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영수 '혈맥'

clint 2018. 4. 5. 09:41

 

 

 

1947년 문교부 주최 제1회 전국연극경연대회 작품상 수상. 8·15광복 후의 민족의 감격과는 대조적으로 나날의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하층민의 생활을 묘사하는 가운데, 작자는 "40년 동안을 그렇게 슬프게, 비굴하게 살아오구두 그래도 아직도 모자라서 우리는 나 하나만을 찾구 나 하나만을 내세워야겠고?" 하며 과거의 역사를 반성, 힘을 합쳐 내 집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워야 할 정신을 일깨워주려는 작품이다. 일제시대의 방공호(防空壕)에 살고 있는 땜장이 목판장수, 복덕방 거간을 중심으로 댄서, 암거래상, 노동자 등 28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 중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자는 일본에서 공부를 한 원칠뿐이다. 그는 기대가 컸지만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무력한 생활을 하고 있어, 폐결핵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내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목판장수 형과 늘 충돌을 일으킨다. 땜장이는 본처의 딸을 술집으로 보내자는 술장수 후처의 졸림을 당하나, 딸이 복덕방 거간의 아들과 도망쳐 공장에 취직하자 숨을 돌린다. 홀아비 복덕방 거간은 새장가를 드는데 그 계집에게 생명처럼 아끼던 돈을 도둑맞고 자살을 한다고 야단이다. 원칠은 무력한 생활을 청산, 돈을 벌기 위해 공사장(工事場)에 나가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오면서 형수가 먹고 싶다던 것을 사왔으나 이미 형수는 죽어 있었다. 형수의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멀리서 지경다지는 소리가 점차 높아져 온다. 광복 후의 사회상의 단면(斷面)을 매우 리얼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3막 4장의 희곡 혈맥은 정치적 격동기였던 1948년 6월에 개최된 문교부 주최 제 1회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극단'신청년'에게 1등상을 안겨준 작가 김영수의 대표작이다. 혈맥은 광복후 어려웠던 현실을 당시 사람들이 복합적인 심리와 그늘진 삶, 가치관의 혼돈, 시대의 모순과 구조적 부조리 등을 통해 민족에게 희망과 꿈을 제시해 준다.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은 진솔한 삶을 통하여 절망을 딛고 미래를 지향하며, 작가 또한 이 작품을 통해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를 동시에 등장시켜 절망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빛을 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줄거리
성북동 부근의 산비탈에 위치한 방공호에서 살고있는 궁핍한 세가구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복덕방 거간엔 털보영감과 그의 아들 거북,땜쟁이 깜통영감과 그의 아내와 딸 복순, 그리고 목판담배장수 원팔과 그의 병든 아내와 늙은 노모등이 방공호에서 빈한한 가계를 꾸려가고 있는 세가족이다. 이들의 삶의 처참함은 그대로 당시의 사회 실상을 축약하고 있는 작은 축도가 된다.
전재민인 왼팔의 가족 미군 부대 댄서인 백옥희, 월남인 청진계집, 적산가옥을 차지하는 몰입의 강가, 사회주의자 원칠등 당대의 전적인 인물들의 삶에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한껏 응축된다. 털보영감은 자기 아들 거북을 미군부대에 취직시키려 하고, 깡통영간의 아내 옥매는 딸 복순을 기생집에 팔아 넘기기 위해 타령을 가르치는데 이들은 떳떳한 노동자의 길을 걷겠다며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이 되는데....

 

 

 

 

 

