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3개가 객석을 향하고 있는 여자 화장실. 변비녀가
바람난 남자에게 버림 받은 실연의 아픔을 못 이겨 자살하려고 한다.
변기를 뜯어가려 여 화장실에 침입한 자칭 미술품 수집가인 변기도둑이
변비녀의 사정을 알고는 돕자고 나선다.
이 와중에 설사녀가 등장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폭탄 같은 설사를
해대는데, 아뿔싸 그만 좌변기에 엉덩이가 끼여 버린다.
변기도둑과 변비녀가 힘을 합쳐 설사녀를 변기에서 빼내려 하지만
꽉 낀 엉덩이는 꿈쩍도 안한다.
2012 창작뮤지컬 대상 수상한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이 ‘샘(fountain)’이란 제목 아래 변기를 예술품으로 둔갑시킨 것에 착안했다고 한다. 주제는 변기도둑이 어린 시절 만난 변기요정의 노랫말에 함축돼 있다. “삶이란 평생 똥오줌을 만드는 과정, 사랑은 서로의 똥오줌을 받아들이는 것.” 변기도둑은 똥오줌을 몸 밖으로 빼내야 할 ‘독소’로, 변기는 독소를 군말 없이 받아내는 ‘사랑’의 상징으로 여긴다. 배설은 독소를 빼내 몸을 깨끗하게 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관계에서 받는 상처도 응어리진다는 점에서 심리적 똥오줌이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에게 상처를 군말 없이 끌어안을 변기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변비녀, 설사녀 같은 ‘배변불량자’들은 관계불량에 고심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화장실은 모순의 공간이다. 생리적 카타르시스의 공간이면서 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밀실이기 때문. 설사녀가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변기 속에 낳을 때 화장실의 칸막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그런 모순의 해소로 보인다.
뮤지컬 샘은 스토리가 단순한 상황과 인물만 제시된 상황희극이다. 화장실 유머를 기반으로 하되, 독백체의 대사, 레시타티브, 솔로, 아리아 이중창과 삼중창으로 연속되는 현대 오페라적인 음악구성이다. 특히 행동을 설명하는 언어적인 음악의 사용이 돋보인다. 똥을 싸는 아리아라든가 물과 울음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등. 표현주의적 음악이 이 극의 특징이다. 배우들의 연기양식은 독백체, 또는 돌출적인 행위가 주를 이룬다. 부조리한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들은 갑작스럽고 강렬하며, 때로는 몽환적인 아리아의 선율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모든 무대 위의 행위들은 일상성을 벗어난 낯선 모습들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어렵지 않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력이 있다. 낯선 풍경과 소리로 이루어진 무대에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것은 상황 속에 던져진 인물들의 소통에 대한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역시 일상성을 벗어난 뼈대만 남은 화장실 무대는 빈 공간에 푸른 빛과 영상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환상의 공간으로, 때로는 기억의 공간으로 해체되고 변화한다. 사실적인 풍경을 벗어난 화장실에서 일상적이지 못한 인물들이 펼치는 화장실 유머가 관객에게 리얼리티와 삶의 진실성을 던진다.
작가의 글 - 이채경
"아이가 변기에 버려졌다" 우연히 발견한 신문기사의 한 토막입니다. 십대 소녀가 임신 후 부모님께 들킬까봐 몰래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아이를 버린 이유는 구체적이었습니다. '엄마에게 혼날까봐'.
나는 문득 그 변기 속에 버려진 아이를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헛간에서 아기 예수를 구출한 것처럼, 똥 속에 뒤덮인 아이를 구출해야겠다는 생각. 누군가를 버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시선 한 곳의 차이일 뿐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것들을 똥처럼 버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쓰고 싶다는 작곡가와 작가의 강렬한 열망 속에 탄생했습니다. 똥을 싸며 아리아를 부르는 뮤지컬⋯말이 안 되는 말도 소통을 위한 필사적 대안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엔 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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