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은 시사성이 가장 강한 공연예술이다 그 때문에 연극문화가 가장 앞섰다고 하는 영국에서조차 196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검열제도가 폐기되는 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도처에서 가장 최근까지 검열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검열논리를 뒤집어 연극이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사회상을 이해하는 한 흥미로운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는 여러 기관에서 희곡상을 제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1817년부터 시행되어온 퓰리처상은 인간의 보편적, 근원적 문제보다는 “미국작가의 작품으로서 소재가 독창적이며 미국생활을 다루고 있는” 즉 당대의 미국사회와 미국인을 그린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중심으로 수여되어 왔다. 물론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퓰리처상 심사위원회가 그 동안 미국을 너무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편애했다하여 그 객관성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이 상이 일반 독자들이나 연극관객들한테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감안해 볼 때, 그 수상작들이 최소한 미국인과 미국사회의 진실한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미루어 판단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퓰리처상 희곡부문 수상작들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미국적 성공윤리에 의한 인간상실이다 1949년도 수상작인 〈세일즈맨 의 죽음〉에서 아서 밀러(Arthur Miller)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후, 1973년도 수상작인 제이슨 밀러 (Jason Miller)의<그 챔피언십 시즌(That Championship Season)〉과 1984년도 수상작인 데이빗 마멧(David Mamet)의 〈글렌개리 글렌 로스(Glengarry Glen Ross)>에서 다시 중심주제로 반복 되고 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같은 주제의 처리가 변화되는 양상이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해주어 대단히 흥미롭다.

1972년 5월 조셉 팹(Joseph Papp)의 뉴먼 퍼블릭시어터(Newman Public Theatre)에서 초연된 '그해 챔피언십'은 같은 해 9월 브로드웨이로 옮긴 후 뉴욕 연극평론가협회상, 토니상, 퓰리처상 등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희곡상들을 휩쓰는 높은 평가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작가 제이슨 밀러는 배우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강력한 성격창조와 치밀한 극적 행동의 구축을 통해서 오늘날 미국적 성공윤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타락했는가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닉슨 대통령을 선호하던 70년대 초반의 미국인들에게 이 작품은 쉽게 그들 자신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그러나 또한 사실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워터게이트의 서문이었다.”
제이슨 밀러는 코치라는 등장인물을 미국적 성공윤리의 화신으로 삼는다. 아서 밀러가<세일즈맨>에서 주인공 월리의 성을 로먼 (Loman)이라 하여 그의 'everymanness'를 강조했듯이, 제이슨 밀러가 코치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까닭은, 표현주의 연극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 없음이 흔히 시사하는 바와 같이, 코치가 한 개인이기보다는 유형, 즉 한 대표적인 사회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러야 한다는 그의 승리 제일주의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제이슨 밀러의 미국적 성공윤리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는 첩경이 된다.
우선 코치의 승리 제일주의의 배후에는 지독한 물질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코치는 그에게 펜실베이니아 주 고등학교 농구대회 우승을 안겨준 제자들을 "좋은 시계...값비싼 고급시계”, 또는 "진짜 트로피” 등의 물질로 여긴다. "네 놈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것이지만 몸뚱이는 내 꺼야' 라는 그의 말에서 물질주의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코치의 거실 한 복판에 괴물처럼 우뚝 놓여 있는 거대한 은빛 우승배가 물질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상징한다. 작가는 당시 가드였던 조지로 하여금 그 속에 토하게 함으로써 물질주의의 추악상을 요약한다.
코치의 승리 제일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그는 팀 내의 “긍지”와 “충성"과 “팀웍"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사랑의 전력이 오로지 대내용일 뿐 상대편에게는 이와 상치되는 전력이 적용되는 점에서 코치의 승리철학은 부도덕해진다 둘째, 그는 고통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고통은 서구문학의 전통에서처럼 한 인간을 내면적으로 완성시키는 자신과 우주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고통이 아니다. 코치가 의미하는 고통은 외형적 승리를 위해 진실과 양심을 희생시키는 것이므로 인간을 오히려 내면적으로 파괴시키는 성격을 띤다. 코치의 철학은 상대편에 대해서는 더욱 파괴적이다. "인간의 약점을 철저히 공략하는 것, 그것이 게임의 요체다”라는 그의 전략은 상대방의 약점 을 정당하게 찾기보다는 부정하게 창조하여 정당화시키자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파괴를 도모한다. 마지막으로 코치는 증오를 역설한다. “승리하려면 증오해야 한다. 승리엔 증오가 필요해." 이 파괴적인 증오야말로 코치의 성공윤리의 핵이다.
