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 독일의 경계 지역에 있는 그러나 독일 어느 곳에도 해당될 수 있는 -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독일 내에 깊게 뿌리박힌 파시즘적 심성을 고발하고 있다. 통일 후 국수주의가 팽배해 있는 90년대 초의 상황에서 나치즘이 모두에게 잠재해 있다고 비판하는 포올은 독일의 국민적 정서에 저항 하면서 독일의 콤플렉스를 해부한다.
이 작품은 전 5막중 4막을 제외하고는 베브라의 한 호텔을 떠나지 않고 진행된다. 눈보라 때문에 고속특급 열차가 멈추어버린 동서독 국경 시골 도시 베브라의 겨울, 한 아름다운 미국 여자가 하룻밤 묵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그녀를 동반해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준 폴란드인은 주차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베브라 주민들에게 구타당해 결국 죽임을 당하고 그녀는 맹견을 키우는 네오 나치주의자 루터에게 강간을 당한다. 폴란드인 살해에 동참한 마을사람들, 마울 형제와 그들의 고용인 루터, 호텔 주인 여자 밀케는 위증과 공문서 위조를 불사하며 사고사로 폴란드인의 살해 사실을 은폐하고 이를 고발하려는 낯선 여인은 창녀로 몰리게 되며 그로 인해 중언의 신빙성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는 소위 법의 대변인이라 하는 변호사도 관계되어 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찾을 수 없는 낯선 여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복수를 통해 정의를 찾으려한다. 이 작품에서는 독일인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일종의 공포물이 된다. 네오나치즘,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 파시즘 등 독일인에 대한 번신이 여과 없이 인물들에 투영되며 독일 시골 지방의 남성 우월주의와 섹시즘, 섹스와 포르노, 야비한 잔인성, 그리고 무대에 흐르는 피는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이 작품은 루어 지방 축제의 일환으로 위탁 받고 완성된 작품으로 처음 레클링하우젠에서 있었던 초연은 논쟁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되는 취리히, 뮌헨, 뒤셀도르프 등 주요 대형 무대의 공연은 이 작품을 독일의 중요 문제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포올은 1993년 함부르크의 공연을 위해 개작을 시도하고 1998년에는 뉴욕공연 (Theatre abroad)을 위해 다시 한 번 개작한다. 큰 줄거리에는 거의 변함이 없지만 극중 장소, 대사, 세부적인 사건 등에 수정이 가해지며 1998년 수정판에는 배경이 서독이 아닌 동독의 바이마르로 설정되고 주인공들의 출신과 이름도 변경된다. 1993년 버전에서 포르노적인 요소가 강조되었던 반면 1998년 버전에서는 그 외에도 통독 후 동독지역의 사회문제들이 부각된다. 자칭 "악의 해방자,”라고 하는 (1993년 버전) 네오나치의 청년 루터는 통일 후 구조조정과 더불어 실직한 젊은이 (1998년 버전)로, 낯선 여인이 동독 지역의 과거 재산을 찾기 위해 바이마르로 돌아온 것으로 오해하며 낯선 여인을 강간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마울 형제는 1993년 버전에서는 베브라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자영업자였던 반면 1998년 버전에서는 과거 동독을 탈출하여 서독에서 자리 잡은 기업인들로 다시 고향 땅에서 장사하기 위해 통일이 되자마자 동독을 찾은 비즈니스맨들이며 그들의 괴물 같은 모습은 1993년 버전에서나 별 다름이 없다.
두 버전의 차이점은 1998년 버전이 통일 후의 사회적 문제를 좀 더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고 1993년 버전에서 서독의 문제가 다루어졌다면 1998년 버전의 경우는 동서독의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독일인에 대한 견해가 1993년 버전보다는 새로운 각도에서 차별화되고 상대화된다. 집단 수용소 안에도 포로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친위대원이 있고 특히 낯선 여인의 약혼자를 독일인으로 선정함으로써 낯선 여인과 약혼자 간의 문화적 갈등이 역사적 인식의 시각에서 서술되며 독일 지성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콤플렉스를 구체화시킨다.
