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수입이 신통치 않아 비평과 르포 등을
쓰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에릭 아서 블레어(필명 '조지 오웰')에게
어느 날 BBC 관계자가 찾아와 인도인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 제안한다. 인도 대학생을 동요시키려는 나치의 프로파간다(정치선전)에
맞서고자 인도국을 설치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중에, 인도에서 태어나
경찰로 근무한 경험도 있는 지식인인 에릭이 적임자라 판단했던 것이다.
에릭은 인도의 독립에 일조하려는 의도로 프로그램을 맡지만, 사실 국가방위라는
최우선 목표 아래 정보 통제와 검열 등을 거쳐 송출되는 BBC 방송 또한
또 하나의 '친(親)영국적'인 선전매체였다. 이에 BBC 내 영국인 직원과 인도인 직원
사이는 물론 인도인 직원들 간에도 미묘한 견해차가 생겨나고,
에릭은 이들 사이의 갈등과 타협을 위태롭게 오간다.
한편 방송국이 아닌 집에서도 에릭의 문학적 여정은 순탄치 않다. 남성의 필명으로
소설을 쓰는 여성인 캐서린이 때때로 에릭의 집으로 찾아와 암울한 시대에 대한
항의와 에릭의 작품의 한계에 대한 맹비판을 여성 관점에서 제기한다.
BBC 퇴사 후 아내 아일린의 조력과 응원 속에 열심히 써낸 <동물농장>이지만
접촉하는 출판사마다 거절당하기 일쑤다.
간신히 오랜 친구인 프레드릭의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작가와 작품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아일린은 이미 곁에 없다.
종전 직전 수술 중 사망한 아일린의 환상을 보며 에릭이 또 다른 걸작 《1984》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이 작품은 끝을 맺는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령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버마의 인도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며,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아, 접시닦이, 일용직 노동자, 가정교사 등을 전전하다 1933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출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한 경험은 오웰의 이후 삶 과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며, 오웰 자신도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줄 한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쓰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스즈키 아쓰토의 희곡 <조지 오웰-침묵의 소리>는 오웰의 그러한 삶과 작가적 태도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랑 속에서 저마다 다른 입장을 피력하는 주변 인물들에 맞닥뜨려 어떻게 부침을 겪고 심화되어 갔는지를 다룬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인 1940년 이후 7년간의 세월이 담겼으며, 그중에서도 오웰이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글을 쓰고 방송한 1941~1943년 동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등장인물 모두 실존했거나(오웰, 아내 아일린, BBC 동료 베뉴, 출판업자 프레드릭, 작가 캐서린) 허구라 할지라도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인물들(BBC 동료 부펜 조너선)이다.
이 작품의 주된 갈등 구조, 혹은 항변의 내용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연합국대 추축국의 단순 대립구도나 전쟁 초반의 불리한 전황을 뒤엎고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 측 승리에 기여한 영국 처칠 정부의 전시 정책에 그대로 포섭되지만은 않는 논리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첫째, 영국의 식민지인 채로 영국의 적(특히 지리적 위치상 일본)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 인도의 복잡할 수밖에 없는 속내와 입장이다. 영국을 돕는 일이, 적어도 영국의 동원에 거리낌 없이 응하는 일이 종전 후 인도의 독립을 앞당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당대 인도인들에게 있었다지만, 작중에서 종종 암시되듯 전망은 불투명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다음과 같은 말이 도움이 될 성싶다.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제국 열강의 적은 식민지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잠재적인 동맹군이기도 했다.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 등이 증언할 수 있듯 무자비한 식민주의를 보였던 일본조차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는 백인에 대항하는 비(非)백인의 투사로서 반(反)식민주의 세력에 호소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투쟁과 반파쇼 투쟁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조지 오웰-침묵의 소리>에서 이는 특히 BBC의 두 인도인 직원인 베뉴와 부펜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표출된다. 셰익스피어 연구자이기도 한 베뉴가 인도가 일본에 점령당하면 훨씬 더 참혹한 일이 벌어질 것을 염려할 때, 시인이기도 한 부펜은 이를 영국에 길들여진 '노예근성'이라 조소한다. 유럽에 인도인 편은 없다며 오히려 아시아의 유일한 제국 일본이 인도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부펜이 내비칠 때, 베뉴는 조선을 통치하는 일본이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고 조선인의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사실을 아느냐며 그에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대하지만 영국을 사랑해서 필명도 잉글랜드의 수호 성인이자 흔한 남성 이름인 '조지(George)'와 부모님 댁 근처의 강 이름 '오웰(Owell)'을 조합해 만든 에릭 아서 블레어에게 이들의 고민과 서로 다른 판단은 하나의 커다란 간극이요. 일종의 원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젠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의 이름으로는 책을 내기도, 그 책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쉽지 않은 시대, 작중 등장인물이자 실존인물인 영국 소설가 캐서린 버데킨은 실제 '머레이 콘스탄틴'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소설 <하켄크로이츠의 밤>을 썼다. 