코치는 남의 약점을 철저히 공략하기 때문에 그는 결코 질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정의와 도덕성을 묻지 않고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에게 승리를 위협하는 타인한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미국적 성공의 꿈을 추구하면서 '증오'로 대치된 것이며 이는 바로 미국인들의 의식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적 성공윤리에 대한 개념설정을 마친 작가 제이슨 밀러는 이 병든 윤리를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주요사건에 연계시킨다. 즉 20년 전의 고등학교 농구선수권대회 (과거), 코치와 챔피언들의 스무 번째 연례 모임(현재), 그리고 조지의 시장 재선운동(미래) 등이다. 20년 전에 펜실베이니아 주의 스크랜튼이라는 한 작은 시의 필모어 고둥학교는 조지, 톰, 제임스, 필, 마틴 등의 전설적인 선수들로 주 농구선수권을 따냈다 "탁월”과 “우월”에 대한 코치의 헌신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그러나 술이 돌고 밤이 깊어감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들은 전반전을 정정당당하게 싸웠으나 무참히 깨지고 있었다. 마침내 3쿼터에서 코치는 승리 제일주의의 증오전략을 적용시켜 기적을 만든다. 그는 상대 팀의 약점 대신 강점을 발견한다. 그들의 강점은 “8척 장신의 깜둥이 센터”였다. 코치는 마틴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렸고 마틴은 순순히 복종하여 흑인 센터의 갈비뼈를 부러뜨린다. 그들은 이렇게 날조해낸 상대방의 약점을 철저히 공략하여 끝내는 마틴의 역전 골로 승리한다. 그들은 우승을 도둑질했고 이 사기극은 악의에 찬 승리 제일주의의 미국적 성공윤리가 조종한 것이었다. 이 옛 챔피언들이 싸울 또 하나의 결승전이 있으니, 곧 조지의 시장 재선 운동이다. 농구선수권대회와 이 시장 선거에는 두 가지의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첫째, 조지의 재선가능성은 농구팀의 우승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하다. 조지는 경쟁후보인 샤만에게 도덕적으로나 정치적 능력으로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미국적 성공윤리를 적용하지 않고는 그의 재선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 공통점은 상대방의 강점이 소수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상 대농구팀의 센터가 흑인이었던 것처럼 시장선거에서 조지와 싸울 샤만은 유태인이다. 이 사실은 챔피언들로 하여금 미국적 성공윤리가 기초하고 있는 증오전략을 보다 쉽게 적용할 근거를 마련해준다. 샤만의 약점을 찾던 중 코치는 그의 사촌이 50년대에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따라서 그들은 이 보잘 것 없는 약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조지를 재선시킬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코치가 필요에 따라서는 자기 팀의 챔피언들에게까지도 같은 윤리를 적용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날 저녁이 옛 농구선수들의 단결과 화목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들은 조지의 재선가능성 여부를 놓고 분열한다. 노천광사업을 하고 있는 필은 조지의 정적인 샤만에게 선거자금을 돌릴 생각을 한다. 선거운동본부장인 중학교 교장선생 제임스마저 조지를 밀어내고 스스로 시장후보로 나설 뜻을 비친다. 이들의 분열은 제임스가 필과 조지의 처 마리온 사이의 간통을 폭로하면서 극에 달한다. 코치는 조지의 재선이라는 또 하나의 빅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팀 내의 불화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놀랍게도 코치가 이 불화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전략은 대내용인 '사랑'이 아니라 대외용인 '증오'였다. 필의 외형주의는 금전만능주의로 집약된다. 그는 모든 걸 돈으로 해석한다. 우정은 돈으로 맺어지는 것이고 정치도 한낱 돈 버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 가책도 없이 조지를 배반할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난 인간성 상실이다.

외형주의의 신봉자답게 이 챔피언들은 '필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물질주의적인 그들이 물질주의적 가치에 예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필요'란 단어가 쓰이는 빈도에 한 번 놀라고 그것이 쓰이는 상황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필과 마리온의 간통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제임스는 필에게 그 불륜의 관계를 청산하고 조지를 지원할 것을 요청한다. 이 때 그가 호소하는 것은 필의 도덕성이 아니라 그의 사업을 보호할 필요이다. "걔가 널 필요로 하는 만큼 너한테도 걔가 필요해." 그러나 필은 듣지 않는다. 조지로서는 그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임스 역시 교육감이 되려면 조지의 추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를 돕는다. 조지는 선거자금이 필요해서 필의 사업을 보호한다. 필요가 모두를 지배한다. 코치도 간통에 대한 그의 수사를 종결지으면서 필요에 의한 화해를 강조한다. “너희 놈들은 서로가 필요하다 이놈들아, 필요해…”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예는 극이 거의 끝날 무렵에 발생한다. 코치는 톰에게 20년 전에 그들이 따낸 선수권의 합법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톰을 추방해 버린다. 남은 챔피언들은 그들의 우승을 정당화하기위해 부재중인 마틴을 격하하기 시작한다. “코트의 마술사, “고등학교 최고의 선수”,"압박의 명수" “완벽한 선수” 등의 수식을 통해서 마틴을 칭송하던 그들이 이제는 "까놓고 말해서 마틴은 진짜 개고기였어.”, "머리가 모자란 새끼였지" 라고 하면서 그를 매도한다. 마침내 코치는 두 반항아들을 그의 우승 전설에서 추방한다. "우리한텐 제 놈들이 필요 없다. ...우리의 우승은 하나의 역사야. 책에 기록돼 있어.” 선수권을 보호할 필요가 코치로 하여금 두 반항적인 챔피언들에게 심리적 살인을 저지르게 한 것이다.
