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카릴 처칠 '클라우드 나인'

clint 2015. 11. 12. 10:13

 

 

 

 

1막
클라이브가 그의 아내인 베티에게 해리라는 손님이 집에 초대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베티는 클라이브에게 그녀의 흑인 노예 조슈아가 그녀를 모욕했다고 고자질하고, 클라이브는 그를 사과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자식인 빅토리아와 에드워드, 가정교사 엘렌, 그리고 베티의 어머니인 모드까지. 에드워드는 빅토리아의 인형을 돌보아주는데, 이 행동이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해 하고 있다. 베티는 손님을 잘 모셔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하고 있다. 이웃집 과부인 손더스 부인는 은신처를 찾기 위해 집에 온다. 마을의 부족들이 전쟁을 준비하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 있기 무섭다는 이유다. 해가 도착하고, 그와 클라이브는 토착민들을 경멸하며 지금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해리와 베티는 홀로 남겨져있다. 그들은 낭만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린다. 양성애자인 해리가 조슈아에게 섹스를 제안하며 씬이 끝난다.
몇 밤이 지난 후, 집과 조금 떨어진 트인 공간에서 손더스 부인와 클라이브는 만난다. 클라이브는 이미 그녀를 유혹했고, 그녀를 성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 또한 그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뜻에 따라간다.
가족은 크리스마스 소풍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야구를 하는데, 남자들이 독점을 하며 여자들이 공을 잡을 줄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곤 모두가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조슈아는 클라이브에게 마구간지기 소년들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그들은 칼을 가지고 다닌다고 경고한다. 해리와 베티는 사랑의 표현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베티는 둘이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없음에 슬퍼한다. 에드워드는 해리를 좋아한다고 했고, 그들이 성관계를 가진 것 또한 확연하다. 베티는 엘렌에게 그녀는 해리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았고, 엘렌은 그녀가 베티에게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하고 만다.
집에서 여자들은 마구간지기들이 채찍질을 당하고 있음에 대해 논하고, 손더스부인은 이를 확인하러 현장에 간다. 애드워드는 아직도 빅토리아의 인형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베티는 그것을 빼앗고 그의 뺨을 때린다. 그러자 엘렌도 같이 때린다. 에드워드는 돌아오는 클라이브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해 흉을 보았다고 자백하지만, 클라이브는 그를 용서한다. 클라이브는 그가 해리에 대한 베티의 감정을 잘 알고 용서하려들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부부 관계를 망쳐버릴 것이라 한다.
베란다에서 클라이브는 인근 마을에 영국군들의 습격이 있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는 해리가가 남아있기를 간청하지만, 엘렌은 오로지 베티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한다. 클라이브는 해리에게 그는 남자간의 의리를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한다. 해리는 이를 잘못 해석해 성적으로 다가가고, 이에 혐오감을 느낀 클라이브는 해리에게 혼인을 해야 그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손더스부인은 클라이브에게 조슈아의 부모님이 영국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줬으나, 클라이브가 조슈아에게 하루를 쉬게 해주자, 조슈아는 영국군의 편에 합류하며 그의 부모님이 나쁜 분들이었다고 배반한다. 해리는 손더스부인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헬렌에게 청혼하자 승낙하여 해리와 헬렌은 결혼을 하는데... 뭔가 불만인 조슈아가 클라이브를 총으로 쏜다.

 

 

 

