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손정섭 '헤어아이롱'

clint 2021. 3. 7. 11:54

 

 

가격이 무지 싼 고지대 반 지하. 가운데 공동부엌과 공동 하수구를 두고 양쪽으로 1, 2호의 작은 방으로 된 다소 프라이버시가 방해되는 가옥에서 극이 시작된다. 1호에 살고 있는 상모. 그리고 2호에 새로 이사 오게 되는 미숙, 못 된 집구조로 인해 매번 다투게 되는데. 상모는 퇴직형사로 형사 시절, 아내가 살해되는 아픔을 당한 사람이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아껴 살며 돈을 모아 해외로 도주한 범인을 잡는 것. 미숙은 바람둥이 남편과 철부지 엄마 때문에 모든 것을 날린 후, 세상을 혐오하다가 미용에 눈을 뜬 사람이다. 좁은 공간에서 계속 다투던 두 사람. 상모 아내의 꿈이 미용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외로움에 지친 상모는 재혼식 흉내를 제안, 대가로 미숙은 자신의 헤어 아카데미 졸업작품전 헤어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미숙이 다니던 헤어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아카데미 졸업 작품전. 상모가 미숙의 헤어 모델로 나서 워킹을 시작하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음습한 지하,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이 찾아들 만한 장소로 적당한 공간이다.
공간의 폐쇄성이 상모, 미숙 두 인물의 삶의 틀을 규정짓고, 가끔씩 등장하는 핸드폰 통화가 외부 세상과의 연결 고리이지만 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열린 외부로 향해 있지 않고, 두 인물의 폐쇄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상모가 형사 후배들과 통화하거나 미숙이 어머니와 통화하며 그들이 ‘거기’ 있어야 하는 정황들을 구체화시킴과 동시에 또한 그들이 삶이 열린 곳을 지향하고 있지 못하고 지하 세계에 고착화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화려하고 유쾌한 장면으로는 역시 미숙이 상모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장면일 것이다. 주고받는 육성이 부끄러워 핸드폰을 통해 그 가까운 공간을 이어주는 사랑의 대화는 두 인물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향이 어떻게 전환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이 소근대는 대화는 매우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을 것 같지만, 어떤 특색이 있는 나라인지 일반인은 알기 힘든 남미의 나라 ‘에콰도르’의 느낌도 이 작품의 톤을 잡는데 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페루’라든가 ‘칠레’였어도 다를 것이다. 정서적 거리만큼 물리적 거리도 먼 남미의 나라들 중에서도 낯선 나라, 또한 한국어로 읽었을 때 ‘에/콰/도/르’는 묘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상모의 현실뿐 아니라 이 작품 전체의 느낌을 살려주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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