이는 나치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신성 독일제국을 건설한 어느 미래, 히틀러가 신으로 존경받고 남성 숭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여성은 모든 권리와 개성을 막는 탈당한 채 강제수용소에서 아이만 생산하는 존재로 전락해 있다는 섬뜩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담긴 디스토피아 SF소설로, 나치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키기도 전에 파시즘의 위험성과 파괴성을 꿰뚫어 봤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캐서린이 실제로 오웰 부부의 집을 드나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들이 동시대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작가 스즈키 아쓰토는 캐서린에게 다소 거친 육성을 부여하고 이로써 오웰 은 물론 오웰의 아내 아일린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쟁에 이성까지 동원되고 있음에도 남녀 간의 급여에 차이를 두는 영국사회를 비판하고 가사와 육아 부담 및 그로 인한 경력 단절과 자아실현 기회의 박탈은 오직 자신과 같은 여성의 몫이라고 강변하는 캐서린의 목소리를 영국 남성 오웰은 깊이 공감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 "BBC는 국영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이라는 작중 조너선의 대사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조지 오웰은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를 위하여 글을 쓰는 작가이지 정부의 지향과 방침을 그대로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에 대해 부펜은 "조지 오웰이 불발탄 같은 위험한 소설을 썼다고. 그 어느 출판 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고 원고는 돌려 까이기만 한다"라는 소문을 들었다 하고, 베뉴는 "지금 이 시기에 소비에트의 모순을 철저하게 까발린 소설이니까" 어디서도 출판을 꺼린다고 말한다. 실제 <동물농장>은 탈고 된 지 1년 반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는데,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절한 배경에는 전쟁 기간 사실상 동맹 관계라 할 수 있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을 자극하지 않고자 했던 영국정부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내부테러로 스탈린의 절대적 권위와 독재 권력을 공고화한 소비에트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서구 지식인들이 한동안 주목했던 사회 모델의 이상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폐기된 체제라는 것이 오웰의 생각이었고, 잘 알려져 있듯 <동물농장>은 그러한 스탈린 체제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우화였다. 요컨대 스즈키 아쓰토의 희곡은 당대 영국정부 아래서 충분히 제기되고 논의될 수 없었던 다음과 같은 소리(voice)를 되살리 내 오늘날의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1. 강대국들끼리의 전쟁에 식민지 인도가 무슨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선생이 인도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2. 남성들이 주도하는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다 한들 여성들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3. 나치만 물리치면 세계사에서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인류는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스즈키 아쓰토
1980년 도쿄 출생으로 게이오대학교 환경정보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2003년 극단 '인조(印象)-indian elephant'를 창단한 이래 2023년 현재 총 30회의 정기공연 극단 바깥에서도 다양한 작품에서 각색, 연출 등을 맡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 극단을 민간 비영리 단체로 법인화하고 2017년부터는 아동극 제작까지 활동 영역을 일본 전역은 물론 한국과 태국, 폴란드, 영국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다.
참고로 <조지 오웰-침묵의 소리>는 작가 스즈키 아쓰토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국가와 예술가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에 의해 희생된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며, <에리히 캐스트너- 지워진 이름> (2020년 12월), <후지타 쓰구하루- 하얀 어둠>(2021년 10월). <조지 오웰-침묵의 소리> (2022년 6월), <카렐 차페크-물의 발소리> (2022년 10월)로 이어진다. 물론 일본인 작가가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예술가의 삶과 활동에 대해 쓴 희곡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령 노기 모에기(野木萌)의 <다스 오케스터(Das Ochester)>는 나치 정권에 협력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를 모델로 하고 있다. 노기 모에기가 등장인물에 사람 이름이 아닌 '지휘', '선전', ' 로' 등의 병사를 부여해 익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적 이야기를 담아낸 데 비 해. 스즈키 아쓰토의 '국가와 예술가 시리즈'는 실제 이름을 사용해 역사적 맥락을 분명히 하고 그 구체적이 고핍절한 상황과 인물로부터 지금 시대에도 설득력을 갖는 스토리를 길어 올리는 차이가 있다. 예술은 시대의 이면과 모순과 억압과 고민을 증언하는 도구입과 동시에 찬양·미화·선전·선동 등의 힘을 가 신 양날의 검이기에 정치와는 어느 시대에나 모종의 긴장 속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조지 오웰- 침묵의 소리> 초연 이후 스즈키 아쓰토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이념과 현실로 찢어지는 괴로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 또한 '세계가 분열돼 가는 것에 맞서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이러한 바람에 우리는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아일린이 조지 오웰의 환상 속에 나타나 BBC의 시(詩) 소개 프로그램 '보이스'의 첫 방송 멘트를 상기시키며 한 말처럼. "당신, 자신이 했던 말 잊어 버렸어? 목소리를 남긴다고. 잦아드는 소리를. 침묵하고 있는 누군가의 소리를. 당신 자신의 가슴에 잠재된 소리를 당신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절대로 미래에 남지 않을 목소리..." 가 있음을 기억하고 재생함으로써 스즈키 아쓰토가 수행한 작업처럼, 당대에 발화될 수 없었던 '침묵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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