마울 형제, 루터, 밀케 부인 등 베브라 사람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불만은 여러 측면에서 유래한다.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 오는 불만이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연관되어 네오나치즘의 기반을 확고히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주의 환경주의자들을 비방한다. 과거에는 동독지역 발전을 위해서 보조금을 내었는데 이제 통일 후에는 과거 동독의 사회기반시설 개선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불만이고 자신들이 낸 세금이 저소득층, 외국인, 과거 동독지역에 사용되는 것이 불만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러한 정책을 수행하는 사민당/ 녹색당의 연정에 불만이고 이들의 정책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외국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외국인들이 공격 대상이 된다. 과거 히틀러 시대에는 공격 대상이 유태인이었지만 현재는 베트남인, 중국인, 터키인 또는 통일 후 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동 유럽인들이다. 베브라 사람들은 사회주의 자유주의 정치체제가 외국인 망명자를 받아들이고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기 때문에 선량한 독일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독일을 빼앗으려 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독일 민족주의, 독일 우월주의 세뇌를 받은 네오나치주의자 젊은이 루터는 특히 유태인에 대한 악감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그의 주공격 대상은 유태인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에 반비례하는 것은 독일적인 것, 독일 신화에 대한 동경이다. 그는 거의 병적으로 니벨룽겐 신화에 심취하여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화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착각한다. 현실 적응이 어려운 사회 저변층 소외된 계층의 루터는 광적으로 나치즘에 빠져 독일 우월주의를 신봉하고 마울 형제는 그를 자신들의 불만 해소의 도구로 이용한다. 폴란드 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과정에 있어서 마울 형제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루터는 마울 형제들의 공격성의 도구가 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그들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베보라 사람들의 불만은 폴란드 인에 대한 살인이라는 형태로 분출된다. 그러나 살인 사건은 조직적으로 은폐되며 사고로 조작된다. 마을 구성원들은 허위로 진술하고 허위 진단서를 조작하는 데 집단적으로 동참해 있다. 푸터크네히트는 지성을 대표하는 변호사로서 마울 형제들과 거리를 갖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 베브라 편에 서 있다. 폭력치사사건의 해결에 있어서 허위 중언인 것을 감지하면서도 낯선 여인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며 사 건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이 작품에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은 시골 지방에 만연해 있는 섹시즘과 섹스 본능이다. 베브라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여성을 경시한다. 마울 형제에게 있어서 아내를 얻는 것은 세금을 줄이는 방편 이상은 아니다. 남편은 아내를 욕지거리로 대하며 갈비뼈를 차고 밀어 넘어뜨리고 울리히 마울은 형수의 머리를 후벼 파듯 내리 누른다. 크리스티안 마울이 자기 부인을 대하는 태도는 개를 대하는 태도에 다름없고 실제로 그녀에게 하는 명령어들은 개조련 때 사용하는 언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이미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묵묵부답으로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행동한다. 마울 형제는 성적인 불만을 언어폭력, 성희롱, 성추행으로 해소한다. 자기 부인에게서 얻을 수 없는 홍분을 낯선 여인에게 느끼며 자기 부인이 있는 자리에서도 노골적인 욕구를 표시한다. 동생인 울리히는 특히 창녀에게서 성적 흥분을 느끼며 “가죽, 거들, 속옷” 등으로 대변되는 사창가의 섹스 광고들이 그를 자극한다.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성적인 욕심, 더구나 이런 여성이 힘이 약한 외국 여성이라고 생각 될 때의 우월감과 방자함 - 게다가 상당량의 알코올은 섭취한 상태에서 그들은 낯선 여인이 창녀라는 확신이 없는 가운데 여럿이서 창녀라고 인정하고 창녀로 몰아가며 자신의 소망 사항을 현실로 믿으려 한다.
포르노그래피와 관련하여 상품화된 성에 대한 편견이 지배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 여자들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다. 눈이 와서 기차가 눈 속에 파묻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것은 마울 형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낯선 여인의 여행 목적을 의심하며 광고 전단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렇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혼자 호텔에 나타난 낯선 외국 여자에 대한 편견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경우는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젊은이로 폭력을 통해 여지"를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 폭력의 근원이 되는 것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맹견이다. 개가 없으면 그는 자신이 없고 그의 힘도 작용을 못한다. 개는 그의 아이덴티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여인의 복수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 개의 제거이다.

독일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포올의 독일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그는 독일에 대한 향수, 독일적인 것, 독일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독일이 편견과 네오나치즘,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 둥이 만연한 사회라고 비판하면서 그는 독인적인 것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동경을 작품 밑바닥에 깔고 있다.
