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빌 노턴 '바람둥이 알피'

clint 2015. 11. 12. 10:17

 

 

 

전세 택시도 몰고 남의 자가용도 운전하는 프리랜서 운전기사 알피는 큰 키에 늘씬하고 잘 생긴 바람둥이로 돈 많은 귀부인을 잡아 팔자 고칠 만큼은 못 되지만 뭇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자라 별 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노동계급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알피는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와 섹스, 그리고 다소간의 여유와 안락을 즐길 뿐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지기를 거부한다. 결국 그는 자기를 무척 사랑했고 아이까지 낳은 여자를 딴 남자에게 떠나보낸다. 알피에게 세계는 결국 혼자 살아가는 곳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마음앓이로 더 깊어졌는지 폐병이 나 요양원에 가서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동정받는 것이 싫어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들리는 부인만 생각하며 일주일을 사는 남자, 부인이 세상을 먼저 떠한 후 삶을 즐길 이유를 잃어버린 노인을 보며 자기의 세계관을 확신한다. 그렇다고 그가 사귀는 여자의 프리섹스나 양다리를 아무 감정없이 바라볼 수 있는 쿨가이가 아닌 건 당연하다. 알피가 자기 매력을 이용해 골라 관계를 유지하는 여자는 대개 그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자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순정파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프리섹스나 양다리는 터치하지 않을 여자여야 한다. 알피의 연애는 한창 즐기려는 순간 끝이 날 수밖에 없다. 순정파 여자는 결국 그에게 좀더 책임감을 요구할 것이고, 순정파가 아닌 여자는 다른 남자와도 즐길 것이기 때문이다. 알피는 둘다 참을 수가 없다. 알피가 동정심이나 배려가 없는 냉혈한인 것은 아니다. 정들었으나 아버지가 되길 거부해 엄마 따라 떠난 아이에겐 애틋한 그리움도 느끼고 우연한 오후의 정사로 덜컥 임신해 가정이 망가질 위기에 빠진 친구의 부인을 위해 낙태 수술을 제공해주고 핏덩어리 아이의 주검을 보았을 땐 깊이 죄책감을 내비친다. 그래서 반성하여 새사람이 되나 하는데... 마음을 다지고 미장원 사장루비와 결혼할 마음으로 그 답지 않게 꽃을 사가지고 불시에 그녀 집을 방문하나 웬 걸 자기 친구와 있지 않은가?
돌아서서 자신을 되돌아보나 바람둥이 기질이 어다 가는가 1장에 나왔던 씨디를 우연히 만나 다시 어울리면서  막이 내린다.

 

 

 

알피는 '이유 없는 반항아'가 아니다. 아니, 반항아도 아니다. 그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 즉
돈과 여자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얻는 재주가 있다. 다만 한곳에 얽매이기 싫다는 조금 큰 욕심 때문에 모조리
망쳐 버리고 결국 알피는 인생이란 게 살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물론 알피는 절대로 자살할 타입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노동계급의 돈환이었고, 돌로 변하는 대신 플라스틱이나, 금속 쪼가리 꼴로 변하는 것이다.

 

 

 

 

 노턴 (Bill Naughton)
1910년 6월 12일 아일랜드의 발리하우니스에서 출생, 어릴 때 영국으로 건너와 랭카셔의 볼튼에서 자라면서 그곳의 세인트 피터 앤드 폴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석탄배달부, 트럭운전수 둥의 갖가지 직업을 가졌었고, 처음에는 잡지와 라디오의 다큐멘터리 드라마 작가로 시작하여 1960년대 초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당시의 신인 작가로 유명했던 존 오스본, 해롤드 핀터, 조 오튼, 에드워드 본드 보다 최소한 스물 살은 더 늙었고, 작품들도 그들에 비해 강렬하거나 거칠지도 않았고, 혁신적인 형식도 아니었으며,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분노도 적었다.
그의 대표작 (때가 되면(All in Good Time)), (바람둥이 알피 (Alfie)), (봄과 포도주(Spring and Port Wine)》는 모두
버나스 마일즈가 시작한 런던의 인어극장을 위해 쓴 것인데, 이 극장은 한 때 로열코트 극장이나 시어터 윅숍 극장만큼 유명했던 곳이었다. 이곳을 다시 재건하려는 마일즈의 의도는 슬로언 스혜어 극장처럼 정치적 과격도 아니고, 조안 리틀우드 처럼 지방색이 강한 것도 아닌, 일반적이고 따뜻하며 솔직한 연극의 발굴이었다. 이점은 바로 빌 노턴의 특징이었고 (바람둥이 알피)를 통해 60년대의 도덕 변화를 보여주며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