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이단적 화가 김명국.
그에게 동리 청년 광규의 안내로 한 청년이 찾아오며 극이 시작된다.
광대짓을 하며 돌아다니던 상구가 명국의 신필을 배우러 온 것.
명국에게는 이미 자연이라는 처녀 제자와 장님 영녀가 있다.
정형화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자 김명국,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모호하지 않다.
몸과 자존심 모두 피투성이가 되었던 병자호란 속에서 김명국은 정세를 꿰뚫어가며
임금을 향한 못된 말과 그림을 일삼는다.
치욕과도 같은 병자호란을 앞뒤로 하여 상구와 명국 간에 오가는 긴박한 대화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자연, 영녀, 광규의 미스터리들.
그러나 무엇보다 명국이 그려대는 ‘기려도’라는 그림 속 암호가 문제이다.
탈 기, 당나귀 려, 당나귀 타는 그림.
상구가 인조 임금의 은밀한 명을 받고 왔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배경에 드리워진 동시대 최대의 제도권 화가 맞수 이징...
이 작품의 중심축은 인조시대의 숙명적 라이벌 화가 김명국과 이징,
그리고 그림을 지극히 사랑했던 인조 임금과 그 추종파 상구다.
극의 마지막에서 드러나게 되는 삼각 배신과 ‘기려도’의 비밀....

김명국은 조선 인조 때의 화가이다. 김명국의 인적 사항이나 행적에 대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불과 몇 가지 이력밖에 없다. 심지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조차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처럼 그에 관한 기록이 박약한 것은 ‘환쟁이’를 천시하던 당시의 풍토를 감안하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며, 그 이상의 행적이나 화력(畵歷)이 있을 것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신품이라 했고 그를 신필이라 불렀다. 이런 김명국의 화력(畵歷)이 모티브가 되어 탄생한 연극 “나귀타는 박쥐”. 이 작품은 시대를 잘못 만나 조용히 사라지고 만 한 신필의 은폐된 저항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과 일화를 바탕으로 추측컨대 김명국은 교활한 지미 핸드릭스라고 할 수 있다. 오원 장승업이 천상에서 출발하여 다시 천상으로 갔다면, 김명국은 천상이 내린 천재였음에도 지상에 뿌리박고 버티었던 점. 그것이 지금까지 뻗쳐오는 김명국 그림의 근거이며, 뿌리를 건드릴 수 없는 자유의 기운일 것이다. 김명국에 대한 박약한 기록과 그의 자유분방한 기운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동기가 된 동시에 연출이 의도하는 실험성과 크게 맞닿아있다. 또한 텍스트를 무대화시켜가는 과정에서의 반전 의도는 원 대본의 일탈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나귀타는 박쥐’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연출가 역할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여타 화인들을 다룬 작품들은 그들의 예술성에 중심을 둔 반면 연극 “나귀타는 박쥐”는 화인 김명국의 예술성을 넘어서 예술이 사회에 활용되었던 숱한 과거들을 현재로 끌어내어 예술의 효용성과 사회참여에 대한 논의를 끌어낸다. 이는 연출이 의도하는 독특한 실험성과 크게 맞닿아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달과 소통의 원활함을 많이 고민하였으며 사실성과 서사성 중 어느 하나 고집하지 않았고 절충과 파격을 많이 요구하였다.

작가 : 손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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