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카미유는 남편 마크와 딸 뤼시, 아들 폴을 남겨둔 채
말없이 집을 떠난다.
남겨진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부재에 대해 계속 질문하며
일상을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점차 혼란과 슬픔, 고통, 그리움, 분노, 애증의 복잡한 심정들이
하나, 하나 드러난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까미유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데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수근대는 이웃사람들. 마크는 집을 옮기고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한다.
아직도 굳게 엄마를 믿는 폴을 제외하고 마크와 뤼시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왜 떠났을까? 결국 돌아왔을까? 끊임없이 현실과 상상이 교차된다.
마지막에 불명의 소문 같은 파편적인 말들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다.
전주곡, 즉흥곡, 1,2,3악장, 피날레로 이어지는 음악 악보처럼 구성된
새로운 스타일의 대본으로 여자, 어머니, 딸이라는 여성의 전형적인 역할
이미지의 틀을 깨는 새로운 여성상 탐색 작품이다.
내면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를 음악과 신체움직임을 접목하여 무대에
구현하여 가족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경계를 초월하여 시련 극복의 메카니즘과
상상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불행이 이어지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로 인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주제의 작품들을
접하는 것 만으로도 상실과 부재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연극)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의 글 - 클로딘 갈레아
카미유라는 여성 인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즉 남편과 두 자식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 상상하고 연출해놓은 시나리오 속에서, 그녀의 현실(일 어난 사건의 진실)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녀는 자신이 집을 떠난 거라고 지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가출이 남은 가족에게 야기한 것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 마크, 아들 폴, 딸 뤼시를 존재하게 만든다. 허구적인 그녀의 부재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카미유의 부재가 그들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구성을 무대에서 보게 될 것이고, 일종의 동네 소문 같은 코러스 덕분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음을 알게 해주는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 전까지 이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모든 건 카미유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희곡은 그녀가 광기 경계(미치기 직전)까지 간 상태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그녀는 미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돌아온다, 문턱을 넘는다, 상중(죽음을 떠나보내는)의 식을 치른다. 집은 비어있다. 그녀는 멀리서 돌아온다. 드디어 그녀는 자신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극은 여기서 멈춘다. 상반된 감정과 의심의 요소들이 포함된 속임수가 여러 면에서 작동하고 있다. 가장 예민한 것은 언어 영역이다. 또한 이탤릭체는 다른 식의 언어표현임을 알리고 있다. 나는 이것을 내적 목소리라고 부른다. 내적 목소리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서로 말하고 있는 것, 일어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내적 목소리는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 그런 것이다. 이때 등장인물들은 동요되어 깊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내적 목소리는 그들이 앞에 있 어도 다른 목소리로 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 거리 두기, 시야 바깥 영역을 표현한다. 이 영역은 공간, 지리 개념 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적 목소리는 정체성 혼란을 보여줄 수 있다. 카미유는 무대에서 신체를 가진 몸으로 육화된 것인가 아니면 몸은 그녀의 심리적인 현실인가? 바닷가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가? 피아노는 누가 치고 있는가? 게다가 이 작품에는 등퇴장을 알리는 공간 지시가 거의 없다. 배우들의 존재마저도 흔들린다. 무대 위에 그들이 있다고 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언어는 어떤 이야기의 진실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의 등장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리가 필요하다. 있는 어떤 세계 속을 자유롭게 순환시키면서 가능한 것들을 실험해볼 수 있겠다. 만일 피아노가 무대에 놓이게 된다면, 피아노는 투명한 것이면 더 좋겠다.
