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란델로의 극<입에 꽃이 핀 남자>는 그의 대표작<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1921)이 처음 공연 된지 2년 후 1923년 무대에 올려졌다. 그의 극은 흔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이 나있다. 이 극 역시 텍스트를 읽는 이나 공연을 보는 이나 이해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의 극들이 매번 독특한 소재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듯, 이 극 역시 매우 함축적이고 색다른 표현방식으로 그의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극에서 우리는 창작과정에서 필요한 예술가의 조건들인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새로운 '예술 형식'에 대한 그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극의 첫 장에서 피란델로는 '등장인물'이라는 소개 대신 "대화하는 인물들”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입에 꽃이 핀 남자' (이하 남자로 표기)와 '손님' 이 둘이 하는 이야기가 극의 흐름을 이룬다. 그 외에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위의 "대화하는 인물들”이라는 표현에 속하지 않고 따로 "주의” 표시에서 설명이 된다. 피란델로가 특별한 방식으로 소개한 세 인물들 즉 '남자'는 작가인 피란델로 자신을, '손님'은 보통의 극 중 즉 대본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아내라고도 지칭하는 '여자'는 등장인물이 아니고 다름 아닌 작가의 상상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손님에게 얽힌 '놓친 기차 이야기' 와 '가족 간의 잡다한 이야기'는 작가가 극 중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구현하기 위해 이것저것 상상해 본 인물에 얽힌 사건들이다. 손님이 많은 짐들을 챙기느라 기차를 놓쳐 카페에서 쉬고 있다고 할 때 이것은 잡다한 상상의 파편들을 이것저것 챙겨놓기는 하였으나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음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이야기는 진척되지 못하고 그 지점에서 멈춘 채 쉬고 있다.
남자는 이 지점에서 '포장 이야기'를 통해 관찰력에 대해 언급한다. 보통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이 지나쳐버릴 장면에서도 남자는 많은 상상력이 떠오른다고 아니 떠올라야 한다고 한다. 이는 작가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어지는 '병원 대기실의 의자들과 소파 이야기'를 통해 남자는, 관찰력을 거쳐 발휘 되는 상상력이란 것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전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에게는 고통이라는 점을 고백한다. 작가란 사물과 사람들을 예리하고 세세하게 관찰한 후에도 그 연관성을 찾아 상상력을 통해 인생을 투영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상상력은 늘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여자, 벗어날 수 없는 아내와 같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저급한 거리의 여자나 찰거머리 같다. 따라서 남자가 입에 꽃이 핀 말기 암환자로 묘사되듯 작가의 고통은 매우 심각하다. 게다가 그처럼 괴로우면서도 그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얻는 것이란, 결국 인생에 대해 어리석고 부질없는 결론을 내리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인생을 그리자고 그 힘든 과정을 겪는 게 작가라는 것이다.

극은 작가의 상상력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잘 다듬어진 예술 형식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룬다. 작가의 관찰력을 잘 표현해주던 '포장 이야기'는 그게 무엇이든 아름답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예술의 형식 문제를 다룬다. 가게 점원의 포장 솜씨는 정말 훌륭하다. 여기에서 변화무쌍한 인생의 얘기들을 고정된 하나의 예술적인 형식으로 구현해내고픈 하는 작가의 고민이 다시 중첩된다. 점원의 솜씨로 아름답게 포장된 물건처럼 작가도 인생과 형식 사이의 관계가 잘 구현된 극을 창조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상력은 하도 써먹어서 넝마 조각처럼 너덜너덜하고 새롭지 못해 먼지가 쌓여있는 상태와 같다. 아내인 여자는 남자에게 이전의 집에 안주하도록 유혹한다. 즉 작가가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며 고통 받다가 편안히 안주하고 싶은, 즉 자꾸 이전에 쓰곤 하던 작품 형식대로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작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을 맞게 될 것임을 뻔히 안다. 그러한 형식에 작가가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 상상하기가 괴롭다 하더라도 상상하기를 안 하는 것은 차라리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다. 길가의 풀덤불의 잎들 수만큼 남자의 살날이 남아있다는 것은, 거꾸로 잎들이 사라지는 날 그가 죽는다는 즉 상상력이 없어지는 그날 작가로서의 생명도 끝이 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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