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강백 '진땀 흘리기'

clint 2015. 11. 18. 22:52

 

 

 

시간적 배경은 1720~1724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창덕궁이다.
이 작품은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신임사화(1721-1722년)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한 경종의 ‘진땀흘리기’는 ‘진땀 나게’하는 권력의 속성을 풍자하고 있다.

 

 

 

 

이강백은 지적인 우화(寓話)의 세계를 통해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이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인물보다는 상황과 메시지가 부각된다. 이번 작품 역시 조선조 20대 왕 경종과 그의 통치시대를 오늘의 정치현실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14살 때 어머니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는 현장을 목격한 후허한증에 시달리던 경종을 더 진땀 흘리게 했던 당시의 정치상황이 오늘의 정치상황과 흡사하다는 것.
경종은 겨우 4년간 임금 자리에 있었지만 이 짧은 기간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정쟁으로 수많은 대신들이 죽는 '신임당화'가 일어난다. 진땀을 흘리는 경종의 증세가 악화되자 노론과 소론은 궁중 어의를 파면하고 각자 어의를 천거해 약을 짓게 한다. 그런데 이들이 만든 약은 각각 상극인 '우황'(牛黃)과 '용골'(龍骨)을 주성분으로 한 것. 따로 먹으면 괜찮지만 둘을 함께 먹으면 죽는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는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세태에 대한 일갈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극의 상황 때문에 극의 성격을 '희극적 비극, 비극적 희극'이라고 붙였다.

 

 

 

 

 

14세 어린 나이에 어머니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는 장면을 목격한 뒤 허한증에 시달리던 경종은 즉위 후 죽고 죽이는 정쟁을 벌이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강요하는 신하들에 시달린다. 이러한 자신의 괴로움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그에게 세자를 낳으려는 왕비의 유혹은 더욱 그를 괴롭힌다. 그런 왕에게 노론과 소론은 옳고 그름을 묻는 것이 신하가 할일이라면,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왕의 할 일 이라며 경종에게 판단하기를 강요한다. 경종은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부탁하고, 신하들은 연잉군의 세자 책봉문제로 어의를 파직한다. 새로 천거된 어의들은 각기 우황과 용골로 만든 약을 지어 바치며 당쟁을 벌인다. 우황과 용골은 함께 먹으면 독약이 되는 상극. 경종은, 옳고 그름의 다툼이 멈추면, 판단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며 판단을 미루는데.....

 

 


작가와의 대담

- <진땀흘리기>를 최초 구상하게 된 이유는.

"내가 재직했던 연극원이 석관동에 있는데 석관동 교사가 의릉, 그러니까 경종의 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일상적으로 그 능에 산책 갔다. 그 능 앞에 써있는 설명문에 장희빈의 아들이라는 것도 있고 숙종의 아들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경종실록을 도서관에서 대출 받아서 읽어보았다. 그냥 처음엔 이것을 가지고 작품 쓰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경종실록에는 경종이 대단히 무기력하고 결단력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작가인 내 눈에는 재해석이 되더라.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라는 당쟁이 격화되던 시기에 임금이 결정을 안 내리려고 했던 적극적인 태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은 경종에 대한 해석은 지금 이 시대에 관한 해석과 연결되면서 마치 지금 모든 개개인이 경종이 된 것은 아닐까. 마치 흑백논리처럼 어떤 양분된 것에 어느 것이 옳으냐를 강요받는. 꼭 그 신념을 표현하는 방법이 사생결단식인 선명한 태도도 있지만 정말 회피하고 우유부단하고 침묵 속에서도 그 신념을 나타낸 것은 아닌지.
어떻게 보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을 존중해야하는 그런 속에서는 행동만이 미덕은 아니다. 그리고 신념이란 특히 어떤 명분이란 그것이 선명할수록 멋있게 보이는 대신 그만큼 비타협적인 것이기도 하다. 결국 경종은 그 문제를 가지고 고심했던 사람이다.
결국은 양쪽을 아우르다 목숨을 잃는 그런 인물로 보였다. 물론 그러한 해석은 역사학자들이 경종과 경종의 시대를 해석하는 것과는 다르다. 극작가의 상상력이니까. 결국은 역사라는 기록을 지금의 컨텍스트에 어떻게 견주어서 이 시대를 해석하는 그리고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는 것이 이 희곡을 쓰게된 근본 동기이자 목표이다."

 

 

 

 - 이 작품을 사극으로 재연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반사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사실 '반사극'이란 말은 채윤일 선생이 붙힌 말이다. 나도 이거 그럴 수도 있겠다. 아주 재미있는 채윤일 선생의 기지 있는 명칭이다.
나 자신도 이것이 역사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역사에서 등장인물을 가지고 왔어도 역사학자들이 봤을 때는 경종을 그렇게 해석하는데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꼭 이것을 역사극이라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을 역사라고 오해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역사극이 아니다 알려줄 필요가 있다.
사실<용의눈물>이 텔레비전에 방영됐을 때 역사학자들은 그게 상당히 왜곡됐다고 하면서 틀린 점을 하나씩 하나씩 지적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쓴 역사극들도 가만히 보면 역사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심지어 역사가들도 사실이란 것은 무엇일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역사가들도 어떤 하나의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역사가적 관점으로 봐 달라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음으로서 쓸데없는 논쟁을 잠재운다. 극작가로서 미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

 

 - 이 작품을 채윤일 선생에게 연출을 맡긴 이유는.

"채윤일 선생과는<불지른 남자>에서부터 해서 지금까지 네 번째다. 굉장히 코드가 맞는다. 채윤일 선생은 일단 텍스트를 존중하는 연출의 전통적인 라인에 서있다. 이해랑 선생이나 이진순 선생 때 연출을 배웠던 분들은 될 수 있는 한 텍스트를 깊이 파서 그 안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채윤일 세대 다음 세대 연출가들은 그것을 해체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70년대 데뷔한 내 세대 극작가하고는 채윤일 선생과 코드가 잘 맞는다."
- 이 작품의 성과를 꼽는다면
"일단 지난해 공연했을 때 좋은 연극 베스트7에 뽑혔다. 그것이 가시적 성과라고 한다면 관객들 가슴속에 이 작품이 남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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