2막
이 얘기는 100년 후 겨울, 오후 시간대의 런던 공원에서 일어난다. 1막에서의 몇몇 캐릭터들은 재등장하지만, 그들은 25살 밖에 나이를 더 먹지 않았다. 빅토리아는 마틴과 결혼했고, 이들은 아들인 토미가 있다. 빅토리아의 친구인 린은 이혼했으며, 4살짜리 여자아이 캐씨가 있다. 캐씨는 두 여자가 양육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권총을 가지고 열심히 논다. 린은 그녀가 레즈비언이며, 남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 공원의 정원사인 에드워드는 도착해 빅토리아에게 그들의 엄마가 저 쪽에서 걷고 있다 알려준다. 이것은 빅토리아에게 듣기 좋은 전달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엄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베티는 거친 게임을 하다 멍이 든 토미와 함께 등장한다. 베티는 그녀가 클라이브를 떠날 거라고 선포한다. 베티가가 떠나자, 에드워드와 빅토리아는 놀람과 경악을 표하며 양측 부모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이제야 믿는다. 장면이 끝나자, 린은 빅토리아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봄이고, 에드워드와 그의 동성 커플인 게리가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다. 에드워드는 게리가 어젯밤 어디에 있었는지에 설명을 요구하지만, 게리는 그저 얼버무리고 피한다. 에드워드가 떠나고, 게리는 독백체로 그의 성경험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것은 빅토리아와 베티에 대한 얘기다. 베티는 클라이브가 떠나자 그녀 혼자 감당이 안 된다고 걱정한다. 그녀는 두려운 것이다. 마틴은 빅토리아에게 그녀의 딜레마에서 구해주려 맨체스터에 직장을 권유해보기도 하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그의 구혼은 실제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기보다 얼마나 이해심이 깊은지 만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린은 빅토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린은 영국군인 그녀의 오빠가 오늘 아침 아일랜드의 Belfast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밝힌다. 게리는 에드워드에게 그들의 관계가 싫증난다고 말한다, 이유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너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게리는 그들이 같이 사는 아파트에서 나오겠다고 말한다. 에드워드는 그의 동생에게 반해버리고, 가슴을 만지는데 그녀는 막지 않는다.
늦여름의 오후다. 린, 에드워드와 빅토리아는 이제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같이 산다. 베티는 도착해 그녀가 병원의 receptionist가 되었고, 그 직업에 만족한다고 얘기한다. 베티, 린과 빅토리아가 떠난다. 게리가 도착한다. 에드워드는 그가 이제 실직했고 새 가정에 있다고 한다. 그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식사를 준비한다. 그들이 떠나자, 베티는 돌아와 그녀의 오르가즘에 대해 얘기한다. 빅토리아는 그녀가 맨체스터로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그녀가 떠나자, 베티는 게리와 친구가 되어 그를 저녁에 초대한다. 그녀는 그녀의 두 아들과 게리 모두 게이인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걱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클라이브는 1막이후 처음 출현해 베티에게 예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또한 대영제국의 패망에 대해 비탄한다. 끝내, 1막에서의 베티가 등장하고, 그녀와 베티는 서로에게 포옹한다.

 

 

 

 