클로딘 갈레아의 희곡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의 첫 버전은 2002년 5월, 프랑스 '디종-부르고뉴 프릭시옹 CDN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되었으며 배우이자 연출가인 세실 베케스에 의해 처음 낭독공연으로 소개되었다. 2003년 출판사 에스파스에서 책이 출판된 이후 다시 수정판이 2017년, 2021년에 나왔다. 그리스어, 루마니아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첫 낭독 공연 이후 2004년 3월 12일, '코메디 프랑세즈' 스튜디오에서 에리크 제노베즈 연출로 낭독 공연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극장에서 낭독 공연으로 올라갔다. 2013년 라디오 방송 '프랑스 퀼튀르'에서 마그리트 가토 진행의 '픽션 아틀리에' 코너에서 낭독되었다. '코메디 프랑세즈' 2017~2018년, 2021~2022년 시즌 낭독공연 대상작으로 다시 선정되었으며, 2023년 9월 21일부터 10월 23일까지 '코메디 프랑세즈' 스튜디오에서 상 드린 니콜라 연출로 공연되었다. 그 외 프랑스 국내 공연으로는 2016년 '보카주 극장' 에서 샤를린 아레이 연출의 1인극으로, 2018/2019년 마 르세유에 있는 '투르스키 극장'에서 카트린 마르나스 연 출로, 2020년 라 뷔이에 있는 '극장 콩파니 드라코뮌 에서 베아트리스 봉파스 연출로 공연되었다. 해외에서 는 루마니아 '부쿠레스티 오데옹 극장'(2012), 라트비아 '레토니 극장'(2022)에서 공연되었다. 한국에서는 2023 년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여행자 극장'에서 낭독 공연 으로 처음 소개되었으며 2024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 장'에서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카티 라팽 연출로 초연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프랑스 감독 마티유 아말리크에 의해 <Serre-moi fort(세게 안아줘)>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 었다. 2021년에 칸 페스티벌 공식초청작으로 상영되어 '첫 칸 부분'에 선정되었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2021년 9 월 8일 일반에게 공개되어 2022년 세자르 최고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카미유 역을 맡은 여배우 비키 크리엡스는 최고 여배우연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홀드미 타이트(Hold Me Tight)>라는 제목으로 2021년부 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극적 특징
이 작품은 아주 섬세하고 내면적이다. 연대기적인 시간 흐름을 흩트리면서 다양한 목소리들(독백체, 내적 독백, 방백, 대화체, 노래, 시, 이웃 사람들의 소문들)을 통해 한 어머니의 한 여성의 한 인간의 수많은 생각과 방황을 보여 준다. 끊임없이 현실과 상상이 교차된다. 주 인공 카미유는 왜 떠났을까? 결국 돌아왔을까? 결국 누 가 사라진 것일까? 그녀? 세 사람? 누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인물들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이런 의혹 들이 서스펜스를 만들고, 끝에 가서야 그 이유가 밝혀진 다. 일반적인 지문은 없고 각 악장 소제목 아래 간혹 몇 줄의 상황 설명이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구 체적인 시간과 공간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시적이고 환 상적인, 그러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여러 다른 스타일의 서사가 들어 있고 작품 말미에 주된 인물이 아니라 코러스 같은 인물들이 말하는 파편적인 소문을 통해서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독특한 긴장을 유지한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벗어난 비시간적인 공간, 꿈의 영역, 기억과 상상의 굴곡 등으로 활짝 열려있다. 직접적인 목소리, 들려오는 목소리(Voix off) 사이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들이 서로 만난다. 클로딘 갈레아는 창작할 때 느낌을 주는 어떤 이미지들에 게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작품도 자신이 꾼 어떤 꿈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꿈속 이미지는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누군가의 손이었는데, 열려있던 그 문이 열리는 중이었는지 닫히는 중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이미지는 작품의 애매모호함, 불확실성과 상통한다. 그녀가 집에 돌아와 집안에서 문을 닫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새출발을 위해 집을 떠나면서 집 바깥에서 문을 닫고 있는 것인지 진실을 이중의 불확실함, 애매모호함 속에 두면서 작가는 열린 결말로 작품을 끝맺는다.
음악 형식을 빌린 희곡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는 소설을 주로 쓰던 클로딘 갈레아가 2002년에 처음 쓴 희곡이다. 전통적이고 사실주의적인 희곡의 문법을 벗어난,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독특한 스타일의 파편화된 글쓰기다. 악보처럼 음악적 인형식(전주곡, 즉흥곡, 1악장, 2악장, 3악장, 피날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 음악 형식 사 이사이에 4개의 즉흥곡이 들어있고, 악장마다 출발, 아침식사, 폴의 노래 등과 같은 작은 소제목이 삽입되어 있다. 이외에도 피아노, 슈베르트 소나타, 바흐, 쇼팽, 마 르타 아르헤리치, 2중주, 즉흥곡, 노래 등과 같은 음악 관련 인명과 단어들이 열거되어 있어 이 작품은 마치 희곡 자체가 음악이 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 끌로딘느 갈레아(Claudine Galea) 프랑스 극작가, 소설가, 청소년 문학가
1960년 마르세이유 출생으로 문학을 전공한 뒤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과 희곡, 방송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집필했다. 일간지 『라 마르세이예즈』를 비롯, 여러 문예지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이후 소설, 희곡, 방송극 극작에 전념한다. 2015년부터 스트라부르 국립극장과 2021년부터 낭테르 아망디에 극장의 전속 극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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