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에서 죽음은 무대 현장으로 구체화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보고된다.
탄광생활의 처절함을 겪었던 각 인물들은, 아픔, 고뇌, 소외를 드러내거나 토로하지 않는다. 현실은 암담한대도 이들은 각기 그 나름의 꿈을 지닌다. 이 꿈들은 하나같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비참한 광산촌의 삶, 그것이 각자의 내면에 그리고 각자의 상처로 담겨져 있다. 규폐증에 걸려 강제 퇴직당한 아버지는 노두 광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절망을 토로하고 외치기보다는 아버진, 노두광산에 대한 환영, 지극히 비현실적인 꿈놀이를 할 뿐이다. 노사분규가 절정에 달할 때 큰 딸 계희는 달리는 갱차에 두 다리를 잃고 만다. 어처구니 없는 광산 사고, 그녀는 억울한 피해자이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그녀, 거의 무표정,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녀, 그녀는 오직 기러기 조각상 제작에 몰두함으로써 하늘을 날고픈 꿈을 버리지 않는다. 장남 동근은 노동자의 권익을 외치다가 파업 주동의 혐의로 옥고를 치룬 바 있다. 그 누구도 동근을 친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사업주는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둘째 딸 영희는 절망의 광산촌, 어두운 광산촌, 검정일색의 광산촌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 탈출의 방향은 하얀 남극 대륙에 대한 탐험이다. 그러나 이런 영희의 꿈은 실현될 리 만무하다. 큰 딸 계희에게 약혼자 준태가 있다. 그가 등장하자 광산촌의 암담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진다. 노동자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발버둥쳤던 준태, 위장 취업했다는 혐의로, 노사분규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경찰서에 붙들려간다. 억울함이 극에 달하고 답답함을 감내하지 못한 채 그는 조사 도중 혀를 깨물어 자살한다. 장남 동근 역시 비슷한 혐의로 억울하게 조사를 받아야 한다. 하숙생 경희마저 절망적 가정환경, 암담한 가정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노두광산에 대한 환상이 극에 달한 아버지, 그는 가족들과의 상의 한마디없이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 정신착란에 가까운 아버지의 상황, 절망적 상황의 반복, 중첩은 극에 달한다. 약혼자 준태의 죽음은 계희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준다. 그러나 이 충격적 사건은 이미 절망을 경험한 뒤 자기 만의 자폐증적 태도와 몽환적 행위에 젖어있던 계희에겐 그저 단순한 사건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언, 무표정 상태로 일관한 계희, 이는 치유불능의 가정 상황을 상징하여 준다. 기러기 처럼 창공을 날아가고픈 꿈, 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모닥불 아침이슬>이 막장 안의 비참한 죽음들을 생생한 현장으로 무대화시켰다면 <초승에서 그믐까지>에선 각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절망, 아픔, 상처, 갈등을 내면에 담고 있을 뿐이다. 고통과 좌절의 생생한 현장은 모두 인물들의 언어속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광산촌에서의 삶, 그 절망의 구조, 그 암담함의 구조가 워낙 막강하기에 각 인물들은 몇 번의 부딪침 끝에 쉽게 무너지고 좌절하고 만다. 그 좌절은 비정상적인 신체 언어, 침묵, 비현실적인 행위, 환상적인 꿈, 비정상적인 대화 구조로 구체화된다. 절망의 이미지, 무기력의 이미지, 반현실주의적 사고, 몽환에 가까운 행동, 자폐증세에 가까운 조각행위, 이런 행위들이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도 그리고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비정상적인 광산촌의 현실, 몰가치한 탄광사회, 각 인물들은 그 막강한 힘에 짓눌려 무기력한 이미지로 머무르고 그 어떤 문제 해결의 조짐도 제시되지 못한다. 사태의 미해결성, 각자의 내면언어에 함몰되어 있는 반드라마적인 연극 구조, 연극<초승에서 그믐까지>공연은 윤조병이 만들어간 우리식의 사회고발극이자 하우프트만 식의 사회극의 색채를 농후하게 띠고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글
탄광지대를 무대로 한 3부작 중 세 번째로 마지막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모닥불 아침이슬〉은 막장 속에서 탄을 캐내는 다섯 명 갱부의 처절한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존재론적 삶을 그렸다. 두 번째 작품 〈풍금소리〉는 막장 밖에서 살아가는 갱부 가족들의 일상생활과 위기,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과 그것들을 극복해내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적 삶을 그렸다. 세 번째 작품 〈초승에서 그믐까지〉는 3대를 광부로 살아오는 한 가족의 작업의 위험과 시대의 부조리에 대응하고 저항하는 우주론적 삶과 시대 저항적 삶을 동시에 그렸다. 사실 우리의 탄광 도시는 도시 환경이나 역사성이 보잘것없고 짧으면서도 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흥망성쇠의 애환을 갖고 있다. 숱한 사나이들과 그 가족들의 운명을 겪고 있는 탄광지대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은 눈물겹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탄광 자체가 갖고 있는 어둠이나 위기는 자연적 특성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지혜를 터득해가면서 조화를 이룩해야 한다. 초기의 원시적 채탄방법에 비해 현재는 기계화 과정을 거치고 있어 탄광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모습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광업주와 탄광근로자 사이의 관계는 마치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복사하고 있는듯한 비극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몇 년 동안 탄전지대를 돌면서 그런 치부와 마주쳐왔는데 때로는 소재의 한계 때문에 우회했고, 때로는 예술이라는 따뜻한 시선의 그물 때문에 심화 혹은 승화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은유 혹은 상징이라는 방법으로 발언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아픔과 함께 비겁자라는 자책의 매질도 받아왔다. 시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달라진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결국은 그 소문이나 의지는 혼탁한 흐름속에 잠겨들고, 현실은 언제나 현실 그대로 버티고 있다. 성숙의 시대가 어서 오기를 기대하면서 작품 속의 탄광촌 제2세대에게는 우주론적 삶의 모습을 정서적 감흥으로 그렸고, 제3세대에게는 시대저항적 삶을 충격적으로 그렸다. 그건 그들의 염원이면서 작가의 양심이지 그 외의 의도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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