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번성했던 동네 금만동은 오늘도 풀 죽어 있다.
사람들은 다방에 앉아 로또대박을 꿈꾸며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고 건물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최준공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빈 점포들이 갈수록 늘고 있으니 속이 끓을 수밖에.
옛날부터 욕심 많고 탐심 많은 성정에 양에 차지 않는 현재 생활이
오죽할 것인가? 그런데 어느 날 금만동 일대에 초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일순 거리는 활기를 되찾는다.
제일 기뻐한 사람은 최준공. 특별 입주분양권 등으로 수십억의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으니 이 아니 기쁠손가. 다시 최준공의 천하가 온 것이다.
최준공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주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간이라도 빼줄 듯하다. 허나 행복도 잠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게 아니라
녹지공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최준공의 억장이 무너지는 구나.
이런 속도 모르고 최준공의 딸 활란은 콩나물박과 로맨스에 빠지고
망나니 자식은 사기행각을 벌인다.
동네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게 된 최준공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정계로 진출할 것을 선언한다.
그 첫걸음으로 상가번영회장에 출마한다. 하지만 최준공에게 도전하기 위하여
상가번영회장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있었으니 동네 ‘덜떨어진 천사’
금만동 호루라기 - 최준공 세력과 호루라기세력의 한판대결.
최준공은 선거에 승리하여 다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허물고, 부수고, 뚫고, 넓히고 했던 속에서 사라져 간 것이 어디 고향땅과 황톳길, 논밭, 산, 바다뿐이랴.공동체를 허물고 세운자리에 들어선 낯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 나름의 터전을 만들었지만 언제나 불안한 사람들. 이웃은 이익 앞에서 얼마나 찢어지기 쉬운 엷은 막인지. 공동체를 파괴하는 당대놀부에게 당하고 사는 당대흥부들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구원할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흥부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작가의 글
<신태평천하>를 쓰던 2005년은 전주 다가동 원룸에서 살던 때다.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15만원. 원래 17만원인데, 맨 위층(4층)인데다 도로를 접한 방이라서 2만원 깎아줬다. 7평 남짓한 방은 책상이며 침대, 냉장고, 옷장, 책장, 복사기 등으로 너저분하다. 우렁각시가 나왔다가도 앉을 자리가 없어서 다시 항아리로 들어갈 지경이다. 외풍도 심하다. 첫 겨울, 계획없이 보일러를 돌렸더니 넉 달 동안 쓴 가스비가 50만원도 넘게 나왔다. 도시가스와 LPG의 차이를 알지 못한 무지의 결과다. 바람이 불면 옥상에서 화장실용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모터보트를 탄 것처럼 요란하다. 좁은 도로에 주차된 차도 많아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다. 그래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베란다 문을 열고 비속어를 남발해야 한다. 다행히 비는 새지 않는다. 이 건물의 주인이 최소한 악덕건물주는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나를 쓸쓸하게 하는 건 좁고, 춥고, 시끄러운 따위가 아니다. 어 둠과 함께 적막에 잠기는 이 거리의 풍경이다. 시내 한 중심인 '영화 의 거리'와 '젊음의 거리'에서 불과 5분 거리지만, 이곳은 고요하고, 쓸쓸 하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 그나마 건물임대'라는 알림판이 붙지 않은 보석상과 미장원, 쌀집, 인쇄소 등도 해 떨어지기 무섭게 셔터를 내린다. 행인은 고사하고 멈춰선 차들도 자취를 감춘다. 기와를 얹은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지만 더 이상 밥 짓는 냄새를 담 밖으로 흘리지 않는다. 도시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도시에서 유배된 곳. 다가동의 밤은 처량하다. <신태평천하>의 배경으로 설정한 곳은 가상도시인 도산시 금만동이다. 그러나 전주시 다가동이나 태평동, 고사동, 경원동, 중앙동의 어느 곳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동문거리나 웨딩거리 어디쯤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인구밀집지역인 전주 서남부권일대에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이 벌어진다고 한다. 전주의 구도심은, 얼마나 더 외로워질까. 이 작품은 도창을 활용, 판소리와 탈놀이 등 다양한 형식이 한데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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