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의경 '함성'

clint 2015. 11. 12. 14:54

 

 

 

 

 

을사보호조약 이후 한말의 거유 최익현을 중심으로 호남, 호서 지방의 유림과 농민들이 일으킨 의병운동을 그린 작품이다.
'春秋大義 日月孤忠'은 면암 최익현 先生의 立場과 심정을 여실히 表現한 글이라 하겠다. 歷史的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외세에 침범되었다. 그럴 때마다 義人들의 지혜와 용맹과 愛國心으로 과감히 敵과 對決하는 能力을 발휘했다.
演劇 '喊聲'의 배경이 되는 1906年과 1907年의 의병, 世稱 순창義兵의 主役인 면암 최익현 先生의 方法도 왜가 이미 을사보호조약이란 터무니없는 흉계로 손발을 묶어 놓았을 때 歴史의 단절을 生命力의 아픔으로 이으려 했다.
유림의병, 또는 농민의병이라고 하는 이 義兵의 性格은 男女老少, 地位高下, 계급을 막론하고, 少數의 시편으로 역사를 지키고 民族의 血族을 이어가게 한 가장 외로운 싸움이요, 抵抗이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의 核心인 최익현의 인간상의 追求는 그대로 近代 民族史의 귀중한 章으로 높이 評價 기록되었다.
여기 演劇 '함성'은 歴史의식과 生命力과 단절을 원치 않는 民族의 아픔을 民兵, 義兵이란 民族의 함성으로 表象하려는 데 목표를 두었다. 한때는 大院君을 후퇴시킬 정도의 기개였든 면암이 대마도에서 단식으로 그 파란 많든 일생의 끝장은 오로지 '孤忠'이요, 희생과 봉사로 아로 새겨진 거인의 미소였으리라. 허나 여기 한 人間, 최익현의 육신은 또다시 그를 추모하는 民衆의 喊聲으로 비장함은 마치 승천의 色彩로 現代에 되살아나서 무대에 제시된다. 時代는 흘러갔건만 크게 자리 잡은 면암의 精神世界는아무도 흔들수 없는 무게로 항상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演劇은 이러한 의도가 무대에 생생히 부각될 때, 그리고 歴史의 번역이 아니라 연극으로서 生命力을 새로 찾을 수 있는 創意性이 발휘될 때 歴史도 살고 연극도 살 수 있다고 본다.

 

 

 

 

 

 

 

 

작가의 말 : 재미있는? 재미없는?


