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피터 세퍼 '레티스와 러비지'

clint 2015. 11. 12. 14:23

 

 

 

 

 

 

연극적인 생활과 생각으로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사는 레티스는 그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또 다른 전형적 성격의 문화재관리 공무원 롯데를 만난다.

상상력의 소산인 레티스의 관광안내와 그로 인한 해고..

그들 간의 갈등은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와 인간성 회복을 내심 원했던

롯데의 화해로 둘만의 우정이 시작된다.

연극 연습 중 롯데의 부상과 그로인한 기소로 한차례 위기가 닥치며,

현실적인 면을 고려한 롯데의 갈등으로 인해,

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둘이 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한국에선 상사주란 제목으로 번안해서 공연시 히트를 쳤던 작품인데... 제목의 러비지가 중세 비법으로 빚은 술로 그런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여자 특히 레티스 역의 연기력이 무척 중요하기에 작가도 배역을 정해 놓고 썼다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 역사와 문화 연구가 필요하며 재미있게 만든 작품이다.

 

 

 

그동안 주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흔히 Apolloni an principle과 Dionysian principle로 일컬어지는 서로 상반되는 원칙에 따르는 남성 protagonist들의 대립 관계를 진지하게 다루어온 Shaffer가, Black Comedy이후에 오래 만에 발표한 희극이 〈레티스와 러비지〉이다. 이 작품에서 Shaffer는 관광안내원인 레티스와 그녀를 고용한 문화재관리 보존 처 여직원간의 관계를 훌륭한 예술적 기법으로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가장 재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진 여배우인 Dame Maggie Smith를 위해 특별히 쓰여 진 희곡으로서 (그녀는 The Private Ear의 Doreen역 그리고 The Public Eye의 Belinda역도 맡았었다) 런던의 Globe Theatre에서 1987년 10월에 Michael Blakemore의 연출로 막을 올렸는데 이 작품으로 해서 Shaffer는 또 다시 Evening Sfandard지가 주는 그해의 최고 연극 상을 받았다. 그러나 Shaffer는 이 희곡의 결말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수정을 했는데 1988년 말에 Magie Smith가 사고를 당해 cast를 교체해야 했을 때 이 수정판으로 다시 런던에서 1년 이상 공연을 했으며, 뉴욕 공연은 Dame Smith가 완쾌된 후인 1990년 3월에 초연 때의 캐스트가 재등장하여 Ethel Barrymore Theatre에서 이루어졌다.

 

 

 

원작가 쉐퍼는 주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흔히 이성과 정확성의 원칙과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원칙로 일컬어지는 서로 상반되는 원칙에 따르는 남성인물들의 대립관계를 진지하게 다루어 왔는데, 이 작 품의 주인공들은 중년에 접어든 성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녀다운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쉐퍼가 보여주던 일련의 인물들과 어느 정도 일맥 상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극적 소질과 열정을 가진 레티스와 냉정하고 이지적인 롯데라는 상반된 두 인물의 성격은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우처럼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지 않는다. 물론 몇 군데에서 서로 상이하고 대치되는 그녀들의 특징으로 인해 갈등을 빚어내지만, 결국 그녀들이 보여주는 것은 갈등에 의한 파국이라기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의 성장이며 화해고, 조화다. 성장과 화해, 그리고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을-연극성 때문이며, 쉐퍼는 그것을 이 작품 안에 메타드라마적 연극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하나의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극중극을 이용한다든가 배역들이 서로 자신이 아닌 다른 역을 하게 함으로써 배역들이 자신과 서로에 대해 이해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결국 대치되는 적이 아닌 강한 자극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하는 친구일수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들이 가진 연극성은 그녀들을 사회에서 낙오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 러비지(Lovage)가 지닌 두가지 의미-사랑(love)과 아픔(ache)에서 보듯이 이들이 가진 연극성이 둘의 우정과 사랑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아픔 또한 예상할 수 있다. 그녀들은 이방인이라느끼기도 하고 퇴출당할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연극성은 살아가는데 불필요하고 심지어는 해가 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그녀들 삶 안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얻게 하며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바라보고 접촉하는 타인에게까지 활기와 생기를 가져다주고 변화시킨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쉐퍼가 평생을 통해 탐구했던 사색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들을 수 있다. 연극성... 우리의 삭막한 삶에 활력과 즐거움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는 이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예술의 세계로 몰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결국 인생은 연극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극의 우월함, 연극성의 승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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