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유명한 연극 비평가 베르나르 도르가 지적하듯이 '조르주 당댕'은 몰리에르 극작품들 중에서 오랫동안 가장 덜 알려지고, 또 가장 찬사를 얻지 못한 작품들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완벽한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극작품은 루이 14세의 프랑슈-콩테 지방의 정복을 축하하기 위한 '왕실 대축제'가 열린 1668년 7월 15일 베르사유 성내 야외 극 장에서 초연되고, 파리의 일반 관객 대상으로는 같은 해 9월 9일 팔레-루아얄 극장에서 공개된다. 노래와 무용을 곁들인 전원극과 결합시킨 축제용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와 인물, 분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1705년 간행된 그리마레(Grimarest)의 r몰리에르의 생애』에 대한 해설에서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당시 “좌절한 남편"이 아니라 "조르주 당댕’으로서만 알려졌던 작품이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전하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문체에 있어 비판의 부재와는 별도로 결혼한 여자의 연인과의 밀회라는 작품 주제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이러한 도덕적 범주의 비판적 견해들과 함께 볼테르는 귀족 부인의 교태가 귀족가문의 딸과 결혼한 농민 당댕의 어리석음에 대한 징벌로 보았던 사람들도 다수가 있었음도 지적하는데, 이는 당대 관객들 간에 극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 작품의 희극성과 윤리적 가치, 특히 이 두 덕목사이의 모순과 관련해서 - 상당한 진폭 또는 괴리가 발생했음을 암시해준다. 신분적 위계가 엄격했던 절대주의 시대에 치부한 농민이 귀족아씨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사회적 스캔들이었던 셈이다. 소작농에서 농업 부르주아로 발돋움한 주인공 당댕은 파산한 시골 귀족 소탕빌 씨의 부채를 대신 갚아주고 그의 딸 앙젤리크에게 장가들면서 귀족 반열에 들어설 기회를 붙잡지만, 결혼 이후의 그의 삶은 (부인의 분방함과 이를 은폐하는 능란함으로 인해) 고통과 혼란으로 점철된다.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던 봉건적 생활양식과 갓 태동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이라는 두 거대 문명 간의 대립 위에 놓인 주인공은 귀족 문화에의 동화도, 독립적인 정체성의 확보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민 귀족'이라는 사회적 변종의 탄생으로서 기록된다. 당댕은 그의 부인의 가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식사를 하고 마시며, 여가를 보낸다. 이 차이들 앞에서 당댕은 항상 "틀린” 사람이 되며, 이 차이들의 체계의 드라마틱한 힘은 분방함과 탈선을 여성에 대한 정중함과 세련된 예절 또는 유혹에 대한 부당한 중상으로 미화 또는 중화 시키면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그 역시 절대왕정의 확립이라는 내적 변혁의 소용돌이 속의 귀족 사회를 지배했던 궁정사회 매너들의 목록과 작동방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극작품은 다음 세기에 계몽사상의 발달과 시민 개념의 확립으로 인정받게 될 제3계급에 있어 근대적 자아의 형성과정의 진통과 모색을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밤나들이에서 돌아오다 대문이 잠겨 비행을 들킬 위기에 처한 부인이 자살하는 척해서 남편을 문밖으로 끌어내고, 자신은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서는 남편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에, 남편과 아내 간의 신분 차이와 남편의 무죄 입증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상황을 사회적으로 증폭시키는 인물들인 장인, 장모 소탕빌 부부를 도입함으로써 몰리에르는 이 진부한 치정 희극을 저명한 극작가 연구자인 가브리엘 코네사가 말한바 '그의 시대의 신랄하고 흥미진진한 사회적 묘사”로 끌어올려놓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처벌받아 마땅한 악덕은 전혀 처벌받지 아니하고, 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스꽝스러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심하게 징계가 가해진다는 점에서 극작가의 희극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 희극적 형식으로 소극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속이려다가 속는다.' 라는 소극 장르의 공식을 활용, 여주인공의 언변과 술책, 사위와 딸 사이에서 재판관 역할을 자임하는 노부부의 편견과 맹목성을 비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작품은 오히려 주인공의 복수의 집요한 시도들을 그의 과도함과 경직성 그리고 단순화의 부각으로 이끌어감으로써 분노하고 억울해할수록 더욱 더 혼란과 곤경에 노출되기에 이른다. 실제로 1막에서는 연적 클리탕드르의 사실에 대한 노골 적인 부인으로, 2막에서는 여주인공 앙젤리크가 유혹자 클리탕드르에 대해서 분노하는 유덕한 부인 행세를 함으로써, 3막에서는 앙젤리크의 대문 밖으로의 유인 계에 걸려들면서 당댕은 어떤 구체적인 증인이나 증거는 물론 설득력 있는 변론도 내놓지 못한 채 부정을 입중하기는커녕 도리어 모함을 했다고 연적에게 사과를 한데 이어 대단원에서는 재판관격인 장인, 장모의 면전에서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난자의 모습을 한 주인공은 관객에게 고대 이래로 야유의 제물로 바쳐진 전형적인 희극적 인물의 실루엣을 제공할 뿐이다. 이처럼 극작가의 소극적 비전의 부여는 그 자체로서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인물의 주관적 감정에 대한 관객의 동화를 막고, 주인공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고무함으로써 인간 존재를 왜곡하는 내재적 결함과 악덕에 대한 희극적 통찰을 자극한다.

