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조열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clint 2018. 4. 14. 09:58

 

 

 

 

조만식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는 사실성에 조금은 자유로워서 같은 기록극 형식을 취했지만 연극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조민식을 대표로 한 북한의 조선민주당 세력들이 공산주의자들의 계략에 의해서 어떻게 희생되었는가를 조만식의 정치적 활돌을 중심으로 엮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조만식은 끝까지 북에 남아서 북의 민주 세력의 상징이기를 선택했다.작품은 기록극답게 기본적으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조만시의 인간성과역사 의식을 상상의 폭을 가지고 다루고 있어서 작품이깊이 있는 감동을 가지고 다가온다. 조만식은 "우리는 단결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오. 우리는 민족끼리 손잡는 걸 거절하고 외세와 손잡았소. 그 순간부터 한반도 분단은 결정된 거요"라고 우리의 분단을 진단한다. 그는 "동포들이 잊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더 살 수 있소"라고 북의 민주 세력을 대변하며 무심한 우리를 일깨운다. 기본적으로 반공극의 입장에서 서면서도 분단의 책음이르 직시하고 객관화해 보려는 냉철한 분단 상황의 진단이라고 하겠다. 「조만식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에서 박조열은 새로운 양식으로 통일 집념을 시도하고 있다. 초기의 우회적인 방법을 넘어서 좀더 본격적이며 사실적인 논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실험된 듯싶으며, '기록극'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한 것도 성과이다.

 

 

 

조만식

 

1-2장
해방 직후의 평안남도. 일본 정부가 물러간 뒤 민족주의 진영인 우익 15인과, 공산주의 진영인 좌익 15인이 모여도 정권이 구성된다. 좌익과 우익은 위원장을 우익의 조만식으로 추대한다. 위원회의 이름을 결정하는 문제에서, 좌익 측이 내 놓은 '평남 인민 위원회'가 좌익 측의 프락치 공작으로 인해 통과된다.
3장
좌익의 독재를 막기 위해 조만식은 좌익 내에서 그들의 정책에 불만이 있는 현준혁과 이야기를 나눈다. 현준혁과 우익이 내통한다고 생각한 좌익은 현준혁을 암살한 뒤 우익 측의 소행으로 선전한다.
4장
김일성의 등장과 더불어 소련과 좌익측은 점점 그들의 권력을 키워 나간다. 그들은 조만식에게 새로운 정당 창립을 권유하는데, 조만식은 비록 공산당의 들러리가 될지라도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선 민주당을 창당한다. 조선 민주당은  반공 세력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이후 공산당의 숙청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5장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 결정이 떨어진다. 조만식은 이에 열렬히 반대하다가 공산당들에 의해 감금된다. 사람들의 월남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북한 민중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정세는 점점 비극적으로 돌아가고 그는 가족들과도 떨어진 채 정치적으로 매장된다.

6장
신탁통치는 무산되었지만 결국 통일정부 수립에는 실패하게 되고 현실은 더욱 절망적이 된다. 감옥에 감금된 뒤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조만식은 국민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한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조열

1930년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에서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조열은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지주로서의 신분이 발각되어 산간 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한다. 그는 월남한 이후 육군에서 12년간 군복무를 하였는데, 특히 6개월 간 최일선에서 소총병으로 근무할 당시 전쟁의 성격과 참전의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농민출신 소대원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1963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에 들어가 처녀작「관광지대」를 발표하는데, 바로 이 작품 때문에 박조열은 검찰 공안부의 지시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남북통일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미군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4년 박조열은「토끼와 포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극계에 데뷔한다. 민중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동아연극상 대상, 연기상, 희곡상을 석권하지만, 이 또한 공연예술윤리위원회의 압력으로 일부 대사와 극중 장소가 바뀌게 된다. 이후 분단 현실과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는데,「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1966)「불임증 부부」(1967)「소식」(1969)「흰둥이의 방문」(1970)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극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 박조열은 1974년 문예진흥원의 창작희곡 지원자로 선정되어 문제작<오장군의 발톱>을 집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75년 여름 자유극장에 의해 공연 준비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에 공연예술윤리위원회로부터 공연불가 판정을 받는다. 주인공이 소총병이고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되었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된 것이다. 이것은 1988년에 해금되어 미추에 의해 초연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박조열은 창작 의욕을 잃게 되어「가면과 진실」(1976)과「조만식은 살아있는가」(1976)를 발표한 이후 희곡 창작을 중단하게 된다.
박조열은 전쟁으로 인한 가족이산의 경험 때문에 지속적으로 분단문제에 집착했던 극작가이다. 그는 전쟁과 분단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세련되고도 신선한 희극적 감각으로 표현함으로써 비극성과 희극성이 결합된 작가 고유의 희곡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박조열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검열의 벽에 부딪치면서 자신이 관심을 두던 분단문제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거나 그 폭을 넓혀갈 기회를 잃게 된다. 이 때문에 박조열은 10여 편의 작품만을 남기게 된 것이다.

 

 


「관광지대」(1963)
「토끼와 포수」(1964)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1966)
「불임증 부부」(1967)
「소식」(1969)
「흰둥이의 방문」(1970)
「오장군의 발톱」(1974)
「가면과 진실」(1976)
「조만식은 살아있는가」(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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