개년12월 '함성의' 집필을 겨우 끝냈을 때 친구로부터 축하의 전화를 받았다.
『뭐 넌 史劇만 쓰는 거냐?』
『왜, 어때서?』
『좀 더 재미있는 거 쓸 수 없겠느냐고?』
『이번 작품 굉장히 멋있어, 재미있고......』
『웃기지마, 기대 안 해』
『보지도 않고?』
『안 봐도 원하게 알겠어. 재미있는 걸 써줘. 심각한 건 딱 질색이란 말이야.』
『시끄러워, 난 당분간 사극만을 쓰겠어, 왜 있잖아! 세익스피어에게도 史劇時代가 있었다는 거......』
『누가 시끄러운지 모르겠네. 그건 학자들이 만들어낸 '時代'야, 아무튼 재미있는 걸 써줘, 부탁이야.』
연극의 재미라는 것- 난 참 이걸 연극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나대로 노력하지만 연극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는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은 연극의 재미에 관한 한 나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기를 꺼려하는 듯싶다. 그만큼 나 자신도 혹 재미있는 작품은 한편도 못쓰게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라는 것은 어느 쪽에서 규정하느냐 할 때 여기 문제가 있다. 즉 소재가 재미 있냐, 다시 말하면 그것이 소극적인 시추에이션이냐 할 때, 판소리 '홍보가'의 경우처럼 슬픈 대목이라도 희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작가가 표현하고 있을 때, 또 이와는 엉뚱한 방향에서 작가가 희극적인 소재를 진지하게 비극적인 안목으로 다루어 관객이 전혀 웃지는 않지만 흥미 있게 그 연극을 보고 있을 때......등등이다. 말하자면 웃을 만한 작품을 썼느냐, 흥미 있게 무대를 지켜볼만한 희곡을 썼느냐가 재미있는 연극을 평가하는 열쇠가 된다. 전화 걸어준 친구의 의도가 前者이기를 바라는 이유는 後者일 경우 나를 형편없는 劇作家로 몰아세운 언동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연극의 재미는 이미 연극사적으로 그 오락성과 교육성이라는 두 성질을 지적받음으로써 새로운 論爭거리는 못된다. 이제 나에게 남은 문제는 '재미있는 사극시대'의 창조인 것이다. 연극은 관객이라는 집단 앞에서 재미있게 펼쳐져야 하는데 대체로 감동을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특히 그 연극이 끝날 때의 최종적인 감동이 대단히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대단히 분명하게 그 연극의 목적을 드러내주어야 한다. 2시간짜리 연극이 아무리 지루하였어도 막이 내릴 때의 감동이 크면 성공하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그 마지막 감동을 안겨주는 순간이 미흡하면 관객은 박수치는 것도 사양하고 씁쓸하게 일어난다.
졸작 '南漢山城'의 종막을 인조가 승강단으로 올라가 는 장면이었는데 이것은 한국 관객에게 대단히 불유쾌한 반응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었다. 사실이 어떠했던 현실의 관객은 민족적 치욕을 극장에서까지 재확인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劇場은 孤燭을 느끼러가는 장소가 아니다. 고독을 버리러 가는 곳이다'
'함성'에서의 종막도 나에게는 어려운 처리였다. 도대체 우리 歴史에서 더구나 悲劇的 인물 내지는 상황을 다루면서 어떻게 홀가분한 감동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그런데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발견하였다. 면암先生의 인물과 사상을 조금 더 이행하게 되었을 때였다.
서막에서 백의의 말없는 백성들이 초량진 부두에 도착한 면암의 관을 맞아드린다. 소리 없는 오열의 어깨물결, 한 末의 가장 위대했던 지도자가 이국땅에서 굶어 돌아가시어 이제 무언의 귀국을 하시었다. 무대는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가득 찬다. 마침내 선생의 제자 최제학 등이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이곳은 대한 땅입니다!"
이때까지 소리를 못 내던 民衆의 오열은 폭발하듯 터진다.
종막에서 사정은 달라진다. 민중들은 先生의 순열의 뜻을 깨닫고 자랑스러워진다. 힘으로는 졌지만 싸움에서는 이겼다는 자부감이다. 或者는 이러한 나의 해석을 我田引水격인 것으로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아니다. 한말의 의병운동을 개별적으로 보면 하나 하나가 패배의 기록이 된다. 힘으로는 弱한 우리 民族을 그러한 패배의 歴史로만 파악하기란 무엇보다 쉽다. 弱하니까 졌고 수없이 外族에게 유린당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나 그 弱하디 약한 민족이 그 숱한 수모와 고통을 받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건재해있다. 오히려 이제는 세계를 향해 무언가 소리를 한번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지 아니한가. 이 지구력을 무엇으로 理解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解明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잡아 본다. 우리 민족의 生存에 대한 무서운 힘에 이 敗北의 歴史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성'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민족의 수난과 고통이 아니다. 그것들의 극복이며, 그로 인한 영광이다.'
작자로서, 이러한 의도가 흰옷 무리의 말없는 동작만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될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더구나 이것으로써 재미로 통하는 감동으로까지 표현될는지는 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극을 통하여 나 스스로의 民族的 자각에 도달하려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의 욕구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作品으로 구체화되고 더구나 演劇으로서 관객 앞 에 전개될 때 그것은 긍정 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관행행위를 아직 나는 충분히 입증하지는 못하고 있다. 좀 더 탐구하고 사색하고 써보아야 할 것이다.
'함성'은 내 친구의 추측대로 확실히 재미없는 연극 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관객 속에서 몇몇 肯定者를 만나고 싶다. 그분들은 재미를 느낄 것이고 재미없는 연극이 아니었다고 나를 위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적은 肯定者들이 아니라면 나의 作品은 당분간 햇빛을 볼 날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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