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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 '선(禪)'

산사에서 구도에 정진하는 스님들의 일상이 다소 낯설고 코믹하게 보여진다. 밤과 낮, 시간이 그들의 행동에 따라 빠르게 지나가고 관객들은 그것을 관조한다. 속세, 혹은 피안(彼岸)에서 분노한 사람이 당도하게 되는데 그는 산사의 구도자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낮에도 촛불을 들고 다니는 스님, 관을 이끌고 배회하는 스님, 대변을 보고 그것을 모아놓고 궁리하는 스님 등등 상식을 초월하는 스님들은 침묵 속에서 그들 행위 속에 빠져 있다. 아직 무엇인지 모르고 아마도 끝까지 답이 없는 화두가 되어 여러 명의 수행하는 젊은 수행승들은 큰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한다. 큰스님은 으레 큰스님들이 그러하듯이 동문서답으로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그 나름대로 사미승이 여러 가지 해석을 곁들이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

한국희곡 2015.10.30

장정일 '고르비 전당포'

희곡은 속도와 대중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작가의 존재 방식과 자의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중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소설가 (제이)는 컴퓨터로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그 대신 젊은 시절에 사용했던 클로버 727타자기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어렵게 입수한, 골동품에 가까운 클로버 727을 도난당하고 다시 실의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것과는 다른 클로버 727을 얻지만 소설가는 자신을 괴롭혀 온 강박관념과 죄의식에 짓눌린다. 컴퓨터에서 타자기로의 대체도 평화를 가져다주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찾아낸 것은 자신의 열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소설 쓰기에 대한 강박과 자해로 이르는 소설가의 추락 과정을 보여 주는 한편, 거기에 아이엠에프 직후의 서울 풍경을 함께..

한국희곡 2015.10.30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해리모피'

1912년 노벨상을 수상한 하우프트만의 풍자와 재치가 돗보이는 희극이다. 당시에는 반응이 신통찮았는데 최근에 재평가되는 작품이다. 1893년 베를린에서 초연되었으며, 완결된 5막극의 전통적 드라마 형식을 거부하고 장면의 구분 없이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도둑희극(Diebskomödie)’이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이지만 도둑이 잡히지 않은 채 끝나는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두 세계는 볼프가족으로 대변되는 ‘늪지의 야생초’와 같은 소시민 집단과 베르한으로 대변되는 관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지배계층의 세계이다. 두 세계의 이질성은 볼프 가족이나 여타 인물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작품의 무대인 베를린의 방언이 주로 구사되며, 매끄러운 완전한 대사가 아니라 말더듬이나..

외국희곡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