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파리 귀족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바람이 잔뜩 들어있는 졸부의 딸과 그녀의 사촌 자매가 있었다. 스스로를 대단한 귀족으로 착각하고 있는 두 자매에게 신사 두 사람이 청혼을 했으나 하찮은 신분이라고 면박을 당한다. 두 남자는 이 아가씨들에게 당한 수모에 대해 복수를 하기로 한다. 그들은 재치가 뛰어난 하인과 마부를 파리의 귀족으로 꾸몄다. 하인과 마부는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사회의 말솜씨와 재치로 허영에 들뜬 두 아가씨를 완전히 반하게 만들었다. 그 작업이 절정에 이를 무렵 그들의 주인이 현장을 덮친다. 하인들의 화려한 옷을 벗기고 누더기 내의를 입은 초라한 모습 드러내게 하여 두 아가씨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Les Priceuses ridiculs)' 은 산문 1막으로 된 작품으로 1659년 11월 18일 몰리에르의 본거지인 프티 부르봉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37세였다. 초연 때의 흥행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어떤 사정에 의해 연극공연은 초연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 속에서 우롱의 대상이 되었던 유식한 사교계 여자들이 화가 나서 관계요로에 항의를 한 탓인지, 아니면 프레시외즈 대사전(1661)의 저자 소메즈(Somaize)가 말하듯, 어떤 고귀한 분이 몰리에르의 풍자를 불쾌하게 여긴 탓인지,
그 부분의 사정은 분명치 않으나, 아무튼 공연은 일시 중단되었다. 두 번째의 공연이 초연으로부터 약 2주 후인 12월2일에 이루어진 것은, 라그랑주의 장부가 중명하고 있다. 그 사이, 몰리에르는 자기 작품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건이 인기를 불러일으켰는지, 극장은 재공연 때는 초만원을 이루었고, 입장료를 두 배로 올려도 관객들은 줄지 않았다. 다음해 11월, 프티 부르봉 극장이 허물어질 때까지, 40여 회의 공연이 지속되었다니, 몰리에르 초기의 히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몰리에르가 이 작품을 통하여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프레시외즈 (고상한 사교계 여자들) 라는 족속은, 람부이에 후작부인이나 스퀴데리와 같은 유식한 일류 재원들이 아니다. 유행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고, 외관만을 흉내 내는 우직한 시골뜨기를 말한다. 완벽한 것을 잘못 모방하면 언제나 희극의 재료가 된다고, 몰리에르는 그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람부이에 후작부인이나 스퀴데리가 완벽했는지 어땠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그녀들이 언어를 정화하고, 감정을 세련 화 하고, 복장을 미화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다. '우스꽝스런'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는 카토스, 마들롱과 같은 엉터리 사교계 여자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시 한 번 머리말에 있는 글을 인용하면, "참되고 재치 있으며 세련된 귀부인들을 서툴게 모방하는 우스꽝스런 여자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서, 참된 사교계 귀부인들이 화를 낼 필요는 없다-고 쓰여 있다. 진짜 사교계 귀부인인 람부이에 후작부인 및 그 당시의 살롱의 많은 여자들이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 의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으나, 후작부인은 별로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다. 뿐만 아니라, 수년 후에는 몰리에르 극단을 초대하여 '남편들의 학교' 를 공연시키는 호의까지 보여줄 정도였다. 요컨대 가짜를 조롱해도 진짜는 상처를 안 입는다는 것이 몰리에르의 주장이며, 후일 '타르튀프' 공연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같은 것을 역설하고 있다.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의 모델로서 람부이에 후작부인이나 스퀴데리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는데, 카토스, 마들롱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왜냐하면 카토스는 카트린의, 마들롱은 마들렌의 축소형이고, 람부이에 후작부인의 본명이 카트린드 비본, 스퀴데리의 크리스천 네임이 마들렌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과연 우졸한 가짜 사교계 여자들만을 골탕 먹이려고 했는지, 아니면 일류의 재원들까지도 포함하이 프레시외즈들을 야유한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어째든, 몰리에르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작가의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프랑스의 풍속을 적절하게 포착했다. 독창적인 걸작품이라 해도 좋다.