작가의 말
'클라우드 나인'(Cloud 9)은 1979년 조인트 스탁 연극그룹을 위해 씌어졌다. 나는 이들과 이미 그 전에도 함께 작업했으며, (1976년 막스 스태포드 클락 연출의 「버킹엄셔에 내려 비치는 햇살」(Light in Buckinghamshire)) 그 이후에도 함께 일했다. [1983년 레스 워터스 연출의 「늪지」(Fen)]
조인트 스탁은 1974년 막스 스태포드 클락, 윌리엄 가스켈, 데이빗 해어, 데이빗 오킨이 설립했다. 배우들은 많은 사람들이 대여섯 편의 작품에 계속 같이 출연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함께 일하는 상주 단원은 아니었다. 극단은 경우에 따라서 이미 쓰여진 작품을 공연하기도 하고 [1983년 호와드 바커의 「승리」(Victory), 작가 없이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1976년 「어제의 뉴스」 (yesterday's News), 1981년 「낙관적 돌진」 (An Optimistic Thrust).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법은 작가. 연출가. 배우들이 한 주제를 연구 토론하는 3~4 주간의 워크숍을 가지는 것이다. [주제는 책에서 가끔 얻는데. 1975년 데이빗 해어의「판 세이헌」(Fan Sahen), 1978년 스티븐 로우의 「넝마바지를 입은 인류 박애자」(Ragged Trousered Phihnthrcpists)의 경우가 그렇다.]
작가는 그런 후 약 10주 동안의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다. 그리고는 6주간의 리허설 기간이 주어지는데 이때 작가는 대본을 수정하고 극단과 전문적인 회의를 한다. 그 후 작품은 12주 동안 공연된다. 4주는 순회공연. 4주는 런던 공연, 다시 4주는 순회공연을 한다.
「클라우드 나인」의 워크숍을 시작할 때 나는 막스 스태포드 클락에게 그 출발점으로서 어떤 책이 아니라 단순히 '성의 정치학'을 제안했다. 이별 신경 쓰이지 않는 일반적 주제는 곧 특별하게 되었다. 우리는 배우들의 연기 경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적인 경력을 같이 고려하여 극단을 구성했다.「버킹엄셔…」 를 할 때 워크숍은 우리와 동떨어진 역사적 시기의 연구와 그 시대를 어떻게 우리와 연결시키는가 하는 데 집중되었다. 반면 「클라우드 나인」의 워크숍은 우리로부터 출발하여 점점 더 일반적인 내용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그리고 나는 배우들과 떨어져서 작품을 썼다. 처음에 난 2막에서처럼 모든 사건이 현재에 일어나는 것으로 설정했다. 성적인 억압과 평행하는 식민 제국주의의 아이디어는, 이 생각은 주네로부터 촉발되었는데, 워크숍 동안에는 가볍게 건드려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식민주의적 배경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아주 빠르게 제자리를 잡았다. 극중 인물은 극단의 누구도 그 모델로 삼고 있진 않았지만 작품은 우리들 모두의 경험을 깊이 끌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워크숍이 없었더라면 작품은 결코 씌어 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극단에는 흑인이 없었는데 이것이 조슈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토록 소외되어 있고 백인이 원하는 대로 되려는 열망이 그토록 강하다는 생각을 내게 불어 넣었다. 그래서 조슈아는 백인이 연기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베티도 그녀가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경심이라곤 조슈아가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경심보다도 더 낮았고, 남자가 원하는 그대로 되려는 여성이기에 남자가 연기하도록 했다. 여성이 연기하는 에드워드는 여성 역을 소년들이 해온 영국 전통을 따른 것이다. (예를 들면 피터 팬처럼) 반대로 남자가 연기하는 캐씨는 이 전통을 단순히 뒤집은 것이다. 물론 이 두 경우 우리 사회가 어린 소년 소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을 그들이 얼마만큼 소화하느냐에 따라이 뒤집기는 빛날 것이다.
초연에서 이중 배역은 클라이브-캐씨. 베티-에드워드, 에드워드-베티’ 모드-빅토리아. 엘렌/손더스 부인-린, 조슈아-게리. 해리-마틴이었다. 런던 공연은 로열코트 극장에서 있었고. 1년 후, 1980년. 로열코트와 조인트 스탁은 막스 스태포드 클락과 레스 워터스의 연출로 작품을 재공연 했다. 이때 출연진은 모두 바뀌었는데 클라이브-에드워드. 베티-게리, 에드워드-빅토리아. 모드-린, 엘렌/손더스 부인-베티. 조슈아-캐씨, 그리고 해리-마틴으로 이중 배역을 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새로 바뀐 연기자들에게 그 배역이 어울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운 이중 배역은 새로운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클라이브-캐씨. 베티-에드워드, 에드워드-베티의 관계가 약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바뀐 배역은 이 부분에서 흥미 있는 강조를 만들어 주었다. 반면에 베티-게리의 관계는 베티에게 위험해지는 기회를 주었다. 두 번째 배역진에는 같은 쌍쌍이 등장한다.. 클라이브와 베티는 에드워드와 게리가 되고, 에드워드와 해리는 빅토리아와 마틴이 된다. 그래서 늘 최선의 방법은 없으며 다양하고 흥미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이클 스튜어트는 두 번째 공연을 보았고. 토미 튠을 연출로 기용하여 작품을 제작해 뉴욕의 드리스 극장(지금은 루실 로텔 극장)에서 공연했다. 우리는 텍스트의 두세 가지를 고쳤다. 주로 1막 3장에서 몇 개의 삭제. 전(前) 대본의 대사 몇 개를 복원, 1막의 인물들이 2막에 등장할 때 약간의 수정을 하였다. 그리고 유일한 구성의 변화는 원래 앞부분에 나오던 베티의 모놀로그를 게리와의 장면 다음, 바로 그 장면이 끝나기 직전으로 옮긴 것이다. 나는 튠과의 작업이 재미있었으며 색다른 것들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텍스트를 출판하여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뉴욕 공연의 종결에는 매력 있는 부분이 많으며, 정서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베티의 자아 발견으로 극을 맺는 것보다는 베티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꾀하는 첫 번째 시도까지 그녀가 움직여 나아가는 것으로 극을 끝내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그 모놀로그를 원래의 자리에 두었다. 그 밖에도 작은 수정들이 있다. 2막 3장 끝의 원래의 노래(클라우드 나인 노래)는 삭제되었고 극의 마지막은 새로운 노래로 대체되었으며 단원들이 부르지 않도록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노래. "소년의 가장 좋은 친구”는 1막 3장의 끝 부분에서 잘렸다. 캐씨는 공을 튀기고 있는 게 아니었고 원래 그네를 타고 있었다. 이 출판 본을 위해서 나는 뉴욕 공연에서 바뀌어졌던 어떤 부분들은 그대로 두었으며 또 어떤 부분들은 초연 때의 그대로를 살렸다. 나는 두 개의 공연을 다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취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가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고 나만큼 작품에 가깝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클라우드 나인」: 성의 정치학 - 식민지 지배와 남성 지배
