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미현 '우리 면회 좀 할까요?'

clint 2018. 6. 10. 13:27

 

 

 

우리 면회 좀 할까요는 특유의 역설과 독특한 극작법으로 평단과 관객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윤미현 만의 특징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단막 희곡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18세 소녀, 대머리 노인, 굴뚝, 팬션 여자 등의 인물들과 상황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서우리만치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윤미현 작가는 가장 기대하고 있는 젊은 여류작가로 '주거문제'를 필두로 사회의 씁쓸한 이면을 블랙코미디 화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면회 좀 할까요?>의 배경은 밴댕이 마을. 내장이 워낙 작아서 속이 좁은 사람을 빗대는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 상징적인 마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등장인물들도 각각 '굴뚝' '18세 소녀' '펜션 여자' 등으로 지칭되는 것처럼 말이다무대는 간소하다. 아무래도 6개의 작품이 무대를 나누어 써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제약이 생긴다. <우리 면회 좀 할까요?>의 이야기는 밴댕이 마을에 위치한 한 펜션에서 시작된다. 펜션의 방을 무대 위에서 두 개로 나눴다. 별다른 장치 없이 그냥 테두리만 쳐 있고 침대를 두 개 놓은 형식. 영화 <도그빌> 같다. 소녀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프레임을 액자처럼 들고 서서 창문을 바라본다. 한두 장면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장면이 꽤 여러 번 등장한다. 창문으로 시체를 던지는 장면에서 이 프레임은 참으로 기발하게 사용되더라는. 아이디어가 훌륭했던 장면 만들기다. 독특한 사고관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일수록 이런 기법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18세 소녀'와 중년 남자 '굴뚝'이 밴댕이 마을의 펜션에 투숙한다. 교복에 더플코트를 입은 소녀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걱정하는 시어머니에게 참 별 걱정 다 한다는 듯이 "요즘은 다 동안이에요!"라고 말하는 며느리 '펜션 여자'의 대사 한 방이 연극 전체를 다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 커플은 원조교제가 아니라 노땅 교제라고 해야 할까.... 집은 129, 차는 벤츠를 타고 골프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며 호기심도 많고 남에게 지는 것도 싫은 돈 많은 집 소녀가, 섹스를 할 때 진짜로 '! ! !'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성인 남자를 시간당으로 구매한다다른 쪽 방에는 남녀 커플이 있다.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와 하려고 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여자는 남자와 펜션까지 왔으면서 하기를 거부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기로는 '18세 소녀''굴뚝'도 마찬가지. 한 번 하기 위해 밴댕이 마을과 펜션을 찾았으면서 '굴뚝'은 자신이 정관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버틴다. 수세미를 심었는데 파프리카가 나올 리는 없다나... 흙수저로 태어나서 되는 일 없이 굴러먹다가 전과자가 되고 10년 만에 출소했는데 물가가 10년 동안 하도 올라서 정관수술을 할 수가 없단다...

자신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 뻔한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은 알겠는데 그럼 밴댕이 마을은 왜 왔으며, 펜션은 왜 따라 들어온 거냐? 옆방에서 하자 말자로 끙끙대는 커플도 그렇다. 사랑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고민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그런 고민을 여기 와서 하는 거지?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에 대한 이유가 극 안에 설명될 필요는 없지만 이 두 커플들의 이야기는 구체화되지 않아 상황을 납득하기도 감정을 이입하기도 어려웠다. 사랑하지만 사는 게 문제라 동반자살을 하려고 밴댕이 마을을 찾아왔으나 죽기 직전에 한 번 하자 말자로 실랑이를 벌인다거나, 정관수술을 위해 돈을 벌러 펜션에 왔지만 막상 상대가 미성년임을 발견하여 망설이는 전과자라면 모를까....

