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잡이의 그림자(The Shadow of a Gunman)', '주노와 공작(Juno and the Paycock)', '쟁기와 별(The Plough and the Stars)'은 ‘더블린 삼부작’으로 알려진 오케이시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총잡이는 국내에 덜 알려진 작품이다.
시인인 도날 데보런은 물건을 파는 시마스 쉴즈의 거처에서 함께 머물고 있다. 작품은 시마스를 깨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늦게 일어난 시마스는 짐을 모두 꾸린 채, 오기로 약속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매과이어를 기다린다. 매과이어가 서둘러 들어와서 녹스단으로 나비를 잡으러 가야 하기 때문에 같이 못 간다고 말하고 가방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집주인인 물리건이 들어와 시마스와 집세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시마스는 데보런에게 집주인과 다른 사람들이 데보런을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하는 '도망 중인 총잡이'로 여기고 있다고 알려준다. 시마스가 나가고 난 다음 미니가 우유를 얻으러 들어온다. 데보런은 자신을 총잡이로 여기는 미니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에 우쭐해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한편 갤로거가 데보런을 도망 중인 총잡이로 여기고 핸더슨 부인과 함께 들어와 데보런의 도움을 청한다. 갤로거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 전하는 편지를 데보런에게 읽어준다. 바깥에서 속보를 전하는 소년이 녹스단에서 매복이 있었고 매과이어라는 남자가 죽었다고 전해준다. 데보런과 단둘이 대화를 주고받은 후, 미니가 나가고 데보런은 총잡이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 무슨 위험이 있겠느냐고 혼자서 말한다. 2막에서는 이제 밤이 되었고, 데보런은 셸리의 시와 같은 시를 쓰려고 애를 쓴다. 시마스는 시를 공격하고 데보런은 시를 변호한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며 시마스는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한다. 주민 봉기와 테러를 진압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특수부대가 들이닥치고 데보런과 시마스는 IRA의 진짜 총잡이 매과이어가 남겨놓은 폭탄 때문에 궁지에 몰리게 된다. 데보런을 진짜 총잡이로 여기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니는 매과이어가 남겨둔 가방을 자기 방으로 가져간다. 미니는 이 폭탄 가방 때문에 잡혀가고, 달아나려다 총살당하는 상황에서도 가방의 출처를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화국 만세”라고 외치고 죽는다. 미니의 희생으로 살아남게 된 데보런은 비겁한 자신을 책망한다.

'총잡이의 그림자'는 2막으로 된 비극이다. 원래의 제목은 '도망자' (On the Run)였는데, 애비 극장에서 공연 수락을 받고 난 뒤 '총잡이의 그림자'로 변경되었다. 이 작품에서 오케이시는 아일랜드 영웅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두 존재를 내놓는다. 하나는 시인이며, 다른 하나는 총잡이, 즉 투사다. 문학적, 문화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에서 아일랜드를 구원해줄 메시아적 존재인 이들 영웅에 대해, 현실은 각각 그 그림자에 해당하는 거짓 영웅들만 배출한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먼저, 시인으로 등장하는 시마스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시인의 임무가 민중을 구하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는, 현실적인 행동을 배제하고 생각에만 머무는 무책임한 인물이다. 그는 "난 시인의 위대함 여부는 보통 민중들에게 열정을 심어줄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 한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사명이 결국 민중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시마스의 이 대사는 바로 오케이시가 가지고 있던 시인 관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시마스는 한때 아일랜드 공화파 단원이었으나, 아일랜드 민중들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고 폭력을 통한 투쟁을 지향하여 오히려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아일랜드가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를 모두 영국의 식민지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아일랜드 공화파에서 탈퇴하는 인물이다. 이는 현실에서의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 해 생각해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작품의 시작 부분이 시마스를 깨우는 부분으로 시작하며 "쉴즈 씨, 일어났소?" 라는 대사가 반복 사용되고 있는 점 역시 현실에서 무력하게 살고 있는 그가 자각하고 각성하고 깨어 날 것을 촉구하는 요구로 볼 수 있다. 시마스는 비교적 젊은 35세임에도 위기 상황에서 성경과 성모상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그가 피난처를 구하는 종교 역시 진정한 종교의 모습보다는 부적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모습이다. 오케이시는 이런 시마스를 통해서 아일랜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종교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투쟁 중인 총잡이라는 영웅적 존재로 오인되는 데보런의 경우, 작품에서 시종일관 '도망 중인 총잡이' 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에게 주어진 총잡이라는 역할의 옷 역시 다른 사람들이 부여해준 것이란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데보런과 미니의 다음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데보런 : 제가 어떤 사람인데요?
