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양태훈 작 '스물 아홉, 그녀는 죽는다'

clint 2016. 2. 24. 09:20

 

 

 

 

스물아홉에 심장마비로 숨진 한 여인과 그녀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을 사랑한 그녀의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물아홉 여자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찾기.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형사는 여자의 남편을 사랑하는 친구와 남편을 의심한다. 남편은 이미 몇 개월 전 여자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었고 친구는 '스물아홉, 그녀는 죽는다.'라는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 완전범죄를 노리는 타살의 냄새가 나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200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얼·아리' 대표 양태훈 씨가 다시 희곡으로 고쳐 썼다. 한 여자가 죽는다. 스물아홉,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나이인 그녀의 죽음은 심장마비로 인한 쇼크사로 밝혀진다. 형사 는 그녀를 둘러싼 모종의 계략에 의한 타살이라는 확신이 선다. 그녀에게는 소설가인 오랜 친구가 있다. 이번 출판된 소설의 제목이 '스물아홉, 그녀는 죽는다.'이다. 그녀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소설 상황이 비슷하다. 또한 그녀의 친구는 평소 그녀의 남편을 빼앗으려 했음이 밝혀진다. 그녀의 남편 은 평소 그녀를 끔찍하게 사랑했었다. 하지만 몇 달 전 그녀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었으며 요즘 남편은 보증 문제로 돈이 급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편과 친구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심장마비를 일으켰을까?

 

 

 

 

어느 날 앞날이 창창한 29살 여자가 죽었다. 그녀의 남편에겐 그를 좋아한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 언뜻 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소재다.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친구가 남편을 좋아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아내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목소리를 담은 한양극예술연구회 ‘들꽃’의 가을 연극 「스물아홉, 그녀는 죽는다」는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형사의 의심으로 연극의 막이 올랐다. 남편은 아내가 죽기 몇 달 전에 생명 보험을 들었으며 무명 소설가인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내연녀는 아내가 죽은 이유와 통화 시간까지 일치하는 소설을 냈다. 의심거리가 늘어만 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차차 밝혀지는 형사의 직감은 이혼으로 위장된 그녀의 ‘남편 바람 트라우마’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그런가하면 남편은 아내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아내의 영혼은 그런 남편을 위로한다. 둘의 사랑은 진실돼 보인다. 죄책감을 갖던 내연녀가 아내, 즉 친구의 영혼과 만나 화해하는 장면에선 미세한 희열마저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는 아내와 그 때문에 남편을 10년간 잊지 못했다는 내연녀. 역설적이게도 둘은 잊고 있었던 자신들의 우애를 생각해낸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급급해 정말 중요한 사실은 잊고 사는 자화상을 마주하게 된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여자의 죽음이 2개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현모양처였던 여자가 남편의 불륜 사실을 전해 듣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쇼크사하는 다소 뻔한 결말이다. 나머지 하나는 라디오에서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결혼 생활이 행복해서 죽는 것이다. 막이 내린 후 기자들이 논한 것처럼 이는 열린 결말이었을까. 이에 남편 역을 맡은 신희재<음대ㆍ작곡과 09> 군은 “처음 결말은 극중 소설가였던 아내의 친구가 썼던 「스물아홉, 그녀는 죽는다」라는 소설에서 꾸며진 결말”이라며 “실제로는 여자가 가장 행복할 때 숨을 거둔 두 번째 이야기가 맞다”고 설명했다. 또 “처음엔 나도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연습을 하며 하루하루 인물의 감정을 찾는 과정이 재밌었다”며 “이번 연극팀과의 생활이 끝나는 게 아쉬워 연극도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극의 막이 내리고 관객 다수의 반응은 “그래서 맞는 결말이 뭐야”였다. 여자의 죽음을 계속 처음으로 되돌려 다르게 보여주니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연극을 즐기러 온 관객에게는 다소 잔인한 구조를 지녔다.  그러나 인물들의 팽팽한 신경전과 결말을 단정지으려는 객석의 눈치싸움을 곱씹으면 분명 느껴지는 바가 있다. 쏟아지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속칭 ‘카더라 통신’을 믿으며 비판적 수용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연극 「스물아홉, 그녀는 죽는다」는 관객에게 하나뿐인 진실을 던지면서도 결코 강요하지는 못했으리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 ‘들꽃’이 던진 메시지는 크다.  

 

 

 

작가의 글

세상은 항상 시끄럽다. 누가 어쨌다더라 사건이 이렇더라 누가 잘못했다 아니다 내 말이 맞다... 어쩌면 거짓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무엇이 진실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다 순식간에 새로운 상황들로 역전되기도 하고. 참 살아남기 힘든 세상. 척도란 개인적일 수도... 어떤 현상이든 보는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혹시 우리는 그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을 우리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진 않을까? - 양태훈 (200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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