이 연극이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출판업자인 장 리부는 누구한테서 인지 원고를 손에 넣어, 몰리에르의 허락도 없이 출판하려 했다. 몰리에르는 서둘러 불법 출판을 취소시키고, 귀욤 륀 서점에서 정식으로 책을 낸다. 이것이 몰리에르의 연극작품으로는 최초로 출판되는 작품이다.

끝으로 '프레시외'라는 어원에 대해 설명한다. 원 뜻은 '값비싼, 귀중한'이라는 형용사의 여성 형인데, 이것이 '자신에게 높은 값을 붙이는 여자 높은 곳에 머무는 여자'라는 특별한 의미로 시용되기 시작한 것은 1650년대부터이며, 거기에서 남성형의 프레시외(precieux)가 나오고, 1660년대에는, 그녀들의 주장, 풍조를 전반적으로 지칭하는 추상명사인 프레시오지테(precio site)가 나왔다. 프레시오지테는 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교계를 모태로 한다. 17세기의 이런 종류의 사교계는 '람부이에 관'으로 대표되는 전기(1620-1648)와 스퀴데리의 '토요회'에 의해 대표되는 후기(1650-1680)로 나누어진다. 전기의 살롱의 주된 관심은 종교전쟁 시대의 살벌한 풍조를 일소하는 것, 우아한 언어를 만드는 것 등이었다. 후기에는 언어의 문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애나 결혼의 문제를 논의하는 동시에 문학, 수학, 천문학 등에 열중하는 부인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1661년에 등극하자 궁정이 사교의 중심지로 변하기 시작하여, 이 사교계는 취미나 유행의 지도권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프레시오지테는 언어나 문학뿐만 아니라 사교 예의, 유행, 연애, 결혼 등 상류 사교계의 여성과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 나타났다. 그 기본 정신은 자기를 일반 비속한 하층계급에서 구별하려는 엘리트 정신이다. 따라서 프레시오지테는 비속함의 반대 개념이라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프레시오지테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1)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데서 오는 허영, 자만이 있으며 프레시오지테 문학은 자연적이 아니라 기교적이다.
2) 프레시오지테는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과 그 주변에 그를 부추겨주는 사람들을 전제로 하므로 거기에는 항상 일종의 아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배타적 정신이 수반된다.
3) 프레시오지테는 사교계의 유한계급이니만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상스럽다’라고 배척한다. 따라서 문학상의 유일한 원칙은 "마음에 든다, 즐기다(plaing)'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학이 도덕적 목적을 지니는 것을 거부했다. 고로 그들은 예술 지상주의자 였다.
4) 또한 그들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된 소일거리였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여 사교인사에게 필요한 지식, 교양을 획득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문적 지식을 현학주의라고 해서 극력 배척했다. 마지막으로 프레시오지테의 공과에 대해서 언급한다면, 몰리에르나 17세기의 비평가 부알로 등이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면, 만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데, 그녀들이 프랑스 문학, 또 사회에 공헌한 점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녀들은 당대의 풍속을 정화했다. 언어 면에 있어서도 프랑스어를 정화한 것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정확한 언어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몰리에르는 이 작품에 이어, 1672년 같은 주제를 취급한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 발표한다. 초기의 소극(笑劇}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풍속 풍자극으로 발전시킨 말년의 명작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당시 최첨단 과학으로 유행했던 천문학, 물리학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며, 다락방에 설치해둔 망원경으로 "달세계의 인간을 발견했다." 라고 공언한다. 사이비 여 학자들의 생태를 재미있게 그린 5막으로 된 고전 희극의 대표작으로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과 하게 몰리에르의 여성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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