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초기의 정치적 동요도 가라앉고 사회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자, 세종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대사상에 물들지 않은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여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진하려 한다. 동래현 출신의 장영실은 입궐하게 되고, 영실의 총명함을 알아본 세종은 그를 중국으로 보내며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을 습득하라고 명한다. 하늘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알고 싶은 장영실은 명나라의 주하를 만난다. 조선의 노비출신 장영실과 중국의 황족인 주하는 국가와 신분을 넘어서는 우정을 쌓아간다. 조선으로 돌아온 영실은 유학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발명품들을 제작한다. 세종과 이천은 조선만의 무기개발과 개량을 위하여 전국의 대장장이와 금속기술자들을 비밀리에 한 곳에 모은다. 장영실은 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한 세종의 프로젝트를 급속도로 추진하게 되는데...
하늘을 읽을 줄 아는 남자 장영실, 부강한 자주국가 건설을 꿈꾸는 성군 세종, 풍류를 아는 음악가 박연,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장군 이천 등 조선 건국 초기에 명나라에 맞서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루어낸 영웅들의 대서사시, 그리고 그 중심에 흐르는 아름답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일대기를 그린 극단 아리랑의 창작뮤지컬 '천상시계'(김남채 작, 방은미 각색)는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가 숨쉬는 작품이다. 뮤지컬 '천상시계'는 옥루와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 측우기 등을 발명한 천재 장영실이 임금이 타는 어가(御駕)를 만들지 못해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실을, 퍼즐을 꿰맞추듯 새로운 픽션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천상시계>는 장영실(蔣英實)의 각종 천문기구(天文器具)와 기상기기(氣象器機) 제작과 관련된 내용으로, 당시 부강한 자주 국가를 꿈꾸던 세종(世宗)과 박연(朴堧), 이천(李蕆), 황희(黃喜) 등 역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외세에 의존하지 않은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상의 연인 예성이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복선으로 엮은 음악극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 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 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기녀(妓女)였다.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였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太宗)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고,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으로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면천(免賤)되어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관노(官奴)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행사직(行司直)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李蕆)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세종 15) 정4품 호군(護軍)에 오르고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銅活字)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 ·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採訪)별감이 되어 구리[銅] ·철(鐵)의 채광 ·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上護軍)에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세종이 신병치료차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수레가 부서져 그 책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였다. 세종은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로 감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무대는 경희궁의 숭정전 대청과 월대(月臺)를 사용하고, 월대 좌우에 설치한 철제 빔에서 조명을 비추도록 만들었다. 숭정전 계단 위에 국악관현악단 연주석을 마련하고, 월대 아래 마당까지 동선을 넓힌다. 숭정전의 여닫이 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가리개를 사용해, 거기에 명멸하는 별빛과 천문도등의 영상을 투사해 시각효과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숭정전 오른쪽객석 가까이 커다란 망루(望樓)를 세워 중국의 천문대(天文臺)라 명명하고, 장영실의 고향집은 절개한 초가그림에 비춘 부분조명으로 장면전환에 대신한다. 연기자들은 무선마이크를 사용하고,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객석의자에는 모포를 1장씩 비치했다.
연극은 도입에 출연자 전원이 등장해 관객맞이 열창을 한다. 이어 장영실의 고향 장면에서 그의 첫사랑인 미모의 예성이 등장해 사랑을 엮어간다. 장영실이 상경해 평복차림의 세종과의 첫 상면이 이루어지고, 재상과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영실을 적극 천거하는 이천의 성품이 부각되는가 하면, 출신성분이나 가문의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려는 세종의 혜안(慧眼)이 객석에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명나라로 유학을 떠난 장영실과 천문대에서 만난 천자가문(天子家門)의 주하와 상면에서, 두 사람의 우의(友誼)를 높이는 계기가 마련된다. 향후 장영실은 천재적인 천문기기와 기상기기 발명가가 되고, 고향의 예성 아가씨는 기녀(妓女)로 변신 상경해 장영실과 해후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잘 익은 석류 알처럼 부풀어 간다. 장영실의 면천(免賤)과 관직의 등급이 날로 높아지니, 대신들의 반대소리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시 천문관측은 중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천문기기 제작은 중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 하였는데, 장영실의 발명 소식에 노한 명나라에서는 대신을 조선으로 급파한다. 명나라 대신, 그는 바로 천문대지기 주하라는 인물이다. 주하는 장영실과 해후하고, 장영실의 발명을 이해하지만 천자의 명을 어긴 행위라 곤혹스러워 한다. 주하가 주저하는 사이에 명나라 암살대가 잠입한다. 암살대가 칼을 휘두르자 예성이 온몸으로 막아 장영실 대신 죽는다. 명나라 사신 일행은 돌아간다. 주하와 함께 별을 노래하던 장영실은 죽은 그녀를 생각하며 천문도(天文圖)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천상시계(天上時計)를 창출해 낸다. 대단원에서 장영실이 만든 어가(御駕)가 행차 중 파손되는 일이 발생하고 그 문책으로 그는.....
김남채 (작자)
전남 해남 출생 한양대학교 법대 졸업
'문예사조'에 く혼 깨우는 소리>발표하여 등단 희곡<상호군 장영실><거미집>등 다수 발표 2004년 소설 '교회바보' 출간
2004년 11월 뮤지컬<천상시계>공연 (아르코 대극장)
수상내역: 탐미문학상, 이육사 문학상, 장영실 문화상, 스위스 국제발명품전시회 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