 연기를 끌어낸 것이나,<그 여자의 소설>에서 이용이를 비롯한 배우들의 득의의 연기를 할 수 있게 한 것이 모두 그러한 ‘바르게 말하기’의 장인으로서 그의 힘과 능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수 있다. 이 무대에서 세 노인역을 맡은 오영수 이문수 김재건은 15년전에 이미 국립극단의 중견단원으로 좋은 연기 로 득의 무대를 만들어냈었다. 그들은 그 이후 계속된 무대에서 같은 배역으로 함께 무대에 섰고 이제는 그무대, 그 배역의 이미지가 그들 연기인생의 주요 좌표가 됐을 정도다. 어떤 부분 어떤 대사에서 그들은 관객의 뇌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소리와 어조, 느낌을 만들어 냈다. 이제 그들은 극중 세노인의 나이와 비슷비슷한 연배가 됐다. 어쩌면 2008년의<피고지고 피고지고>의 무대에서는 이들 원로가 되어가는 세배우의 명연기중의 명연기를 볼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기억을 능가하는 더욱 극중 인물, 왕오 천축 국전다운 주인공들이 우리를 만나러 무대에 등장하지 않을까? 이 무대에 화사한 색채를 보태주는 난타역에는 처음에 손봉숙, 2대 난타로 이혜경이 등장했었다. 이두여배우는 세노인과 땅굴이라는 칙칙한 무대에 이색적인 색깔을 칠해주는 역을 아주 선명하게 해줬다. 두 배우 모두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면을 많이 만들어내 보여줬었다. 새 무대에는 3대째의 새로운 난타로 국립극단의 젊은 주역인 계미경이 등장한다니 그 또한 기대가 간다.
2008년의<피고지고 피고지고>가 감격일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연출가 강영걸씨가 아직도 건재해서 다시 한번 이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병에서 일어나 다시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데 그의 성공무대 중에 하나였던 이 작품을 새롭게 다듬어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피고지고 피고지고>에 기대의 갈채를 보낸다.

■ 공연리뷰 기사 (1)
세 노인의 유쾌한 희망찾기 ‘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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