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인 태조 이성계와 고려 왕조를 뒤업고 이씨 조선의 개국 공신인 태종 이방언과 그의 장자인 세자 양녕대군과의 숙명적인 고뇌와 갈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일찍이 세자에 책봉된 양녕은 왕인 태종의 심기를 여러모로 흐트린다. 왕비, 대신들의 간언 마져도 달갑지 않다. 반면 셋째인 충녕(후의 세종) 모든것이 출중하고 왕의 마음을 아는듯 자신을 흡족하게 하며 양녕과 대조가 된다.. 결국 중신의 후첩을 꼬여 감추고 북을 찢는둥 기행을 일심는 양녕과 의 격론 속에 양녕은 아비와 똑같이 되라는 가르침에서 벗어 나고픈 것이며 왕은 지난 혁명사 특히 왕자의 난에서 겪었듯이 자기휘하에 서는 자기와 같은 아들을 원했던 것이고.. 그 배경에 충녕의 큰 그릇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양녕은 폐 세자 되고 충녕이 책봉되며 북이 울리는데..양녕의 마지막 대사는 여운이 남는다..
부인인 숙빈에게 '저 새처럼이젠 자유롭게 훨훨 날며 삽시다..충녕에겐 잘된 일이지요.."
그리고 완은 충녕에게 넌즈시 청한다.. 형제간의 우의를 생각하고 끝까지 반대했던 황희 등 충신들은 큰 재목이니 때를 봐서 다시 복권시키라고 한다.
극단 「고향」의 <북>은 전형적인 한국의 사실주의 사극(史劇)이다. 이 연극에는 정치 權力과 인간의 문제가 함수관계로 얽혀 있다. 태종이 뜻을 성취했을 때 그는 졌고, 양녕이 세자의 자리를 내놓았을 때 그는 이겼다. 형식논리상 대중의 북이 가장 컸지만 그것은 그만큼 속이 빈 것이었고, 왕세자 양녕의 북은 충녕대군(세종)의 그것만큼 소리가 크지 못했지만 가장 속이 차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변에서 왕과 양녕이 벌이는 가장 인간다운 대화는 지나간 역사의 과정, 이씨(李氏) 화가 위국의 과정에서 흘린 피의 노력과 그 토막토막의 맛을 몸으로 드러내는 변신의 연기술을 통해 연출적으로도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강압의 정치에 반대하고 「떡살」이 아닌 개성의 自由, 예술가적인 부드러움의 인간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政治의 비정(非情)을 작가와 함께 허무적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정치극 <북>도 브레히트적으로 말하면, 그 시대의 문제 배후에 있는 인간과 정치의 갈등을 암암리에 고발한 것이다. 고발이라는 표현이 거창하다면 提示라는 말이 타당하다.

<북>은 조선왕조 건국초의 太宗大王과 세자 양녕의 관계가 기둥 줄거리이다. 앞서 두 작품이 역사적 시대상황과 인간관계를 설명한 것이라면, 이번 것은 한 自然人의 무한한 意志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 대왕은 그 자신의 권력과 명예욕에다 「건국」이라는 창업수성의 역사적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권력의 飽食家이다. 그는 또 한편으로 創業의 당위성을 향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사고와 행동의 尺度는 분명한 것이다. 모든 것이 「창업의 자」로써 재어지고 그려지며 재단된다. 그의 잣대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분명하다. 만일 이 칫수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고, 버려지는 것이다. 여기에, 성격과 생각을 각기 달리하는 아들 양녕과 충녕, 부인 원경왕후, 그리고 선비 황희 등의 여러 인물들이 끼어들어서, 그들은 서로 만난다. 作者는 그를 비난하거나 펌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그의 숱한 변신과 비정, 냉혹성에 선뜻 박수를 보낼 수도 없다. 다만, 우리의 太宗왕이 거기 그대로 우뚝 서 있는 것만이 眞実이라고 할 수밖에. 한 拙作의 잘잘못은 뒤로 미루고, 나도 이제는 선량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아무쪼록 좋은 연극을 볼 수 있기를 나도 가슴 조이며, 허술한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 넣느라고 애들을 쓰신 연출자 박용기 선생이하 스탭진과, 훌륭한 연기자 여러분들께 깊이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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