독일 작가 베레나 슈테판은 그녀의 소설 「허물벗기」에서 인류최초의 식민지는 여성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장 주네도 그의 「도둑 일기」에서 동성애 관계의 성의 지배와 종속을 말하고 있는데 이성애 관계에서처럼 남성 역할의 남자가 여성 역할의 남자를 지배한다고 했다. 이 두 작가를 떠올리게 되는 「클라우드 나인」은 백인의 흑인 원주민 식민지 지배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로 빗대어 말하고 있는 극이다. 처칠도 장 주네로부터 힌트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 이 극의 주제는 '성의 정치학' (politics of sex) 이다.
「비네가 탐」과는 달리 「클라우드 나인」의 어조는 소극적(farce)이다. 1막에서 인물들은 과장되어 그려져 있고 또 성역할을 바꿔서 연기하기 때문에 극의 시작은 즐거운 희극적 혼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는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소극(farce)적 설정이 더 적절하다. 그렇다고 해서 극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극에서 다루는 성의 지배 관계는 거침없고 솔직하다. 아직 우리에게는 금기시되어 있는 동성애, 그리고 형제 자매간의 근친애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하며 지배나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서의 성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클라우드 나인'의 뜻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아홉 번째 구름 위'라고나 할까? 마치 단테가 그의 「신곡」에서 아홉 번째 천국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하늘 위 구름도 층이 있다면 '클라우드 나인'은 9층 째의 구름쯤이나 될른 지. 그러나 제목이 이런 표면적 의미만을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이 말에는 궁극적으로 '성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클라우드 나인'은 성적 극치감 (오르가즘)을 나타내는 은어이기 때문이다. 남자 만의 일방통행으로 남자만이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불평등이며 (흔히 여자의 성적 욕망, 요구, 극치감은 무시된 채) 그것은 동성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성적 극치감인 클라우드 나인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주어진 것이며 또 서로 같이 누려야 하는 것이지 누가 일방적으로 독점하거나 절대로 지배의 수단과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제목에는 담겨 있다.
이 극의 제목을 이렇게 단 배경이 재미있다. 처칠이 단원들과 워크숍 리허설을 하는 그 극장에는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늘 남편에게 매를 맞는 둥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성은 중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남편과의 사이에서 클라우드 나인을 느끼고는 "우린 요새 클라우드 나인 위에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하며 생활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클라우드 나인'이야말로 성의 지배와 종속을 다루는 자신의 작품에 가장 적당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여 즉각 채택했다고 한다.
영국령 아프리카 식민지의 어느 곳에서 막이 열리는 1막은 부부 사이의 이성애가 강조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사랑의 관계로 인정된다. 즉 이 공간은 가부장 제도가 숨 막히게 모든 것 위에 군림. 지배 하고 있는 곳이다. 클라이브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주인으로. 그리고 식민지 종주국의 총독으로서 이곳을 다스린다. 당연히 여성들의 자리는 위축, 종속되어 노예와 같다. 베티는 그와의 관계에서 행복할 수 없고. 어린 아들 에드워드도 불안하다. 딸인 캐씨는 심지어 이리저리 던져지는 인형으로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는 인격 자체가 없는 여성의 존재 위치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동성애자인 개리는 질병에 걸린 상태, 혹은 나면서부터 불구인 상태로 묘사되고 있으며 동성애는 치욕과 범죄로 여겨진다. 클라이브는 그 치료책으로 결혼을 권한다. 그러나 그가 결혼한 상대는 가정교사 엘렌으로 여자 동성애자이다. 1막의 희극적 분위기는 희극의 구성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해리와 베티의 비밀 사랑이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가 관객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다른 불안한 상황이 계속 끼어든다. 원주민들의 저항 움직임이라든가, 해리와 어린 에드워드와의 관계, 해리와 하인 조슈아와의 관계. 엘렌의 베티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 그리고 클라이브와 손더스 부인의 혼외정사 등이 그렇다. 그러다가 1막은 희극의 전형적 결말인 결혼으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피엔딩은 아니다. 오히려. 조슈아가 클라이브를 총으로 쏘는 것과 해리와 엘렌의 결혼은 이 억압적 가부장 사회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라고 할 것이다.
2막은 영국 런던이 그 무대이며 시간적으로는 100년이 지난 오늘날이다. 그러나 인물들은 25년 정도만 나이를 먹었다. 빅토리아와 에드워드는 성인이 되었고 베티는 초로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인물. 빅토리아의 남편 마틴, 빅토리아의 여자 친구 린, 빅토리아의 아들 타미, 린의 딸 캐씨. 그리고 에드워드의 남자 친구 게리가 등장한다. 현대 사회로 옮겨 오면서 1막의 억압과 금기는 많이 풀린다. 동성애도 자유롭고 남녀 간의 사랑도 자유로운 듯하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해방은 아니며 여전히 노력과 실천이 요구된다. 2막은 인물들이 성과 자유의 조화를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실천해 나가는지를 펼쳐 보여 준다.
1막과 2막의 세계는 무척 다른 세계이긴 하지만 이 두 세계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가상적 세계는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1막은 식민지 원주민의 폭동이 늘 잠재적 위협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불안한 북소리로 암시된다. 2막에서 이 불안과 공포는 공원의 어느 한구석에 존재하는 '죽은 손' 갱단의 위협이다. 캐씨를 때리고 여자 아이라고 비웃으며 돈과 아이스크림을 뺏어가는 세력이다. 그런데 원주민의 북소리는 주변부의 저항 세력으로 가부장 체제의 전복을 예견하는 자유와 독립을 위한、희망을 품은 북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2막의 '죽은 손'의 폭력은 사랑과 평화를 파괴하는 어두운 힘.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여성을 다시 위협하여 지배하려는, 불길하고 정당하지 못한 음모이다.

