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조르주 페도 '마님의 모친상'

clint 2015. 11. 14. 07:16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대는 아내 이본의 침실.

새벽 4시에 루이 14세 차림으로 카트자르 무도회에 갔던 남편 루시엥이 돌아온다.

남편의 늦은 귀가로 갑작스레 선잠을 깬 아내가 신경질을 내면서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한참 후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문밖에는 마님 어머니의 부음을 알리러 온 하인 조셉이 서있다.

이본은 기절하고 한바탕 소동이 있은 후 부부는 초상집에 갈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막 집을 나서려 는 찰나 조셉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는

그가 실수로 집을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간밤에 돌아가신 분은 이웃집 부인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조셉은 그 길로 쫓겨나고 이본은 안도를 하지만 그 사이 뤼시엥이 벌써

장의사에게 연락을 했을 뿐 아니라, 장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것을 예상하고

빚쟁이에게 편지까지 쓴 사실이 드러나자

부부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1908년 발표된 『마님의 모친상』은 이전까지 페도의 대표작들과는 달리 3막 보드빌 형식이 아닌 소극적 요소가 곳곳에 배어있는 단막 희극으로, 뒤이어 나올 이 계열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부부시미의 갈등과 불화를 소재로 하여 인정사정없이 가혹한 부부싸움을 터무니없는 상황 에 익살스러운 해학을 담아 표현해낸 수작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집필 할 당시 페도는 아내와의 잦은 마찰로 심한 불화를 겪으면서 별거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이런 개인적 경험이 작품의 형성에 영향을 미 쳤으리라 추측된다.

 

극단 꼭두 공연 사진

 

 

국내 초연은 <상 당한 가족>이란 제목으로 극단 꼭두에서 공연했다. 
(2006년 3월, 김진만 연출)
웃는 연극 <상당한 가족>은 배우 전무송과 가족이 모두 출연하는 첫 번째 작품으로 
프랑스 소극이 갖는 시트콤적 성향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한 밤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한정적 상황 설정에서 출연 배우의 각 캐릭터를 극대화하는 이 작품은 쉴새 없이 몰아치는 
대사의 연결, 그리고 돌발적이고 과장된 액션이 가미된다. 현 시대의 물질만능, 노인홀대, 
이기주의를 코미디로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죠르주 페도 (Georges Feydeau, Paris 1862~1921)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프랑스의 대표적 희극 작가였던 죠르주 페도는 제2 공화정 때 유명한 작가였던 에른스트 페도 (Ernest Feydeau)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었던 폴란드 여인 레오카디아 젤레프스카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의 소명에 눈을 뜬 그는 바칼로레아도 치르지 않은 채 학업을 포기하고 연극계에 뛰어든다. 열네 살에 고등학교 친구인 아돌프 루보와 함께 연극과 콘서트를 무대에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캐스터네츠 클럽(cercle des Castagnettes)'을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단막극 흑은 1인극을 시험 삼아 집필하는 동시에 스스로 연기를 하기도 하면서 당대 활동하던 배우들이나 배우 지망생들과 자주 만나는 한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와 같은 문인들과의 교류 또한 넓혀 간다.
1882년 열아홉 살 때 처녀작 "창문으로"를 발표하여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그는 1886년 "부인들을 위한 재단사"로 얼마동안 성공을 거두지만 곧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다행히도 같은 해 당대 유명했던 화가의 딸이었던 마리안 카롤뤼스 뒤랑과 연애결혼하면서 아내의 지참금 덕에 보다 안정적으로 극 삭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그는 1892년 3막 보드빌 형식의 세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 같은 형식으로 『발목 잡힌 바람둥이』(1894), 『자유교환 호텔』(1894), 『머저리 사내』(1896), 『막심 가의 여인』(1899),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1907), 『아멜리를 부탁해』(1908)와 같은 대표작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까지 대성공을 거두며 보드빌의 대가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는 1908년 『아멜리를 부탁해』를 끝으로 자신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3막 보드빌 형식 대신에 부부싸움을 주된 주제로 하여 소극적요소가 가득 찬 단막희극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변신을 꾀하며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r마님의모친상』(1908), 아기에게 설사약을 먹이 다 (1910), 제발 발가벗고 돌아다니지 말아요. (1911) 등이 있다.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의 관찰자이자, 중인이요 공모자이기도 했던 그는 소극과 희극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예기치 않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상천외한 상황들과 소란스러우면서도 부조리한 사건들 사이에서, 오해와 차질로 우왕좌왕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외젠 라비슈에 의해 발전된 보드빌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극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인간 페도의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파리의 레스토랑들-그가 자주 찾던 레스토랑은 Maxime's와 Prunier였다-을 전전하고 도박에 탐닉하기도 했던 그의 생활방식은 곧 아내와의 마찰로 이어져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잦은 부부싸움 끝에 파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1904년 아내 쪽에서 법적 별거를 신청하게 되고, 1909년 집을 나와 호텔에 정착하게 된 그에게 마침내 1916년 이혼과 함께 아내에 대한 부양 수당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그 후 매독에 감염되고 정신 착란 중세까지 보이기 시작한 그는 파리 근교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1921년 6월 5일 58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