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어느 여름...
유명 극단의 극장 재개관 기념공연 개막이 시작되던 날의 일이다.
비극적인 끝 장면을 진한 감동으로 마감하고 드디어 커튼콜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선 여자가 무대로 등장해
무대 인사를 하는데…. 출연진들은 순간 당황한다.
하지만 이대로 첫 공연을 망칠 순 없다. 어떻게든 은근슬쩍 넘어 가야할 상황.
다들 겉으로는 모르는 척 마지막 단체 인사를 하려는 순간,
낯선 여자의 손을 잡은 여배우 하나가 비명 소리와 함께 실신해 버리고 만다.
관객이 돌아간 후, 무대 위에 모인 연출가와 배우들은 그 여자가 유령이었다는
여배우의 말은 믿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일 공연을 위해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다음날, 이번엔 마지막 장면에 뜬금없이 엉뚱한 인물이 불쑥 등장한다.
바로 어제의 그 여배우 유령이다. 배우들은 공연을 어떻게든 잘 끝내야한다는
생각에 겁에 질린 상태로 마지막 장면을 억지로 끌고 나간다.
덕분에 공연 내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급기야 역시나 커튼콜에까지 버젓이 등장하는 유령.
출연진들은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데….
극장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극장도 공연도 치명적인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한사코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주인공을 억지로 설득시켜
연출가는 마지막 남은 세 번의 공연을 단행시킨다.
순간순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는 여배우 유령의 돌발 연기를
수습하기도 바쁜데, 배우들은 잊어질 만하면 꼭 나타나는 취객 유령까지
감내해야할 상황에 더더욱 난감해진다.
이제, 어떻게든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모르게 마지막 공연의 커튼콜까지 달려야한다.
막이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유령과 연기해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달려야한다. 이 악물고!!
이 연극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나흘 전인 1950년 6월21일부터 닷새간 당시 국립극장으로 사용된 부민관(현재 태평로의 서울시의회 의사당)에서 있었던 허구의 연극 공연 안팎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판도라의 화실'이라는 비극적인 극중극으로부터 시작된다. 신파조의 극중극이 끝난 후 배우들의 커튼콜이 있게 되는 순간 갑자기 유령이 나타나 커튼콜에 참여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다음날의 이틀째 공연부터는 남녀 두 명의 유령이 극 중간에 나타나 극중극 배우들의 연기를 가로채는 일까지 벌어진다. 극중극의 연출 겸 배우인 세실과 그를 흠모하는 삼각관계의 여인들인 마리와 마타는 관객이 유령의 출현상황을 극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도록 즉흥연기와 함께 대본에 없는 대사를 하며 위기를 모면해 간다. 이 우스꽝스러운 극의 전개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배우들이 매일 느닷없는 유령의 무대출현으로 복장이 터지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반전과 배우들의 살 떨리는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커튼콜의 유령'은 이해제 작가 겸 연출의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유령과 친숙한 작가이다. 희곡작가로서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흉가에 볕들어라'나 '설공찬전'(채수 작ㆍ이해제 각본 및 연출)에서 귀신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쩌면 귀신 이야기는 모든 걸 가능하게끔 하는 판타지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진지한 소재의 연극을 웃음으로 꾸며내는데 능하다. 번역극들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웃음보따리 연극 '웃음의 대학'이나 '너와 함께라면' 등의 작품이 그의 손으로 빚어졌다. '커튼콜의 유령'은 이해제 작가 겸 연출의 귀신이야기와 웃음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극의 후반부에 들어가면 서서히 이 극이 추구하는 진지성이 드러난다. 무대에서의 연기에 욕심을 내는 유령들과 이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연극을 끌어나가려고 하는 배우들은 대립관계에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만 서로 정이 들고 만다. 배우들은 멋진 배우를 꿈꿨던 유령이 부민관을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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