인물 구성과 관련해서 두드러지는 점은 주인공 당댕은 물론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적 내면이 다채롭다는 사실이다. 당댕은 모범적 인물도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그는 희극적이며 동시에 어느 정도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폭군적이며, 허영심 강한 인간의 면모와 함께 희생자의 모습도 갖고 있다. 그는 또 제 3 계층의 분명한 사회적 상승과 지적 성장 - 귀족가문과의 혼인이 가져다준 것은 길어진 이름과 부인의 부정밖에 없다는 냉철한 자기 인식을 통해서 드러나는 - 을 대변하면서도 끝내는 잔인한 소극의 어릿광대처럼 앙젤리크의 간절한 사과를 냉혹하게 외면함으로써 감정의 기반 위에 결혼 생활을 재정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는 편협하고 완고한 중세 농민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한마디로 당댕이라는 인물은 농민의 역사적 발전 단계, 즉 평민, 부르주아, 귀족의 3계층의 모순적 공존을 한 인물 안에 요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앙젤리크는 분방한데다가 뻔뻔하기까지 한 부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대의 신여성으로서 본인의 동의 없이 부모와의 거래를 동해 이루어진 혼사의 피해자라는 점을 항변하기도 하고, 젊음에 걸맞은 감미로운 자유를 남편에게 요구하며, 궁정 귀족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지방 귀족의 딸로 태어나 이제는 농민 부르주아의 부인으로 전락한 그녀의 신분적 명예의 도전적 회복을 시도한다. 소탕빌 씨 부부는 파산한 가문을 회복하기 위하여 딸을 부르주아에게 결혼 시키는 당대로서는 굴욕적인 하혼(mésalliance)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귀족적 오만을 과시한다. 부르주아 출신 사위와 딸 앙젤리크와 클리탕드르 자작 커플 사이에서 시골 귀족 소탕빌 씨는 사실 관계 의 규명이나 사위의 보호보다는 대 귀족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부르주아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를 보여줄 뿐이다. 결국 그들은 당댕을 파렴치한 무고자로, 클리탕드르는 거의 합법적인 유혹자로, 앙젤리크는 용서를 베푸는 관대한 부인으로 뒤바꾸어놓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신분적 폭력을 유발하는 극도의 무분별을 보여준다. 궁정 귀족 앞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감추기 위하여 농민 - 귀족 사위를 더욱 더 가혹하게 다루는 소탕빌 씨 부부의 귀족적 태도의 과장을 간파하고 있는 클리탕드르는 당댕을 이용한 이중 비교를 통해 당사자인 당댕은 물론 그를 사위로 맞은 이들 지방 귀족 부부까지도 교묘하게 조롱한다. 궁정에서 교육받은 이 젊은 귀족은 세련되고 여성들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을 발휘하여 시골 귀족의 딸 앙젤리크를 단번에 매혹시키고, 계급적 선입견과 앙젤리크의 호감에 기대어 몇 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당댕을 무례하고 거짓 중상을 일삼는 천덕꾸러기 남편으로 격하시키는 데 성공한다. 태도에 있어 세련됨과 비속함, 사고에 있어 보수와 진보 간의 현저한 대조법에 의해 전반적으로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클리탕드르는 소탕빌부부와 함께 부르주아에 대한 귀족의 면책 특권, 명예의 모럴의 공허함이라는 고전주의 시대의 사회 문화적 이면을 극작품의 배면에 부조해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다면한 성격적 면모들과 함께 이들의 광범한 신분적 분포 역시 눈길을 끈다. 귀족 간에 내부적 서열이 매겨졌던 것처럼 평민들 역시 농업 노동자, 자영농, 지주계급 등으로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분화되는데, 이 발전단계를 대표하는 극중 인물들이 당댕의 하인 콜랭, 클리탕드르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뤼벵, 그리고 앙젤리크의 시녀 클로딘, 그리고 평민 계급의 최상층이자 귀족계급의 최하층에 드는 당댕을 들 수 있다. 당댕의 명으로 소탕빌 부부를 빨리 데려오기 위해 창문을 넘어 땅에 뛰어내리고, 어둠 속에서 주인과 부딪히기도 하는 콜랭은 유쾌하고도 둔한 전형 적인 하층 농민이다. 