시종일관 이야기는 어둡고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의 단면들을 건드린다. 그런 세상 속에서 결국 교도소가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라며 교도소를 예찬하는 '굴뚝'의 이야기는 참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다. '옆방 여자''옆방 남자'의 이야기는 좀 더 자세하게 다뤄졌으면 좋겠고 '경찰''과학수사대' 캐릭터 역시도 단선적이라 인물들이 낭비된 것 같은 느낌. 좋았던 건 두 개로 나뉜 방의 밖을 돌아다니는 '펜션여자' 일가뿐이다.

 

 

 

 

 

당선소감

너무나도 부족한 작품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태수 선생님, 최은옥 선생님, 유진월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저의 힘든 마음과 손을 집아주셨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홍창수 선생님 고맙습니다. 희곡을 한 번 써보면 어떻겠니? 라고 권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용기를 갖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글도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희곡을 쓸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과 배려가 있었기에 오늘 이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선생님 공연에 저를 참여시켜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희곡을 가르쳐주시고, 실제 공연에서도 제가 많은 걸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늘 이해해 주시는 홍창수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너무나 큽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십여 년 전쯤. 문예창작학과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저에게, 이 길을 가라고 하신 주용호 선생님. 십년 후의 너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던. 꼭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다독거려 주셨던 분. 제가 글을 쓰는 길에 맨 처음 문을 열어 주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가장 좋아히셨던 분, 나의 담임선생님이셨고 국어선생님이셨고 문예부 선생님이셨던 주용호 선생님 고맙습니다. 나의 모교에 계신 하일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늘 두 선생님께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때론 나도 한번쯤. 받아쓰기를 잘한 공책과 상장을 가지고 두 분의 선생님께 어린아이처럼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 너무 길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과 함께 여러 마음이 오고 갑니다. 글을 모르는 저에게 글을 읽게 해 주시고, 연필을 잡고 글자를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두 분의 선생님. 글을 쏘기 이전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공부를 시켜주신 나의 김사인 선생님. 그 마음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저는 결국 시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또 부족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진실을 쪼개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나의 하일지 선생님. 비문을 쓸 때마다 너희들은 모두 저능아야, 저능아 라고 외치던 선생님. 그 모습이 언제나 그리웠습니다. 저는 언제나 하일지 선생님의 저능아 중에 한 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처음과 끝에, 제 마음속에는 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하일지 선생님이 이 상을 조금 더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히는 마음이 큽니다. 하일지 선생님은 저의 정신적인 지주입니다. 조금은 더디고 늦더라도 정직하고 뭉툭한 글을 써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카스테라를 손으로 팍 누르면 이주 작게 압축되듯이, 희곡의 언어도 말 한마디에 세 가지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하셨던 나의 이만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모든 선생님이라는 큰 산이 있었기에, 제가 한포기 풀뿌리로 나마 글이라는 땅에 닿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입과 손가락이 아닌, 나의 마음속 단단한 연필심으로 글을 써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조카, 슈퍼와 문방구를 좋아하고 온갖 스티커를 모으는 꼬마 민채에게 이 모든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10편의 작품을 읽었다.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을 비롯해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그려낸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풍자를 이용한 현실 비판적 성향의 작품이 많았다. 글 솜씨들이 뛰어났고 이야기를 만드는 수준도 높은 반면 기성 작가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것이 아쉬웠다. 처음부터 자기의 칼라를 갖는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저마다 자기 나름의 시선과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할 것이다. 본심에서는 주로 4편의 작품을 두고 논의를 벌였다. 4편은 그 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X은 세상에 대한 욕설을 틱장애와 연결시킨 발상이 절묘했고 안정된 글 솜씨를 가진 작품이었으나 장황한 부분을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문 좀 열어주세요는 취업을 못한 젊은이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코믹한 상황에 놓고 웃음과 눈물을 조화시켰지만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었다. <맨홀우리 면회 좀 할까요?>를 놓고 마지막까지 토의를 한 결과 맨홀의 간결한 상황 설정과 대사가 풍부한 상징성을 보여줄 수도 있는 반면 작품이 에피소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기발랄한 언어와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로 현실의 문제를 치열하게 그려낸 우리 면회 좀 할까요?>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는 한편 나머지 세 명의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창작을 계속하라는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김태수, 유진월, 최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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