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도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
노벨상이 설립되기 이전에 인류에 혁혁한 공헌을 세운 과학자에게
'제1회 거꾸로-노벨화학상'을 수여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위원회는 현대 화학 혁명의 근원인 '산소'의 발견자에 포커스를 맞춘다.
과연 누가 그 영예를 받아야 할 것인가?
산소의 발견과 현대 화학의 포문을 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라부아지에 일 것이다.
그는 1770년부터 80년까지 자연의 산화와 활동, 동물의 호흡 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산소의 역할 등에 대한 이해를 공식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웨덴의 쉘레는? 영국의 프리스틀리는?
그들은 산소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란 말인가?
주인공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 쉘레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은 1777년
스웨덴 구스타프 3세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에서 만나게 되고,
'산소는 누가 발견했는가?' 라는 질문을 해결해 나간다. 여기서 그들의 그늘이고
후원자인 아내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삶을 배우게 된다.
배우들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다시 돌아온 2001년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위원회 사람들이 세 과학자의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하며 벌어지는 논쟁은
우리에게 지난 두 세기를 통해 변화한 과학의 과정에 대해 말해준다.
이 연극은 1777년과 2001년을 오가며, 발표를 통한 우선권과 발견이라는
과학 윤리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누가 제일 먼저 산소를 발견했느냐?"
"누가 가장 먼저 산소의 개념을 알아냈느냐?"
그리고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고 시인인 로알드 호프만 교수(코넬대)와 경구 피임약을 발명한
의약화학자이며 소설가인 칼 제라시(스탠퍼드대)가 1981년에 발표한 <산소>는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와 프리스틀리, 쉘레, 이 3명의 과학자를 소재로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2 대한민국과학축전 초청작품으로 포항 대극장에서 초연되었고, 2003
문예진흥원예술극장에서 공연, 객석점유률 120%를 기록하였다. (극단MoA. 김광보연출)
이 작품은 1777년과 2001년을 넘나들며, 과학자의 삶과 실험을 통한 발견 그리고
후세에 비쳐지는 모습을 배우들의 역할 바꾸기라는 재미있는 연극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통한 과학의 이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연극이라는 순수예술과의 만남, 과학의 이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과학연극 '산소'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는 공연과 더불어 희곡 출판,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어 작품의 우수성을 이미 인정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희곡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현직 화학 교수들이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과학자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직접 집필함으로써 더욱 많은 흥미가 있었다. 무대공연의 예술성과 과학적 지식이 접목된 또 하나의 문화장르로 자리 잡은 사이아트 (Science + art)가 이제 연극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브로드웨이에서는 과학기술 분야 자체가 하나의 든든한 드라마적인 소재가 되어 있다. 원자폭탄의 개발 과정을 다룬 '코펜하겐', 은하계와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우주', 등 수준 높은 과학연극이 올려지며 객석을 채워가고 있다. 과학연극 '산소(Oxygen)', 여태껏 접했던 여느 연극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와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미국 코넬대 교수 로얼드 호프만과 칼 제라시 스탠포드대 교수가 쓴 작품으로, 과학자들이 극작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더구나 흔히 어렵고 딱딱하다는 생각 때문에 좀처럼 연극 소재로 쓰이지 않는 '과학'을 소재로 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그럼에도 미국과 독일, 영국 등에선 학계는 물론 일반 관객들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끌며 공연됐다.
공연은, 노벨상이 처음 제정된 1901년 이전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한다면 누가 그 주인공이 됐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름하여 '거꾸로 노벨상'. 2001년 노벨화학상위원회는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맞아 산소를 발견한 18세기 화학자 셸레, 프리스틀리, 라부아지에 3명을 후보로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게 된다. 누가 가장 먼저 산소를 발견했느냐는 것.
공연은 2001년과 1777년을 수시로 넘나들며 실제 세 과학자와 그 부인들이 공방을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각기 자국 출신 과학자를 지지하는 심사위원들과 명예욕 때문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산소'의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 각기 다른 작업 환경에 있는
셸레와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는 금을 녹슬게 하고, 공기 중에서 숨을 쉬면
사라지는 원소가 공기 속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이 있었다.
