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드의 『그녀가 창녀라니』는 찰스 1세 시대의 캐롤라인 희곡이다. 정치와 종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도덕성이 위협되며 고귀한 사랑마저도 돈과 사회적 체면에 짓밟히는 파르마라는 부패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며,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없는 오누이간의 근친상간 적인 사랑을 그 어떤 다른 작품보다도 더 극적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천재적인 학문적 재능과 순수한 영혼, 사회의 금기에 맞서는 용기를 지닌 지오반니, 사회와 관습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사랑을 지킨 애나벨라, 이 두 명의 주인공을 제외한 그 어떤 등장인물도 진정하고 순수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모두가 다 각자의 속셈이 있고 그것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다른 인물들의 모습은 비극적이고 우울한 극의 분위기에 더욱 숨통을 죄는 갑갑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겉으로는 깨끗하고 고귀한 얼굴을 하고 다니지만 유부녀 히폴리타와의 불륜을 숨기고 애나벨라와 결혼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랜조, 그의 복수심을 부추겨 살인 잔치를 벌이게 하는 하인 바스께스, 살인자 그리말디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주는 추기경 등과 같은 인물들은 무엇이 사회의 정의이고 삶의 올바른 질서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따라서 이렇게 음모와 계략들이 판을 치는 부패한 곳에서 순수한 자기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승에서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지오반니와 애나벨라의 사랑은 오히려 더욱 안타깝고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이들의 모습에서 독자는 말로우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을 읽어낼 수도 있다. 이들은 사회적 관습의 한계를 넘어서려다가 쓰러져버리는 영웅적인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이 아무리 근친상간이라고는 하지만 살인과 음모로 얽히고 섥켜 사회적 도덕 기반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사회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관객은 이들이 금기를 깬 것에 대해 단죄를 하려 하기보다는 좌절된 인간의 기본적 욕망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사회적 개인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비극 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창녀라니" 에 있어 주목할 만 한 점은 작품의 우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와 충격적인 극적 효과들이라고 하겠다. 지오반니가 누이이자 연인인 애나벨라의 심장을 칼에 꽂고 등장하는 장면은 단연코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극적 효과 때문에 작품의 형식상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거나 유기적 연결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독자는 포드가 영국 희곡의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시대의 거의 마지막 극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셰익스피어라고 하는 거대한 별이 연극에 가능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험을 해놓은 상태에서 관객의 눈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포드의 노력은 더욱 과감한 소재를 택하게 했고 무대 위에서 더욱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한 것이다. 사실 『그녀가 창녀라니』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상황을 좀 더 극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지오반니와 애나벨라의 비극적인 근친상간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펼치는 낭만적인 사랑이 관습적으로 굳어진 것을 식상해하는 시대에 극을 써야만 했던 포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위대한 일류 시인”이라는 평가와 "피상적이고 속은 텅 빈 작가”라는 극단을 오가는 평가를 받고 있는 포드의 작품들은 위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점에서는 깊이가 없고 부족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앞선 작가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르네상스 희곡 가운데 주제와 스타일에 있어 색다른 변주를 보이는 포드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존 포드(John Ford, 1586-1639?)
영국 데번셔 출생. 1602년 런던의 법학원 이너 템플에 입학이 허가되었다는 일 외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진 바는 없다. 그의 작품 가운 데 남아있는 것은 '연인의 우울' (Lover's Melancholy), '사랑의 희생' (Love's Sacrifice), '상심' (The Broken Heart), ‘펄킨 워벡의 연대기' '그녀가 창녀라니' 이다. 특히 『그녀가 창녀라니』는 작가로서의 이름을 확실히 굳힌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듯 엘리자베스 시대의 비극은 암울함이 병적인 것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포드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포드는 엘리자베스 시대 최후의 위대한 비극작가라 할 수 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빌 노턴 '바람둥이 알피' (1) | 2015.11.12 |
|---|---|
| 카릴 처칠 '클라우드 나인' (1) | 2015.11.12 |
| 윌리엄 콩그리브 '세상의 이치' (1) | 2015.11.12 |
| 리처드 셰리단 '추문패거리' (1) | 2015.11.12 |
| 마리루이제 플라이서 '잉골슈타트의 공병대' (1) | 201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