 

 


* 인물들
클라이브는 앞서 소개한 대로 1막의 통치자이며 지배자이다. 그 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만, 한편으로는 어둡고 무서운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긴 해도 그에게 여성은 단지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서는 베티 같은 순종적인 여성이 이상적인 여성이지만, 섹스의 파트너로서는 '놀라운 정신'인 손더스가 매력적이고 도전적이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가부장 사회 남성들의 보편적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1막의 끝에 그를 살해하는 인물은 조슈아인데 극적인 효과로는 아주 적절한 인물선택이다. 조슈아는 식민지 원주민 흑인으로 클라이브의 하인이다. 그는 억압과 차별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백인의 가치를 내면화시키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인간이다. 결국 스스로 이 왜곡된 정체성을 인식하는 순간 그는 가장 충성을 바치던 클라이브를 쏘게 된다. 흑인에다 식민지 원주민이고 하인이지만 조슈아는 남자 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하인이고 흑인이라도 여성인 백인 안주인 베티를 무시하고 깔본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어리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조슈아는 그의 권위에 복종한다. 아마 이런 태도도 백인 남자로부터 배운 것이거나. 혹은 남자의 무의식에 내재된 우월 의식일 것이다.
베티는 가부장 체제에 가장 성공적으로 자신을 적응시키고 있는 훌륭한 아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혼란에 빠져 있다. 클라이브를 속이는 데도 철저하지 못하며. 해리를 사랑하지만 그와 도망을 치지도 못한다. 엘렌이 사랑을 고백해도 그것을 그저 우정 정도로 생각한다. 또 아직도 어머니 모드의 깊은 영향력 속에 있다. 모드는 가부장의 모든 남성 중심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것 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주입된 것이기도 하다. 아마 베티의 혼란 은 어머니로부터의 교육과 자신이 원하는 것의 불일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흐름의 맥은 베티의 독립 - 심리적. 경제적. 성적 독립과 홀로 서기이다. 1막에서 갈피를 잡지 못 하던 베티는 2막에서 드디어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언제나 그녀를 응시해 왔던 시선 - 남편과 어머니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자식들의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독립된 개체로서 함께 사는 공동체를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도 지금까지 가족이라는 울을 벗어나. 가족 외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클라이브 지배체제에서 가장 큰 반작용이 조슈아가 주인이자 아버지격인 클라이브에게 총을 겨눈 것이라면, 에드워드는 또 다른 형태의 반작용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힘들다는 그의 고백은 과장이 아니다. 그는 가부장 사회의 성공한 강한 남자인 클라이브라는 모델을 따르기에는 연약하다. 그는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며 남성들의 공격성을 혐오한다. 그는 어릴 때 탐험가 해리를 따르며 그와 성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가 동성애자가 되는 배경에는 해리와의 체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아마 그의 근본적 성 향과 여자가 되고 싶은 소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가부장적 억압이 남성에게도 역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에드워드를 통해서 볼 수 있다.
2막의 에드워드는 변화된 세상의 새로운 타입의 남자로 보인다. 그는 성적으로 동성애자이다가 여성과 관계를 맺는 양성적인 인간이 되어 간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과의 관계에서 가부장적인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남자로 역할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부드러움과 수동성을 그대로 노출하는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역할 한다. 그는 누나인 빅토리아와 빅토리아의 애인 린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성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낮 동안에는 빅토리아와 린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림을 한다. 이것이 에드워드가 찾은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형태의 생활이고 그 속에서 그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다. 이것은 애인인 게리와 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관계에서 성은 지배와 종속의 수단이었고 그들은 불가피하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와 빅토리아의 관계는 근친혼인데 문명화된 인류가 가장 금기시해 오는 터부다. 처칠은 의도적으로 성에 대한 마지막 금기마저 깨버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도 그들이 남매라든가, 근친 성관계라는 비도덕성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이루어 가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형태에 맞춰진다. 베티가 큰 집을 사서 다함께 살자고 제안할 때 딸 빅토리아는 어머니와 살기 싫다고 반대한다.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지배하는 그 강압적 모녀 관계 - 그녀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베티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 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린이 이때 적절한 조언을 하게 된다. 어머니로 보지 말고 그냥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함께 살게 된다.