사투리가 아니라 평민 언어를 구사하는 수다스럽고 어리석은 하인 뤼벵은 매번 사건 당사자인 당댕에게 불륜의 경과를 모두 털어놓으면서도 완벽한 수완가라고 자부하고, 연서를 전달해주는데 금화 3개를 받는 반면에 고된 하루 농업 노동에 10수(sou) 밖에 받지 못한다고 탄식하는 농업 노동자이다. 앙젤리크의 시녀로 상승, 그녀의 출신 계급을 벗어난 클로딘은 화법과 모럴에 있어서는 그녀의 여주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애인 뤼벵에게 장래의 남편은 자신에게 대범하고 관대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당댕은 그가 소망해왔던 새로운 신분의 획득이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개인적 확신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행동의 불가능성 또는 무력함에 직면하게 되자, 햄릿이자 맥베스인 이 경계의 인물은 사회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희극 성을 인격적 한계로 계속 증폭시켜 가는 한 필연적으로 자기 파괴적, 자기 희화적일 수밖에 없는 절대주의 시대 농민의 운명을 완성한다.

인간 존재의 시대적, 개인적 복합성을 탐색하고자 했던 희극 작가 몰리에르의 이 작품은 특정한 한 인물 중심의, 희극성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품 해석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인물의 내면 심리의 추이와 인물들 간의 상호관계의 망을 존중하는 극작품에 대한 이른바 구조적 접근이 요청되며, 나아가 인물 대사의 객관적 발화뿐만 아니라 인물의 내적 상황과 감정을 누설하는 어조, 신체 언어, 의상과 장치를 포괄하는 조형 언어 전반에 대 한 시각적 구체화 역시 작품의 의미 구성 과정의 관점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예로 당댕의 어조에 있어 농민적 억양의 흔적과 흥분했을 때의 억양의 완전한 농민 화, 각각의 신분을 드러내는 특유의 억양의 공존과 대조 효과 부각, 당댕이 살고 있는 저택과 그의 예전의 주거지였던 농가사이에 있는 마당으로의- 저명한 연출가 로제 플랑숑의 연출에 보듯- 그의 주 공간의 설정, 신분과 신분 간의 이동을 섬세하게 반영하는 의상의 정확성, 당댕의 사과하는 동작에 있어 마지못해 함과 울분, 절망적인 자포자기, 장인, 장모에 대한 원망의 시선, 부인에 대한 과격한 행동의 표출과 자제의 노력, 연적에 대한 증오와 회피적 태도의 공존, 독백할 때의 웅변과 냉철한 자기인식 의 표출 등을 들 수 있다. 연극적 형상화의 이러한 시도들은 희극성과 비극성, 당대의 주도적인 문화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와의 부조화, 의미적 모호성 또는 깊이 등 고전주의 시대의 극작술의 규범으로부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타르튀프' 이후 극작가 본인의 희극작법상의 변혁을 반영하는 극작품의 독창성의 해명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말 신구논쟁에서 그리스, 로마 문학에 대한 루이 14세 시대 문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학문과 예술의 진보를 표방 했던 근대파의 대표 작가들 중의 하나인 샤를폐로가 '몰리에르 극단의 배우들이 희극의 배우들이기보다는 그들이 연기하는 진짜 실제 인물들 같았다' 고 언급한데서 암시 받을 수 있듯이 인간존재의 내면적 탐색과 관련, 극작품의 무대화의 표현적 가치는 극작가 본인이 작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인 당댕 역을 연기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따라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해온 또는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온 '조르주 당댕'의 독서와 공연 활성화는 의미적 명료함, 유쾌한 또는 세련된 희극 성, 윤리적 모델의 제시로 요약되는 고전주의 시대극 작품의 문학적, 연극적 규범을 넘어서서, 희극과 비극을 아우르며 의미적 명료성과 도덕적 가치의 이름으로 인간 조건에 대한 탐구를 구속시키지 않았던 극작가의 예술적 독창성의 현대적 재발견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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