미국적 성공윤리는 챔피언들을 외형주의에 예속시켰고 외형주의는 그들의 내면적 정신생활을 파괴시켰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결과가 나타난다. 첫째는 도덕적 파산이다. 아내와 간통한 친구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아들이는 조지, 야심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친구의 배반도 서슴지 않을 제임스, 성(性)의 해방을 현대인의 조건으로 삼는 필, 삶 자체의 의욕을 상실한 톰. 이들의 도덕적 기아와 내면적 붕괴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미완성의 문장에서도 엿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는 코치가 그의 성공철학을 설명할 때 찾아진다. “고통. 대가는 고통이다. 이기려면 아픔을 참아야 해. 삶의 법칙. 다른 방법은 없어. 전혀. 내 뱃속의 통증.” 존 사이먼의 관찰이 매우 예리하다. “이들의 통사론적 미완성은 그들의 삶의 원시성과 단정치 못함에 대한 객관적인 상관어구들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물질주의에 기초한 미국적 성공윤리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더 비인간적이 되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 추종자들의 인간성이 더욱 참혹하게 파괴되는 모습들을 살펴봤는데,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그 실상을 분명하게 요약해준다.
코치는 극의 말미에서 챔피언들을 설득하여, 20년 전에 부정한 방법으로 갈취한 농구대회의 패권을 역사적 사실로 영구화하면서 당시의 우승컵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러니까 코치의 성공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에 바탕을 둔 부정직한 승리이며 '증오'의 전략을 구사해서 횡령한 패배적 승리인 것이다.

'세일즈맨', '글렌게리', '챔피언' 세 작품 모두 도둑질을 극적 행동의 주요 요소로 삼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함축적인 의미를 띤다. 〈세일즈맨〉에서 비프는 도벽 때문에 여러 차례 사회적응에 실패하고 있는데, 비프에게 그러한 도벽이 고질화된 것은 아버지 월리의 책임이 크다. 고등학교 시절에 비프가 학교에서 시합용 미식축구공을 훔쳐왔을 때 윌리는 그것이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비프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나무라는 대신 오히려 방조 했고 급기야는 아들의 담력을 키운다고 아파트 공사장에서 모래를 훔쳐오도록 시키기까지 한다. 훗날 비프가 주소도 없이 연락을 3개월 씩 끊었던 것도 사실은 그가 캔자스시티에서 옷을 훔치다가 들켜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고질병이 올리버를 만나러 갔을 때 재발하여 그의 만년필을 훔쳐 달아난다... 이런 의미에서 비프의 도벽은 그 상당부분이 월리의 책임이기 때문에 월리의 도덕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시실은 비프의 도벽에는 어떤 악의도 없다는 점이다.
〈챔피언〉에서는 도둑질의 의미가 훨씬 확대된다. 챔피언들이 중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자기네 인생 최대의 성취라고 자부해왔던 20년 전의 우승이 결국은 톰의 고백에서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훔친 것임이 밝혀진다. 언뜻 그들 사이에 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자는 양심회복 기운이 일지만 그것은 잠깐에 그치고 곧 코치의 조종에 의해서 그들은 다시 거짓된 '신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간다. 그 도둑질한 환상이 없이는 자신들의 삶이 일시에 무너지고 말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에게는 도둑질이라는 단어에 저항을 느낄 만큼의 수치심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글렌개리>에 이르면 도둑질의 부도덕성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동산 중개인들은 순진한 고객들을 속여 쓸모없는 땅을 사기 쳐 팔 때나, 회사의 최고 자산인 유망고객 명단을 훔칠 때나, 잡혀 가는 동료의 커미션을 가로챌 때나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사기와 도둑질은 이 중개인들의 유일한 생존방식이 된 것이다.
결국 도둑질은 이 세 작품에서 미국적 성공윤리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부도덕성과 정신적 황폐화를 반영하기 위한 연극적 고안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 가까워 올수록 도둑질의 고의성 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적 성공윤리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물질주의에 의한 미국인의 정신적, 인간적 파탄의 정도를 연대기적으로 반영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이런 동창들' 이란 제목으로 공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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