이처럼 인물들은 사회나 가족이 주는 억압과 금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며. 가장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나가며 행복을 추구한다. 베티 역시 남편이나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금지했던 자위행위를 다시 함으로써 성적으로도 어머니로부터의 심리적 억압을 극복한다. 또 이 성적인 행위는 남편에 대한 마지막 의존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이리하여 베티는 자립과 자존의 실천적 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리 배이글리는 몇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1막의 인물들이 거의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라면 해리도 당시 식민지에서 탐험과 모험을 즐긴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한 인물로 보인다. 특히 유명한 인물이면서 성적으로는 동성애였던 남자들로 스캔들을 일으켰던 사람들. 오스카 와일드나 앙드레 지드처럼 해리도 동성애자다. 그는 거친 탐험 생활을 즐기지만 시도 쓰고, 피아노도 치는 문화적이며 섬세한 면도 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든지, 흑인 하인 조슈아를 성적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때의 성도 연령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해리가 지배적인 입장에 서있다. 알 수 없는 것은 이런 그가 베티를 마음의 연인으로 생각하며 그녀와의 사이에 밀고 당기는 긴장된,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점이다. 해리는 겉으로는 강한 남자이지만 실제로는 혼란의 인물이다. 그는 클라이브의 말을 오해하여 그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동성애자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클라이브가 그 점에 대해 비난하고 질책하자 그 말에 수긍하고 자신의 오래된 죄책감을 고백하는 것이다. 왜 자신의 동성애에 대해 당당할 수 없는지? 클라이브는 손더스 부인과의 외도에 얼마나 당당한가? 해리와 키스한 베티를 추궁할 때도 그는 자신의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하등의 이상한 점도 인식하지 못한다. 해리가 자신의 동성애를 질병이라고 고백하며 클라이브의 결혼 권유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해리의 동성애가 가부장 체제의 가치관을 뛰어넘은 자존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은 가부장 남성상의 왜곡된 형태임을 알게 한다. 그와 엘렌의 결혼은 클라이브 연출의 우스꽝스러운 연극(허구)이 되는데 이 결혼은 그 연출자가 살해됨과 더불어 클라이브 체제가 와해되는 전주곡이 된다.
모드는 흔히 볼 수 있는 가부장 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여성으로 남성의 가치관을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다. 즉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의 천사'로서의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여성상은 사실 남자에 의해 만들어져 주입, 세뇌된 것이다. 딸인 베티에게 늘 이 여성상을 강조한다. 자신도 어머니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 교육은 딸을 또 하나의 전형 화된 여성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그것은 가부장 체제를 견고하게 하고 존속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손더스 부인은 특별하다. 결혼을 거부하지만 성적 즐거움에는 적극적인 독립적 여성이다. 남자처럼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총을 가지고 있으며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긴다. 모드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의 자유와 독립은 그 시대 뛰어난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개인적인 호사가적 취미와 스타일에 그치고 만다. 처칠의 「최고의 여성들」에 나오는 19세기의 여행가인 실제 인물 엘리자베스 버드는 당시 보통 여성들이 꿈도 꾸지 못한 세계 여행을 몇 차례 했던 인물이지만 그녀의 자유와 경험은 개인 적인 것으로 그치고 만다. 동 시대 다른 여성의 불평등하고 억압된 상황과 처지를 읽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 역시 버드에게는 그 여성의 개인적인 상황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분명 손더스는 엘리자베스 버드와 닮았다. 버드보다 더 용감하고 더 대담하다. 버드의 희화화된 모습이 손더스일 것이다. 그는 분명 식민지에서 튀는 여성이지만 위대하다거나 존경스럽다는 이미지와 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우스꽝스러우며 또 주위 인물들에게도 그렇게 대접받고 있다. 엘렌은 빅토리아 시대의 부유층 가정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원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교사이다. 해리와 엘렌 두 사람은 클라이브 집안의 외부 인물로 클라이브와 베티를 부각시키고 극의 액션을 진행시키는 기능을 해준다. 엘렌의 결혼 승낙은 즉흥적이다. 그녀는 베티를 사랑하지만 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1막에서 인형으로 나오는 빅토리아는 2막에서는 주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이고 공부도 많이 했다. 맨체스터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사는 곳을 옮겨야 되는 문제를 놓고 남편 마틴과 약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일과 육아는 이 해방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더 큰 책임을、요구한다. 더구나 아내의 직장지로 이사를 해야 하는 문제는 가족 내에 남편의 그것과는 다른 비중을 가져온다. 빅토리아는 린에게 "마틴은 왜 마누라가 되어 날 따라오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털어 놓는다. 마틴은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아내를 따라 맨체스터로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꼭 런던에 살아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또 마틴 부부에게는 성 문제도 있음이 밝혀진다. 마틴은 아내에게 반복적인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마틴은 그 이유를 아내 빅토리아가 자신을 아직도 지배적인 남편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자신은 실제 그렇지 않은데 단지 빅토리아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며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또 마틴은 빅토리아가 여성 해방이니 자유니 부르짖지만 실제로 아내가 아직은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과 아들을 두고 혼자 맨체스터로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는 린과 에드워드와 함께 살게 된다. 마틴은 따로 살게 되지만 빅토리아의 새 가족과는 열려있는 상태로 아이들을 서로 돌본다.
