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 보스에게 빌붙어 초라하고 비굴한 옥살이를 하는 사형수 철수는 전직 배우다.
감옥에서 보스의 세력 아래 다른 죄수들의 비난과 몰매를 면하며 살아야 하는 철수에겐
비굴만이 삶의 방식이다. 그러던 중 매주 어딘가를 다녀오는 사형수 수리가 에이즈로
곧 이곳을 나갈 것이라는 말을 듣는 철수! 전직 마술사인 수리에게 접근하여 마술을
배우려는 철수를 수리는 잘 받아 주지 않는다. 그런 철수가 자신이 전직 배우였다고 하며
햄릿 연기를 최선을 다하지만 어설픈 모습을 보고 측은하여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마술을
몇 가지 가르쳐 준다. 수리에게 배운 마술로 보스를 기쁘게 하기 위해 보여주지만 보스는
철수가 수리와 놀아났다고 생각하고 철수를 다른 방으로 옮기도록 조치한다.
다른 죄수들에게도 두들겨 맞고 수리의 방으로 옮긴 철수는 수리에게 화풀이를 한다.
수리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철수의 모습을 보며 에이즈환자처럼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철수는 비굴한 안녕을 위해 에이즈환자처럼 행동을 하기로 맘 먹는다.
허풍이 심해도 마음만은 착했다고 자부하는 철수는 애인과 놀아난 한 남자를 용서할 수
없어서 화풀이하다가 그가 실수로 죽게 되었는데 오판으로 졸지에 살인자가 된 얘기를
하고, 수리는 사랑하면서도 한번도 안아주지 못한 여인을 위해 스스로 사형수가 된
과거를 말한다.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솔직해 진다. 하지만 그순간 철수는 비굴한
삶보다는 에이즈라도 걸려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고 수리에게 접근한다.
에이즈에 걸렸기에 밖에 나갈 수 있다고 행복해 하는 철수에게 수리는 에이즈환자라도
죽어야만 감옥을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수리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믿기 싫은 철수!
하지만 그건 사실이고 철수는 에이즈에 감염된 채로 병원을 드나든다.
나날이 쇠진해가는 철수와 수리. 절망에 빠진 철수와 좀 더 의연한 수리. 싸움을 하다가
문득 수리는 철수에게 자기에게 삶의 희망을 준 것이 자신의 마술을 믿어주듯이 철수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줄 것을 얘기한다. 철수는 수리의 진심에 대해서 받아 들이고
둘은 정말 마술을 한번 해보자며 벽을 향해 날아간다.

이 작품은 폐쇄된 공간 속에서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이 천형(天刑) 에이즈 와 함께 하며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남자에게 유일한 희망은 마술이다.
속임수라고 치부하던, 마법이라 믿어버리던 상관없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건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연극 <매직룸>은 인간의 감정 중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마술과 마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마법도 기술적인 속임수를
사용하는 마술도 결국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믿는다면, 마법과 마술은 사기가 아닌
환상적인 현실과의 조우가 된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극중극이 들어있다. 수리와 철수가 어떻게 교도소에 들어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두 명의 배우가 서로의 상대역으로 등장해 큰 웃음을 준다.
그러나 곧 심각한 장면이 연기되면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극을 따라간다.

특히, 수리의 과거 장면은 인상 깊다. 벽에 걸린 가운 한쪽에 팔을 넣어 두 사람이 있는
듯 연기하는 모습과 수리가 좋아했던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철수의 모습이 그렇다.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혐오스러울 수도 있지만, 붉은 색과 푸른색의 조명이
번갈아 비춰지면서 가면을 이용해 연출된 장면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암전과 조명, 가면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보는 배우는 사기꾼이 될 수도 있어”
극 후반 혼란스러워하던 철수는 밖으로 나가 폼 나게 무대에 서서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것에 대한 수리의 대답이다. 그렇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만 쫓는다면,
관객들을 감동시킬 진심이 묻어나기 않을 것이고, 그 공연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사기극일 뿐이다. 교도소와 동성애, 마술은 언뜻 들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결국 관객들도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봐야 한다.
<매직 룸>은 마술을 하는 방이기도 하고, 환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글 - 윤정환
나는 마술을 좋아한다. 마술은 꿈과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마술은 기술이라 생각한다.
그 기술의 최고에는 인간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술은 그것올 만들어 낸다.
그런 마술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믿음, 신뢰 그리고 서로의 노력이
마술을 마술이게 한다. 지금 우련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많이
부족한 채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굳이 그런 상황에 대해서 개탄하거나 분노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생각은 아니다. 단지 어떤 두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우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싶었다. 미숙하고 모자란
작품에 대해 너그러이 지면을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내년엔
겨우내 묻어두고 썩혀 왔던 먼지 묻은 작품을 들추어내렵니다.
공연을 통해서 더욱 풍성한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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