세 사람은 과학자답게 각기 다른 실험으로 증명하려 한다.
연극은 자세한 실험과정을 전하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기에 무대 위 여러 볼거리로
과학적 소재를 등장시킨다. 마치 마술처럼 촛불이 크게 타오르는 장면은 고교
과학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고, 실제로 흰 쥐도 등장한다.

연극<산소>의 또다른 주인공은 과학자의 그늘에 있었던 아내들의 목소리다.
18세기 급변하는 유럽의 정치 상황 속에서 뛰어난 발견과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옆에서 보필하고, 때로는 함께 실험을 하고, 조언을 했었던 아내들이었다.
연극은 21세기로 와서 변화된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로세크비스트 '거꾸로 노벨상'의
심사위원장은 여자 위원으로 세 명의 남자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가 격상됐음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성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외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자는 누구나 최초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스웨덴 과학자 셸레와 젊은 나이에 사회적 지위에
오른 프랑스 과학자 라부아지에, 정치적 야망이 있는 목사이기도 했던 영국
과학자 프리스틀리. 연극<산소>는 그들의 인간적인 열정과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을뿐 아니라 여성들이 이룬 과학적 업적 이면에 담긴 상실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774년 10월. 어느 저녁에 화학 혁명의 개척자였던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유니테리언 목사였던 조셉 프리스틀리가 새로운 기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스웨덴의 약사 카를 빌헬름 쉘레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 편지는 라부아지에에게 새로 개발하게 될 이론의 핵심이 될 원소인 생명을 주는 산소를 합성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었다. 쉘레의 실험은 몇 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1777년에야 발표되었다. 쉘레와 프리스틀리는 자신들의 발견을 완전히 잘못된 논리체계였고, 라부아지에에 의해서 부정될 운명에 있었던 플로지스톤 이론으로 설명했었다.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와 쉘레의 발견에 대해 어떻게 했을까? 적절한 공로를 인정해줬을까? 도대체 발견이란 무엇일까? 발견한 사실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 연극에서는 1777년 가면무도회로 유명했던 구스타프 3세의 초청으로 세 사람의 주인공과 그 부인들이 스톡홀름에서 만나게 된다는 가상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누가 산소를 발견했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사우나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과학자 부인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과 과학자 남편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된다. 훌륭한 여성이었던 라부아지에 부인의 연기가 이 연 극의 핵심이다. 화학실험이 함께 등장하는 스톡홀름 판정에서 세 사람의 산소 발견자들은 자신들의 실험을 재현해 보인다. 플로지 스톤 이론을 뒤엎은 산소의 승리에 대한 운문극도 소개된다. 실제로 라부아지에는 친구와 후원자들을 위해서 지금은 잊혀져버린 그 런 운문극을 공연하기도 했었다.
한편,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노벨 위원회는 세 사람의 상반되는 주장을 심의한다. 그들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과연 과학 지난 200년 동안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노벨 위원회의 위원장은 훌륭한 스웨덴 이론화학자인 아스트리드 로센크비스트이고, 젊은 역사하자 울라 소른이 위원회의 서기로 등장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역할이 바뀌게 된다.
이 연극의 주제인 우선권과 발견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1777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혁명에서 극적인 아 이러니도 찾을 수 있다. 화확에서의 혁명기였던 라부아지에는 정치적으로는 자코뱅 폭도들에게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보수주의자였다.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추방당했던 정치적 급진주의자였던 플리스틀리는 화학적으로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리고 쉴레는 쇄핑에 있던 그의 약국을 운영하면서 남는 시간에 실험을 하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실험실에서 최초로 산소를 만들었 던 쉘레는 지금까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230년이 지난 오늘 그의 발견에 대한 평가가 바뀌게 될 것인가?

공동 작가 칼 제라시, 로얄드 호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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