마틴은 클라이브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나게 변화된 새로운 남성이다. 빅토리아의 부재 동안 아들을 맡아 키우겠다고 제의한다든지. 빅토리아의 성적 만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든지, 마지막으로 빅토리아의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틴이 상당히 진화되고 해방된 남성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과도기적인 남성이다. 그것은 빅토리아를 따라 거주지를 옮기기 에는 끝내 자발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빅토리아가 "그와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섹스도 불가능" 한 이유이다. 아직도 그에게는 여성을 지배하려는 수컷의 본능적 혹은 학습된 우월의식이 깊이 잠재되어 있다. 마틴이 아무리 해방된 남자로 자처한다 해도 기득권을 누리는 남자로서 이 점을 인식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불만을 모두 성적인 것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린이 자기는 남자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빅토리아는 "산업 혁명 이후로 인간의 학습 행동이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남자를 이 해해야 된다고 가르쳐 주는데 이 말은 빅토리아가 남성(마틴)의 학습되고 전수된 우월의식을 잘 알고 있음을 말해 준다.
린은 남편과 이혼하고 딸 캐씨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빅토리아와 자주 만나며 결혼 생활, 자녀 양육. 직장. 남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가까운 사이이다. 린과 빅토리아는 이런 문제에 대해 서로 도움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빅토리아는 린에게 주로 여성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녀 교육 - 캐씨의 옷차림, 장난감의 선택. 그리고 버릇들이기 등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빅토리아는 대신 린으로부터 남성과의 관계, 성에 대한 태도에 대해 도움을 받는다. 두 사람의 친밀성은 자연스럽게 동성애로 발전된다. 물론 린이 적극적이다. 린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히며 성관계를 제의한다. 린과 빅토리아의 사랑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닌 평등한 것으로 보인다. 빅토리아는、처음부터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마틴과의 사이에서 느낄 수 없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관계에 호감을 가진다. 남성이 지배적이 되고 마는 이성애와 이들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은 빅토리아의 일련의 질문에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넌 내가 맨체스터로 가도 날 사랑할 거니?”로 시작하는데 안데스 산맥에 원정 등반을 가도. 이가 다 빠져도. 다른 사람 10명을 사랑해도, 자신을 사랑할 거냐는 빅토리아의 질문에 린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마지막 질문에는 그 10명과 자신도 사랑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빅토리아가 자신이 남편에게 덜 종속적인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린과의 관계에서 점점 평등의 의미를 터득해 나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여신들을 위한제사(祭祀): 2막3장
이 3장은 2막 전체에 끼어드는 극중극(劇中劇)이라고 할 수 있다. 여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에게 기원하는 이 장면은 여신이 우주의 대모신(大母神)이었던 먼 신화시대를 재현한다. 그러면서 이 극중극은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현재 상황과 이어진다.
한여름 밤의 공원에서 일어나는 3장은 이 세상 모든 여신들을 위한 제사의식이다. 빅토리아는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여제사장으로서 린과 에드워드를 앞에 두고 이 의식을 집전한다. 그녀는 고대 여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에게. "여성을 본래의 여성으로 돌려주시고, 여성들이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여성의 역사를 갖게 해주시고. 그리고 여성들이 될 수 없었던 여성으로 자신들을 만들어 달라고 기원한다.
3장에서 인물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나 언급하는 여신들은 고대 신화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간략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여신들은 빅토리아의 제문(祭文)이 말하듯, "여호와 이전에. 예수 이전에" 있었던 여신들이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의 남성신들 이전의 여신들로서 남성신들이 신전을 차지하고 여신들을 몰아낸 후 신전들을 불태워 없애 버리기 전에 존재했던 여신들이다. 즉 이들은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여신들인데 생명을 창조하고 이 우주를 관장했던, 성애, 풍요, 생명, 달의 여신들로서 위대한 모신(Magna Mater)이었다. 이들은 신화가 남신 중심이 되고, 달의 숭배보다 태양 숭배가 우위에 오고, 가부장화 되기 이전의 가장 중요한 여신들이다."
