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기록’과 자아의 ‘기억’이 촘촘히 교차한다.
이 작품은 진시황이라는 소재의 서사성과 어느 대상에게 집착하여 함몰된 삶을 사는 현대인의 개인사를 혼융 시킨 작품이다. 기차를 타고 진시황릉을 향해 가는 주인공은 단순한 고고학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듯한 “진시황이 누구였던가” 하는 물음과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배열하며 극성을 이룬다. 또한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었던 마음의 상처를 고백을 통해 표현한 자기 치유적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의 감정을 절실한 심정으로 호소한 소외의 모노로그이기도하다. 진시황을 설명하는 나레이션과 주인공의 사건들은 의식적 층위에서 무의식적 심연으로 역사와 신비의 경계를 넘어서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인간욕망의 근원을 토로한다.

줄거리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 서안의 여산릉 여행길에 오른 안상곤은 진시황의 지하 궁전에 갇혀 최후를 맞이한 인부들과 노예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본다. 이야기는 수 천년 베일에 감춰진 진시 황릉에 관한 내용과 안상곤이라는 한 남자의 과거가 중첩되어 흘러간다. 달리는 열차 속, 긴 여정 속에서 상곤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 받고자 한다. 절대 권력과 영원불사의 상징인 진시 황릉이 상곤에게 막연한 동경 이였다면 현실 속에서 그가 넘을 수 없었던 동성애적 사랑의 상대였던 찬승은 상곤의 인생을 지배해 버린 또 다른 절대 권력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와 홍가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 뒤의 충격과 맹목적 사랑의 상대였던 찬승의 집 지하실에 식구들로부터 유기 되어있던 중증 장애자였던 찬승의 형으로부터 겪는 성적 수모 그리고 찬승의 가족들로부터 생매장 당할 뻔했던 기억들이 상곤에겐 버릴 수 없는 인생의 굴레로 얽혀 찬승에게로의 집착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의 순탄한 인생을 가로막는다.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상곤의 어머니, 일탈을 꿈꾸며 현실의 무게감을 벗고 싶은 젊은 여직원, 홍가에게 비롯된 남성이 가지는 힘에 대한 동경 등이 거대한 지하 무덤과 연결되며 구체화된다. 절대 희생을 바치면서도 찬승에게 소외당한 상곤은 어른이 된 뒤에도 찬승의 거취를 좇으며 그의 모습을 조각하는 일에 몰두하며 산다. 일생을 지배한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곤은 진시 황릉을 찾아가는 여행계획을 세운 뒤, 우연을 가장하여 찬승을 만나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런 상곤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찬승을 상곤은 작업실에서 기다리는데...
자신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대상을 집요하게 취하고자 했던 상곤은, 정통에 대한 열등감으로 거대한 지하궁전을 건설하는 일에 집착했던 진시황의 심리를 대입시킨다. 결국 과거로부터의 자유, 또 성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상곤과 장생불사의 갈망, 죽음에 대한 정복을 꿈꾼 진시황은 인간 존재의 한계라는 공통점 아래서 만난다.

소설가가 언제고 한 번은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듯이,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사사로운 기억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생각에서 이 작품은 시작되었다. 연극에서의 작가나 연출의 자아노출이 얼마나 겸연쩍은 일이며 또한 이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에 개연성과 실감을 담아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우려에서 오래 망설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이제 인생을 반성하며 사는 나이가 되고 보니, 과거를 그림처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어서 극으로 대할 수 있는 삼자적 시각이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연극이 내레이션 형식을 취한 것은, 주인공이 일기에 대고 고백을 하듯 담담하게 자기내면을 펼치고 싶은 의도였다. 관객은 고해성사를 대하는 신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감정 속에 있다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기차가 목적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치닫듯이 점점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으면 한다. 일기문 같은 평면적 구성에서 서서히 입체적으로 변하는 양식을 갖추어 벌판을 내지르는 기차와 용갱의 내부에 따라 관객의 심리가 풀리고 갇히기를 바란다. 주인공은 진시황릉을 건설할 때 황릉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목격자들)이 처단됐거나 산 채로 능에 묻힌 점에 대해 동질감의 비극적 정서를 느끼며 주목한다. 이 작품은 때때로 관객마저 관음증을 느끼도록 유발하여 ‘본다’라는 행위에 대해 새삼스럽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고자 한다. 사모하는 한 상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애절한 시선을 거두고, 결국 처절한 결말로 끝을 맺는 이야기를 무대에 형상화하면서 연출은 관객들이 충격과 감동에 쌓이게 되는 것을 감히 바라지 않는다. 그저 연극이 끝난 뒤, 기차를 타고 소박한 여행을 떠나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면 한다. 비행기나 쾌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고전적 여행의 조건인 기차여행으로 우리 삶의 사랑과 집착, 가부장이 없는 사회에서 키워진 남자들의 병리적 증세, 그리고 그 안의 나는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를 권유한다.
- 참고: 2004년 공연 프로그램 중 작가, 연출의 글

한태숙
1999년 한국연극협회 주최 ‘우수공연 베스트5’ 연출상, 작품상
2000년<에쿠우스>
2001년<배장화 배홍련>, ‘우수공연 베스트 5’
2002년<광해유감>
2003년<서안화차>
2004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김상열연극상 ‘평론가 베스트5’, ‘우수공연 베스트3’ 등 예술의 전당 정통연극시리즈<꼽추, 리차드3세>
2005년<우당탕탕, 할머니의 방>,<고양이늪>, 한국여성연극인상
2006년<김용배입니다>,<이아고와 오셀로>,<강철>
2007년<네바다로 간다>,<짐>
2008년<레이디 맥베스>,<서안화차>
2009년<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도살장의 시간>
2010년<대학살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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