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대부분의 몰리에르 연구가들은 그의 첫 작품으로 1655년 공연 된 『덤벙이』를 꼽는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라 그랑쥬(La Grange)와 라 토릴리에르(La Thorilliere)의 기록에 따르면 몰리에르 극단이 파리에 정착하기 전 지방 순회공연을 다니던 무렵엔 코메디아 델 아르테와 프랑스 소극 전통에서 내용을 빌려와 새롭게 구성한 소극 작품들이 그들의 주요 레퍼토리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r날아다니는 의사』는 『바르부이에의 질투』와 함께 몰리에르 극단의 초기 레퍼토리를 구성한 단막 소극의 대표작으로 정해진 극본이 없이 부분적으로는 즉흥극 형태를 띠며, 공연할 때의 상황이나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형태의 극이었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 그 엉성한 구성이나 저속하고 상스러운 문체, 독창성의 부족 등의 이유로 몰리에르 작품에서 제외시키려는 경향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나, 그보다는 오히려 이 작품들 속에서 훗날 몰리에르의 덩작들에서 꽃피우게 될 여러 주제들의 씨앗을 보는 것이 오늘날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작품은 독창성이 전혀 없는 단순한 표절작품이 아니라 후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몰리에르의 희극성이 아직은 가능태로 존재하는 습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딸을 늙은 영감에게 시집보내려는 늙은 아버지에 맞서 젊은 연인들이 스가나렐이라는 하인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속이고 마침내는 사랑을 쟁취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날아다니는 의사』는 등장인물들의 유형성이나 속임수를 통해 방해물을 제거하는 줄거리 구성 또한 의사로 변장한 스가나렐의 신출귀몰한 동작 등 전형적인 소극의 요소를 두루 갖춘 짧은 단막극이다. 하지만 이처럼 유형적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의사에 대한 불신이라든가 젊은이의 자유연애 옹호 등 훗날 몰리에르의 작품들에서 나타나게 될 주요 테마가 거칠게나마 드러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이 작품이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몰리에르의 『날아다니는 의사』는 속임수가 근간을 이룬 작품이다. 발레르와 사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사빈의 아버지 고르지뷔스는 딸을 돈 많은 늙은 영감 빌 브르캥에게 시집을 보내려 한다. 이에 둘은 서로 짜고 발레의 하인 스가나렐을 의사로 변장시켜 고르지뷔스 집으로 보낸다. 고르지뷔스는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를 입에 담으며 그럴싸하게 의사행세를 하는 스가나렐을 철썩 같이 의사로 믿고 그의 충고에 따라 딸을 정원 끝에 딸린 사랑채로 보내고 젊은 연인들은 그곳에서 밀회를 나눈다. 그러나 극중에서 스가나렐이 펼치는 사기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가나렐은 거짓말이 들통 나서 위험에 처함 때마다 스스로를 '사기꾼 중의 왕'이라 자칭하며 끝까지 사기를 치고 나간다. 그리하여 때론 쌍둥이 형이었다가 때론 쌍둥이 동생인 것처럼 1인 2역을 하며 고르지뷔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극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묘미는 단연코 고르지뷔스를 상대로 스가나렐이 아슬아슬하게 벌여가는 사기극이다.
‘날아다니는 의사’는 이 작품은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작품을 모티브로 쓰였다.
이탈리아 극단들은 동명 제목의 공연을 지주 올렸는데, 1618년 프란체스코 레오니 (Francesco Leoni)의 <속임수에 능한 날아다니는 의사>나 1647년 스카라무슈가 연기한 <날아다니는 의사> 등을 예로 살펴볼 수 있다. 아마 몰리에르도 이 작품들을 관람했거나, 아니면 작품 줄거리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제목이나 주제에서 나타나는 직접적인 연관성 외에도, 이 작품곳곳에서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정확한 집필 연도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1640년대 중후반으로 추측된다. 파리에서의 공식적인 첫 공연은 1659년 4월 18일 루브르궁에서 <대학생, 그로 르네> 와 함께 루이 14세를 위해 올려졌다. 이후 1664년까지 총 16차례 공연되는데, 다른 극단의 레퍼토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특히 몰리에르와 경쟁관계에 있던 부르소(Boursault)가 1661년 11월 부르고뉴 극장에서 단막의 운문극으로, 아를르캥 비안콜렐리(Biancolelli)가 그 이후에 각각 동명 제목의 작품으로 올렸다. 고전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사회적 부를 쌓기 위해 정략결혼도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인물인 고르지뷔스가 등장해 극적 재미를 더해 준다.
어리석은 수전노 고르지뷔스가 딸 뤼실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늙은이에게 그녀를 시집보내려 하자, 뤼실은 꾀병을 부려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이에 꾀 많은 발레르의 하인 스가나렐이 의사로 변장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외우거나 즉흥적인 라틴어 표현을 인용하는 등으로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고르지뷔스를 조롱한다. 당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정략결혼을 폭로하고 구두쇠 소시민의 허영심이나 돌팔이 의사의 거짓 행세를 비꼬는 것이다. 이야기는 뤼실과 발레르가 맺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런 줄거리는 <억지 의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가장 낮은 계층인 하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사회의 모순이나 상류층의 위선을 폭로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의사는 소극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작품 제목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스가나렐이 사건 해결을 위해 의사로 변장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두 역할을 해내는 것이 주를 이룬다. 몰리에르 작품에서도 의사는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데, 더 발전된 형태로 그들의 가식이나 무지를 희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인물이지만 재치 있는 대사와 잔꾀를 발휘하는 연기로, 무대 및 극 전개에서 역동성을 구현해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몰리에르 작품에는 수많은 스가나렐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꾀 많은 하인이 발전된 형태로 다양한 인물들을 그려 내고 있다. 먼저 음성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 두 음절은 스카팽이나 스카라무슈를 떠오르게 하고, 뒤 음절은 브리겔이나 포리시넬을 연상시킨다. 이 인물은 이탈리아고전극의 여러 인물들이 프랑스 화(化)된 것으로 직간접적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코믹한 광대는 <날아다니는 의사>, <동 쥐앙> 에서는 하인으로 등장하고, <스가나렐>, <남편들의 학교>,<강제 결혼>,<억지 의사>에서는
우스꽝스런 노인으로 변신한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을 살펴보면, 몰리에르는 이 작품을 포함한 모든 스가나렐 역을 직접 연기했다. 몰리에르 스스로가 뛰어난 배우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무대에서 직접 표현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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