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원종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

clint 2025. 5. 2. 12:28

 

 

동네 목욕탕의 미적지근한 사우나.
더운 숨을 내쉬는 다섯 명의 친구들. 
35살 동갑내기 고교 동창들이다.
아내의 임신, 애인의 결혼 요구, 이쯤에서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 꿈, 부적절한 성관계……
모든 것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데,
재혼한 전 와이프와 호텔에 갔다는 친구의 이야기로 
갑갑함은 더해간다.  
예고 없이 정전되던 날. 
이들이 처한 상황과 유사한 어둠이 깔린다. 
미적지근한 사우나 같은 어둠.
완전한 어둠은 없지만
희뿌연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이들의 내면이 깜빡이고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인 듯 하다.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는 2007년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문학 부문에 선정된 최원종의 희곡이다. 2009년 극단 유랑선의 송선호연출로 공연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성장하여 이념의 사각지대에서 청년기를 보낸 3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다. 소극적이고 유약하며 개성과 취향으로 소비하는 이들은 취직, 결혼, 출산 등에 대해서도 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그들의 태도와 삶의 패턴은 심한 갈등을 야기한다. 작품은 이들이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대도시, 무국적, 허무, 자유, 방랑 등 이들이 꿈꾸었던 삶은 하루키의 삶과 닮아있다. 그러면서 ‘하루키처럼 살고싶었다’ 라는 말을 아무 꺼리낌없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아이들이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변화가 낳은 이 ‘감성 세대’의 아이들이 지금 혼란스럽다.

60대인 부모의 경제력이 약해져 원조는 끊어졌거나 끊어져 가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주변인이 되어버렸다.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현실과 부딪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묻게 되고, 저마다 통증을 겪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삶을 선택 하려고 애쓴다.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는 이들의 감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각자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저마다 앓고 있는 성장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을 거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최원종
오래전 한 교수님이 택시 안에서 내게 물었다.
"넌 어떤 정체성으로 글을 쓰니?"
그때 나는 그 질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 질문을 교
수님한테 되돌려 보냈다.
"교수님은 어떤 정체성으로 글을 쓰시는데요?"
"난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글을 써"
"교수님은 원래가 여성이시잖아요."
"네가 좋아하는 그 녀석은 무슨 정체성으로 쓸 것 같아? 그 녀석
은 애니메이션적 자아로 글을 써."
"예? 애니메이션적 자아요???"
내 인생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내내 나 자신은 어떤 정체성으로 글을 써야하는지 고민에 빠져지냈다. 그리고 졸업할 때 결정해버렸다. 난 19살의 자아로 글을 쓰겠어 19살에서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겠어. 언제나 삶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강력하게 겪는 19살. 그때 내 나이가 27살이었다. 나는 그렇게 브레이크를 19살이라는 나이에 왈칵 걸어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19살이라는 내 글쓰기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는 정말로 내가 19살이었을 때는 어땠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어떻게 내가 19살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나 자신에게 난 아직도 여전히 19살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 책들, 영화들, 음악들 34살의 나를 여전히 19살의 나로 지속시켜주는 것들...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츠지 히토나리, 야마다 에이미, 구로자와 기요시, 츠키모토 신야, 왕가위, 빈센트 갤로 브르노 뒤몽, 리처드 브라우티건, 후 샤오시엔, 소노시온, 아오야마 신지, 기타노 다케시, 데이빗 린치, 레오 까락스, 줄리엣 비노쉬 로만 폴란스키, 스파이크 리, 스티븐 소더버그, 프랑스와 오종, 차이밍량, 많은 일본 영화들과 일본소설들, 찰리 채플린, 브라이언 드 팔머, 배두나, 장정일, 하재봉, 하일지, 후루야 미노루, 모치즈키 미네타로, 에반게리온, 레인, 엘펜리트, 최종병기 그녀, 아키라, 공각기동대, 배틀로얄... 오에겐자 부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폴 오스터, 미셀 우엘벡, 로버트 윌슨, 어빈 웰시, 오래된 재즈와 고양이, 유미리, 시마다 마시히코 척 팔라닉, 샐린저 산책길에 목격한 UFO... 로빈 윌리엄스 야구 시오타 아키히코, 이와이 슈운지, 히치콕, 그리 고 수많은 호러와 공포 영화들, 톰 웨이츠, 고블린, 다리오 아르젠토, 조경 란, 백민석, 프랑스 영화들 그리고 히키코모리 근성, 자발적 외톨이...  
난 아직까지도 19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책은 빠짐없이 찾아서 보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여전히 19살이 주인공인 정말로 멋진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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