둘째는 이 여신들의 성생활에 대한 것인데 여신들의 애인은 아들이거나 오빠이다. 인닌, 인난나(수메르)는 이슈타르(바빌로니아)의 다른 이름이며 아프로디테(그리스), 베누스(로마)와 동일 신이다. 이슈타르의 애인은 그의 아들 타뮤즈이다. 베누스에게 사랑을 받은 아도니스는 일설에 의하면 여신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시스와 그녀의 연인인 오시리스는 남매 관계이다. 빅토리아는 여신의 남자로 아티스와 타뮤즈를 거론하는데. 아티스는 시벨레 여신의 사랑을 거절하고는 사자에게 찢겨 죽는다. 타뮤즈도 어머니 여신의 애인이었다가 그 어머니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죽음을 당하고 지옥으로 간다. 오시리스는 어머니가 아니라 동생인 세트에게 사지를 절단당하여 죽지만 누이이며 연인인 이시스에 의해 부활된다. 아티스와 타뮤즈 외에 아도니스도 베누스 여신과 관련이 있는 곰에게 사타구니를 찢기는데, 일설에는 아프로디테의 애인 아레스가 멧돼지로 변해 같은 방법으로 그를 죽인다고 전해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애인인 어머니 여신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게 되고 또 어머니에 의해 다시 부활되는데 이 부활 신화 부분은 여신의 생명력을 강하게 상징하고 있다. 이 신화는 곧 뒤이은 빅토리아의 다음 이야기와 연결된다. 여신이 선택한 남자는 왕이 되지만 그의 씨 내림 역할 - 남성은 오로지 수정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 이 끝나면 그 해의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생명의 비밀은 여신만이 알며 여신의 권력과 재산은 모계로 승계되고 세상은 모계사회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신을 모시는 사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헤로도투스도 언급하고 있는바, 여신을 모시는 사원에는 여 사제들이 있었고 이들은 사원을 찾아오는 남자들과 1년에 한 번씩 정해진 날 성교를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신성한 성으로서 고대 바빌로니아와 고린도 등의 소아시아에서. 이슈타르나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사원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이교적인 습속은 성경(고린도 전서) 에서는 강한 어조로 비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성속(聖俗)의 또 다른 형태는 다음과 같다. 여신의 사원에는 해마다 한 번씩 모든 여자들이 모여서 자기를 원하는 다른 남자들과 성교를 해야했다. 아름다운 여자들은 이 일이 쉬웠다. 자신을 원하는 남자들이 빨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못나고 흉한 여자들은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자체가 풍성한 여신의 생명력을 내 몸을 통해 이해하는 길이었고 또 자신을 닦는 길이기도 했다. 이 일은 다른 시각으로도 풀어볼 수 있는데, 싫은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여신을 위한 이기심의 극복이었고 자기를 내어주는 일종의 종교적 헌신이었다. 우리나라의 보살의 육보시와 비슷한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빅토리아, 린. 에드워드 이들의 제사는 여신의 사원에서 벌어졌던 성교처럼 곧 성적인 대축제로 발전한다. 마틴은 신전을 방문한 낯선 남자로 이들과 격렬한 애무에 빠진다. 그리고 나타나 는 또 하나의 남자 - 그는 지하세계에서 돌아온 타뮤즈고 오시리스다. 그는 섹스를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벨파스트에서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린의 남동생 빌이다. 신화는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제사는 죽음의 세계로부터 사자(死者)를 불러 낸 것이다.
「비네가 탐」과 「클라우드 나인」두 작품은 과거와 현대를 대비 시키는 작품이다. 「비네가 탐」은 과거에 묻혀 버린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파헤쳐 그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반면 「클라우드 나인」은 100년 전 빅토리아 시대 영국령 아프리카라는 가상적 과거를 보여 주면서 이들을 다시 현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전자는 노래를 이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무대에 올려놓고 있으며 후자는 1막과 2막이라는 시간적 흐름을 통해 그렇게 하고 있다.
「클라우드 나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작품은 가상적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려 보여 준다. 즉 2막의 사회는 20세기 말의 영국 런던의 모습과 무척 비슷하다. 하지만 동성애, 근친애, 새로운 가족 형태 등은. 극이 씌어진 79년의 시점에서 보면 그 때의 모습보다는 90년대 말인 오늘과 혹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를 앞당겨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우리 한국적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는 아직 1막의 끝 무렵쯤에 왔다고나 할까. 동성애를 비롯해 금기시되어 오던 성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90년대 들어 처음으로 시작되고, 여성들의 주체적 목소리도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도 남녀 분리, 불평등과 차별의 서릿발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성적으로도 '클라우드 나인'은 남녀 모두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함께 누리는 것이 아니고. 아직 일부 강한 남성들의 기득권 이며 전용이다. 그래서 「클라우드 나인」은 내게 자꾸 미래의 드라마로 읽힌다. 1막의 답답한 쇠사슬이 활짝 풀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성에서 평등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사랑하는, 그래서 행복한 그런 사회를 향해 2막은 가고 있다.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사회가 분명 우리의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처칠이 빅토리아를 통해 과거 여신 중심의 사회. 위대한 모계사회를 극 속에 불러 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지향해 갈 세계 가 바로 "여성이 본래의 여성이 되고. 여성이 역사를 가지고, 여성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그런 세계임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