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오진 '가족오락관'

clint 2024. 7. 14. 14:22

 

 

 

 

 

아버지의 죽음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가족은 알 수 없는

불만과 패배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아들은 우연히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와 만나고,

자신들에 현실에 몸서리친다. 감추고 있던 분노를 표출한 아들은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 가해자를 살해하기로 한다.

그들의 첫 번째 살인계획은 딸에게 발각되지만 살인 자체는 비교적 쉽게

성공한다. 처음만 어렵다고 했던가. 이어 가족들은 딸 명주를 임신시킨

주유소 사장, 아들 명진을 괴롭히는 공장의 C조 반장,

엄마 주정에게 오럴 섹스를 강요한 손님 등을 함께 죽인다.

이쯤 되자 그들에게 살인은 하나의 오락이 된다.

TV뉴스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는 것도 잠시,

살인의 순간들을 기억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든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노래방으로 돌아온다.

살인의 성공을 축하하며 가족들은 노래를 부른다.

기쁘고 신나는 분위기로 시작했는데, 엄마의 노래는 어딘지 모르게 구슬프다.

아들 명진은 엄마를 희롱하고, 동생 명주를 마이크 줄로 목을 휘감는다. 

가족들은 사회를 향한 분노의 표출로 살인을 선택했는데,

결국 그들이 죽인 것은 자신들의 영혼이었다.

 

 

 

가족이 노래방에 모여 노래를 부른다. 신나게 몸을 힘들고, 악을 쓴다. 시끄러운 노래방에서 전화를 받은 엄마가 별안간 소리를 질러 분위기를 전환한다. “얘들아 병원 가자, 아빠 돌아가셨다.”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던 가족에게 불행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으로 '가족오락관'은 시작한다. '가족오락관'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위기에 빠진 가족이 주변 사람과 사회를 향한 분노를 살인으로 표출하고, 그 살인의 순간을 수다로 풀어낸 작품이다. 마치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에서 시아버지의 시체를 화장실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사람은 있다. '가족오락관'속 가족들은 다만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다. 관객들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그 뿐이다. 살인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그들은 가난하고, 비정규직이며, 희망이라곤 찾기 어렵다. 오히려 살인에 취해 병들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웃음과 공감 뒤 씁쓸함을 남긴다.

 

 

 

 

 

참신한 상상력, 재기발랄한 스토리 전개와 경쾌한 캐릭터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아울러 세상의 일그러진 구조에 대한 작가적 안목도 느껴진다. 놀이로서의 연극과 사회적 반영으로서의 연극. 이 신예는 그중에서도 재기발랄한 놀이 쪽에 좀 더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사회적 앵글로 들여다보면서, 우리 시대에 연극이 어떤 자리를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정답으로서의 ‘가족’이 존재해왔던 게 사실이다.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예쁘고 상냥한 엄마는 바로 그 가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이 연극은 막을 올리자마자 우리의 기억 속에 주입돼온 ‘가족’이라는 유리 집을 단숨에 허문다. 제목이 암시하듯, 살인은 어느덧 오락이다. 가족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킬킬거린다. 급기야 식물인간 할머니의 목을 조르고, 주정뱅이 할아버지의 소주에 약을 타는 파탄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가족오락관>이 살인을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 연극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들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보여주면서, 오늘의 우리를 둘러싼 비인간적 삶에 대해 씁쓸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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