미니 : (속삭이면서) 도망 중인 총잡이!
데보런 : (너무 기분 좋아 부인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요.

결국 미니의 눈에 비추어진 도망 중인 총잡이로서의 데보런의 모습이 데보런의 실체로 주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데보런은 미니가 보고 싶어 하는 소망이 반영된 제의 모습, 즉 미니가 제안한 '도망 중인 총잡이'의 역할에 우쭐하며 영웅적 존재로서의 연기에 돌입한다.
한편, 작품에서 직접 등장하는 진짜 총잡이인 맥과이어를 통해 오케이시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는 영웅들은 민중들의 현실에 그다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못됨을 보여준다. 맥과이어가 남겨놓은 폭탄 가방은 오히려 무고한 미니를 희생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게 만드는 결과만 빚는다. 데보런을 진짜 총잡이로 여기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니는 매과이어가 남겨둔 가방을 자기 방으로 가져간다. 게다가 이 폭탄 가방 때문에 끌려가 총살당하는 상황에서도 가방의 출처를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화국 만세!"라고 외치고 죽는다. 미니는 공화파 영웅이라고 믿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죽지만, 사실은 겁쟁이를 위해 헛된 죽음을 한 꼴이다. 결과로 나타난 진정한 영웅적 행위는 전혀 의도하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며, 또한 나약한 여성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런 행위를 빚어내게 된 원인이 되는 것도 진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거짓에 기반 한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공허감을 던져준다. 이는 나아가 혁명을 위한 투쟁의 공허함을 전달해준다. 결국 누구를 위한 투쟁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무의미한 음향과 분노로 가득한 것에 불과하며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아일랜드에서 총잡이의 그림자에 불과한 거짓 영웅만이 아니라 진짜 투사 역시 미니의 희생만을 초래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아일랜드의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게다가 우연과 사고가 운명으로 작동한다. 작품 속에서 그릭슨은 "이제 어디서도 당신 목숨을 확신할 수는 없어. 어느 곳이건 어디서건 상관이 없는 꼴이지”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입장은 시마스에 의해 "고통당하는 건 시민들이야. 매복한 복병이 있을 땐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모른다고. 대영제국을 위해 등에 총올 맞고, 아일랜드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가슴에 총을 맞게 되지”라고 지적된다. 가짜 투사인 데보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죽는 미니의 운명은 정확하게 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Seán O'Casey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희곡 작가이자 20세기 현대 연극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더블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각종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한때는 혁명군에 가담하기도 했다. 힘겨운 삶의 경험을 통해 오케이시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통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노동 운동과 공산주의 사상을 동경했지만 편협한 정치적 선전극을 쓴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사회 변혁을 추구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 아누이 '종달새' (1) | 2015.11.12 |
|---|---|
| 루이지 피란델로 '입에 꽃이 핀 남자' (1) | 2015.11.12 |
| 올렉 예르넵 '예쁘고 외로운 여자와 밤을' (1) | 2015.11.12 |
| 클레이 고스 '복서의 말로' (1) | 2015.11.12 |
| 포린 맥코레이 '모니카' (1) | 201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