독일에 대한 그의 이러한 양면적 태도는 낯선 여인에게서 나타난다. 낯선 여인에게 있어서 독일은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비록 독일에서 박해받고 쫓겨났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 땅에 대한 동경 과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이 동경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낯선 여인은 어머니가 들려주던 독일의 겨울 동화, 눈 덮인 풍경, 숲 등 독일의 정경과 문학, 예술 등 독일인이 성취해놓은 문화유산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직접 그 것을 체하기 위해 독일을 찾는다. 그녀의 약혼자인 레온에 따르면 그녀의 독일에 대한 집착은 설명할 수 없는 병든 사랑이다. 그들의 부모들이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사랑은 그러나 독일, 독일인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독일의 현재와 거리를 갖고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독일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라기보다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는 유리된 독일 땅과 문화유산,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독일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의 독일에 대한 사랑과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들, 사회적 문제, 해결할 길 없어 보이는 문제들 그러나 해결의 시도도 하지 않는 현상들이다. 그 문화유산과 직결되어 있는 것은 집단수용소이고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며 그 배타적인 감정은 언제라도 응집되고 조직화되어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폴란드 인에 대한 베브라 사람들의 폭행을 고발하려던 그녀는 법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경찰은 물론 변호사도 결국 베브라 인의 한 사람으로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조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은폐하는데 동참하며 낯선 여인의 여행 목적을 불순 시 함으로써 그녀의 주장을 신빙성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녀의 신랑이 될 레온조차 그녀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문명국 독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그는 그런 사건 속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낯선 여인은 자기에게 남은 방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녀가 당한 치욕과 부당성에 대해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 후 다시 베브라에 나타난 그녀는 베브라 사람들이 원하는 역할을 하며 역습한다. 사랑의 행위에 대한 대가로 그 녀가 마울 형제에게 요구하는 개의 도살은 루터를 광란케 하며 그로 하여금 마울 형제를 찌르고 결국은 낯선 여인의 목을 조르게 한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건, 독일 사회의 변혁기를 배경으로 그 변혁에 대처하는 독일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의 패망 후 동서독이 분단되어 새로운 공화국이 설립될 시기의 독일, 배경은 서독이지만 동독의 피난민들이 동참해 있다. - 그리고 45년 후 통일이라는 대변혁의 시기, 분단되었던 동독과 서독사회가 통일이라는 변혁에 대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 3 제국의 잔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나 그 시도는 기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치며 결국 유야무야하게 잠재워진다. 구체제 안에서 힘을 가졌던 기회주의자들은 다시 새로운 정권에 편승하여 새로운 지배 계층을 이룬다. 결국 이익 추구에 민첩한 자들은 정권이나 이념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편승하며 사회의 변화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것은 동독이 붕괴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일이 되면서 변화가 가능한 시기에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결국 구체제와 구체제 속의 모순은 통일 후 사회로 이어진다. 모든 시민의 생활 깊숙이까지 파고든,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된 슈타지의 존재, 이를 중심으로 각자의 이익을 찾으며 치부를 숨기는, 범죄와 거짓과 모략이 집단적으로 얽혀 있고 모든 사람이 집단적으로 참여해 있기 때문에 변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분단 시기 동독 사회의 지배 계층으로 이익을 보고 있던 구성원들은 통독 후에도 상황 파악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다시금 지배 계층으로 자리 잡는다. 통일의 변혁 시기, 서독의 경우는 열려진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동독인, 동구인, 외국인에 대한 경계가 극도에 이르게 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통일 이후에 극에 달하게 된다. 통일 이후, 또 코소보 전쟁을 치르며 동독과 동유럽 지역의 독일계 민족이 서독으로 이주 하고 동 유럽인들의 노동력이 유입 되면서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위험 수위까지 이르게 되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상대적 박탈감은 네오나치의 확산을 위한 좋은 토양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낯선 여인'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강력하게 현 사회의 네오나치즘, 폭력성, 포르노그래피 등을 고발하고 있다. 이미 내재되어 있던 이러한 요소는 변혁 시기를 맞으며 변화는커녕 더욱 강력해지고 변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의 수정을 위해 시도되는 합리적인 방법은 좌절되고 결국 폭력적인 방법이 사용되나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통일의 환호성이 사라진 후 동서독 지역 주민 간에는 불만이 쌓이며 양사회간의 갈등이 심화된다. 구동독지역 주민은 자신의 주권을 버리고 흡수 통일이 되었는데도 동독 사회의 구조 조정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이등 국민대우를 받는 데 대해 불만이고 구서독 사회 구성원은 동독인들이 45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아 낙후된 사회 기반시설 설비를 위한 비용을 자신들이 지불해야 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게 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충돌하게 되고 갈등은 심화되며 그 불만은 쉽게 속죄양을 찾는다. 여기서도 통일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갈등은 극에 달하고 새로운 출발은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클라우스 포올의 작품은 전후 독일부터 현재까지의 50여 년간의 독일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특히 통일 전 후에는 동서독의 문제를, 동서독 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가능한 한 현실 묘사 속에서 독일의 현주소가 드러나도록 한다. 포올은 특히 어느 특정한 조류에 속하는 작가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철두철미하게 독일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특이하다. 가끔 과장된 사실주의를 통해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편견도 마다 않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꺼리지 않으며 이질적인 형식을 혼용하기도 하는 그의 시사성이 강한 독일 극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독일이 갖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 불가능성, 의식의 변화 불가능성이다. 동독의 옛 상황, 서독의 구태의연한 보수적, 파시즘적 상황은 통일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도 변화의 징조를 보이지 않으며 클라우스 포올은 독일 사회의 이러한 경직성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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