<혈맥>은 그의 일관된 빈궁희곡(貧窮戱曲)의 백미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식민지 후유증을 치르는 해방직후의 서민상을 적나라하게 부각시킨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무대도<광풍>과 비슷하게 성북동 변두리의 일종의 토굴인 방공호이다. 방공호에서 사는 밑바닥 인생의 삶인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직업도 복덩방거간을 비롯해서 땜쟁이, 목판 담배장수, 댄서, 지겟군, 하급노동자 등이고, 이야기는 땜쟁이네, 담배행상네, 복덕방거간네 등 세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혈맥>의 사건도 그들의 안식처 방공호를 내쫓기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 쓴 작품들에서는 총독부 관리나 부자에 의해서 집을 내쫓겼지만 해방 후에 쓴<혈맥>에서는 일제 앞잡이였던 자들에 의해 권리침해를 받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의 연장선상에서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한 가족이 고스란히 거처를 잃는다는 것은 뿌리를 완전히 뽑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김영수의 희곡은 외부의 힘에 의해 뿌리를 송두리째 뽑히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혈맥>에는 일본 광산에서 일하다가 귀국한 가족도 섞여 있다는 점에서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잘 대변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2세들의 사회진출도 흥미롭다. 물론 糊口를 위한 것이지만 미군부대 종업원을 위시해서 댄서, 기생, 야미장수 등 다양하다. 이것은 해방 직후의 세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세 가족 중에서도 목판 담배행상을 하는 元八네 형제가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물론 세 가구가 모두 권리금을 요구하는 땅주인에게 집단 저항하는 중에서 전개된다. 사실 해방 직후의 주택문제는 심각한 것이었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살다가 귀국한 가족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들어 온 가족, 越南가족 등 도시의 주택난은 심각한 것이었다.<혈맥>에서 그런 절박한 상황속에 몰리고 있는 세 가구 중 원팔네는 더욱 궁지에 처해 있었다. 가정을 이끌고 있는 장남 원팔이는 무식꾼으로서 담배행상으로 연명하는데 그의 부인(한씨)은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동생(元七)은 무슨 사상문제로 형사의 감시까지 받는 고등 룸펜이다. 김영수는 철저한 우익이었다. 그는 식민지시대부터 사회주의를 혐오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좌경 이데올로기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켜 매도하곤 했다. <단층>에서 그랬고<혈맥>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영수는 허황된 이상주의를 배격했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당장 집이 없고 호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데올로기니 뭐니 하는 비현실적 이상론은 삶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김영수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서 이상주의자는 대체로 현실과 타협하거나 현실로 복귀하는 것 같다.<단층>에서도 그랬고, <혈맥>에서도 비슷하다. 즉<혈맥>의 경우 현실에 대처하고 삶의 방식에 있어서 날카롭게 대힙하던 원팔 형제는 원팔 처의 죽음을 계기로 화해하고 좌절하면서 원칠은 현실 속에 침몰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상주의자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상주의자의 입을 통해서 조국의 자주 독립 등 비젼을, 그리고 현실주의자를 통해서는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영수 희곡에 등장하는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두 가지 타입은 곧 현대사 속의 한국인의 두 가지 얼굴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혈맥>의 경우는 해방직후 혼란기에 있어서 생존권을 찾아 몸부림치는 인간상을 묘사하는 동시에 동족의 화합과 扶助를 강조함으로써 교훈극의 성격마저 띠고 있다. 그러니까 김영수는 가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민족이 화합 자주독립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끝장면에서 원팔 처의 죽음과 동시에 집터 다지는 지경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게 한 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즉 식민지 유산의 청산과 새로운 나라의 재건 독립의 서광을 알리는 상징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안톤 체홉의<櫻花園>의 끝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즉<앵화원>의 경우 뒷동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벚나무 찍는 도끼소리는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挽歌인 동시에 새 시대의 도래를 예시하는 소리이기도 한 것처럼<혈맥>의 경우 원팔 집 앞에서 들려오는 지경다지는 소리도 바로 식민지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독립국가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심볼인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하우프트만, 고리키, 체홉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는 순전히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시절에 築地소극장에서 받은 영향으로 볼 수가 있다. 특히<광풍><총><혈맥>으로 이어지는 주제는 체홉의 4대 비극의 주제와 닮은 데가 있다. 즉<갈매기>의 否定에서<바아냐 아저씨>의 체념, 그리고<삼자매><앵화원>에서의 점진적인 긍정의 세계가 바로 그렇다.<혈맥>에서의 신구세대의 교차는 빼어나다. 아마도 해방직후에 나온 작품으로서<혈맥>만큼 한 시대의 종막과 새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그린 희곡은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 김영수는 세태작가로서도 뚜렷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밀도가 약하고 또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끌고 간 것이 흠이다. 이는 그 자신이 솔직하게 고백한 바 있듯이 상업극작가로서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혈맥>은 비교적 그의 일관된 환경묘사적 드라마로서 해방직후 혼돈기의 사회상을 매우 리얼하게 묘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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