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이 쓴 최초의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존 밀링턴 싱의 '계곡의 그늘( In the Shadow of the Glen , 1903 )'이란 작품과 많이 유사하여 번안 한게 아니냐는 평도 있지만 1930년대에 이런 여성이 비록 첩이지만 병든 남편을 버리고 동네 머슴과 야반 도주하는 내용은 파격이라고 항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혹자는 일제시대의 나라의 운명에 빗대어도 평하지만 좀 논리비약이 심하고 자연주의적 작품 토대로 보면 좋을 듯하다. 늙은 남편인 추암이 마지막 떠나는 젊은 첩을 보고 이젠 두다리 쭉 뻗고 쉴수 있겠다고 하는 대사에선 남편의 젊은 부인으로 인해 젊어지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부인으로 인해 그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셨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러면서 부인이 잚은이와 잘 살아야지 하며 보낸다. 실제 아일랜드에서는 계곡의 그늘 조연시에 관객들이 흥분해서 난리가 벌어져 공연이 취소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경에서 초연되어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1935년에 쓴 작품으로 그 해에 '극연좌'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선생이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네 풍경' 에서 그 리얼한 사실주의 수법으로 농촌의 참상을 속속들이 폭로한 다음에 쓴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기한 두 작품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전기한 두 작품이 사실주의 수법인데 비하여 이 작품은 자연주의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기한 두 작품이 농촌의 참상을 들추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그 고발로 그 시대의 여러 문제점을 제시하려는 강렬한 비판 정신이 있는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늙은 부자의 첩이란 부정된 인물이 머슴과 도망치는 현실을 그냥 현실의 한 사건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서는 작가의 고발정신이나 문제의식이 무척 감퇴 됐음을 알 수 있다.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네의 풍경'으로 일제 관헌의 주목을 받게 된 선생께서 이런 작품으로 방향을 바꾼 사정은 짐작하겠지만 좀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선생님이 구태어 습작이라고 강조하는 연유도 그런 데에 있지 않나 싶다.
유치진의 초기작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황폐화의 과정을 겪는 한민족을 농촌현실에 비추어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그려내었다. 일제의 횡포가 심해는 시점에서는 애정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적 역사극을 주로 다루었다. 8ㆍ15 후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전쟁을 비참함, 분단문제 등을 다룬 작품을 썼다. 이상의 희곡창작과 연출뿐만 아니라, 유치진은 연극교육, 극장운영에도 관여하며 연극의 다방면에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업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전통공연예술이 쇠퇴의 길을 걸을 때 그것을 과감하게 현대문화 속으로 끄집어 올려놓은 점. 두 번째, 어린 나이에 연극계에 투신, 저급한 대중문화 정화에 앞장 선 점. 세 번째, 40여 편의 희곡 창작과 연극제작을 통해 한극의 근대극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사한 점. 유치진은 한국 연극계의 선각자로 평가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의경 '함성' (1) | 2015.11.12 |
---|---|
유치진 '빈민가' (1) | 2015.11.12 |
오태영 '콩가루' (1) | 2015.11.12 |
이재현 '각설 춘향전' (1) | 2015.11.12 |
유치진 '흔들리는 지축' (1) | 201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