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곡이 쓰인 시기는 지금부터 40년 전. 연극 속 시대 및 장소 배경은 해방 1년 후인 1946년과 정치적 혼란기인 1960년의 충청도 내 한 농촌. 작품이 그리는 것은 인습이라는 틀의 안팎에서 각기 다른 삶을 택한 시어머니, 며느리, 손녀 3대 여인들의 모습. 극 중 이들 여인의 사랑과 한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꽃상여.
내용은 그야말로 '고전'이다. 일본 점령기에 홀로 된 시어머니는 수절하며 산다. 기른 정이 듬뿍 든 양자가 일본군 군속으로 남양군도에서 근무하다 죽은 뒤 며느리는 "시어머니처럼 수절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남편의 유서를 전달하러 온 남편 동료와 서울로 떠난다. 엄마가 떠난 뒤 지주인 할머니와 남게 된 숙희는 소작농의 아들인 만득을 좋아하나 반상(班常)을 철저히 가리며 양반집 자제와 억지결혼시키려는 할머니의 등쌀에 못 견뎌 한다. 숙희는 죽음을 택하게 되고, 만득 역시 영혼결혼과 함께 숙희의 길을 따른다. 숙희는 결국 "꽃가마 타고 시집가서 꽃상여 타고 저승 간다"는 과거 한국 여인들이 내면으로 그렸던 압축된 삶을 동시에 실현한다.
신분의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여인들의 한이라는 진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작품은 시작부터 극의 분위기가 우울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가수 초인이 머리에 헤드폰을 낀 채 신세대풍의 노래를 흥겹게 노래하면서 막이 열리며 곧이어 동요나 어린이들의 놀이 몸짓이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런 이미지들은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의 애절한 춤사위와 중첩된다. 작품 속에서는 무용가 김소이의 역할이 크다. 그가 직접 추거나 안무한 춤이 자주 등장해 여인네 삶의 애환을 표현한다. 원작에는 없는 것으로 아들이 근무했던 남양군도의 원시적 몸짓과 바닷고기의 노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고기춤이 흥겹다.
무대 양옆의 네 군데에서 종종 배우들이 나와 의성법 기법의 소리를 낸다. 억제되지 않는 젊은 남녀 또는 남편을 잃은 며느리와 남편의 친구 간 애정을 표현하는 쓰르라미 소리도 있고 마을 어구에서 외지인을 보고 짖는 강아지 소리도 있다. 배우들은 자주 상어의 모습 등 의태법 기법의 몸짓도 한다.

동요나 옛 가요, 또는 소리도 풍성하다. 꽃상여로 상징되는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음악으로 풀어내고, 꽃가마 등으로 상징되는 삶의 기쁨을 춤으로 빚어냄으로써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들이 지금 세대에게는 진부한 듯한 느낌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연출된 것이 특징이다.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꽃상여나 죽은 아들을 위한 길닦이굿의 모습을 무대에서 재현해낸 것도 흥미롭다.
같은 배경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다. 노래, 춤, 몸짓, 소리, 생음악 연주, 영상 등 극 흐름에 보조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극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다. 내용의 이음새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구석들이 있다. 삶에 대한 여인네들의 긍정적인 자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시어머니의 느닷없이 요란스러운 춤은 어딘지 생뚱맞아 보인다.
국내의 고전 희곡에 대한 동시대적 느낌의 해석과 무대화 시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중장년 관객들에게는 아련히 간직한 기억의 흔적들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하는 무대다.

1972년에 국립극단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초연했을 때의 ‘작가의 말’은 다음과 같다.
흰 모래 언덕 모래 언덕 고운 기를 날리며 꽃상여가 간다
옛날 대전의 「동백시회」에서 동인으로 시를 썼을 때, 글벗 B형의 시 첫 구절이다. 나는 이 시를 좋아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전체 시는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흰 모래 언덕으로 고운 만장을 날리며 조용히 꽃상여가 가고, 그 꽃상여를 보내는 늙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그런 이미지였다.
단청으로 아로새긴 상여는 진정코 서러우리만큼 곱다. 게다가 고운 비단에 붓글씨로 고인에 대한 글을 새긴 만장을 앞세우고 요령을 울리며 상도꾼들의 만가(輪歌)도 구슬프게 행진하는 상여의 행렬은 화사한 한폭의 그림이다.
꽃가마를 타고 시집와서 꽃상여를 타고 저승 간다. 나의 고향에서는 여자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러므로 꽃가마를 타지 않은, 즉 시집가지 않은 여자는 여자로서 자격미달인 것이다. 따라서 처녀로 죽으면 상여로 출상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화사한 꽃상여의 이미지에다 이런 우리의 토속적인 습관이 곁들여져서 이 작품이 이루어졌다. 또한 그런 여자의 일생을 3대에 걸쳐 끈질기게 펼쳐본 여자의 역사이기도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우리의 토속적인 습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진드감치 지켜보고 왔다 그 결과 얻어진 귀중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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